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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광주비엔날레'가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주제로 지난 9월 10일부터 광주 지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그 밖의 어떤 것-마이너리티' 현장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이너리티의 문화적 코드로 무장한 이 전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 논리가 스며 있는 도시 광주에서 '그 밖의 어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신나는 놀이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앗싸! 마이너리티' 기획은 이 전시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광주 사회의 '그 밖의 어떤 것', 즉 마이너리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고자 합니다. '마이너리티'의 큐레이터 박찬국씨를 시작으로 문화비평가 서동진씨, 작가 강홍구씨, <전남매일> 박호재 편집국장, 미술평론가 임정희씨 등이 필자로 참가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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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앗싸! 마이너리티 ①] 옛 상무대 영창에서 바라본 광주


▲ 5·18자유공원_상무대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서로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순서대로 동-아파트단지, 서-하늘, 남-광주컨벤션센터 공사장, 북-골프연습장.
ⓒ 마이너리티
5·18자유공원, 상무대, 현병 주둔지, 막사, 혹은 감옥이었던 곳은 재생된 장소다. 이미 사라졌던 곳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역사적 부활의 결과물인 그곳은 아파트와, 골프 연습장과 새로 짓는 컨벤션 센터에 둘러싸여 있다.

스마일 통(痛)의 치유

모든 것들은 역사적 기억을 포위하듯이 공원을 둘러싸고 있고, 공원 안에 깔린 잔디는 맨 땅을 위장하듯이 덮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이 가진 장소성은 지독하게 인위적이며 물론 전시라는 행위 또한 인위적인 것의 극치이다.

상처의 현장에서 열리는 ‘현장 3’에 소속되는 ‘프로젝트 4, 차별과 편견-스마일 통(痛)의 치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역차별, 이념차별, 계급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등에 대해 말한다.

작가들은 그러한 차별에 관해 정면으로 돌파하고 핏대를 올리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딴죽을 건다. 즉 냉소, 비웃음, 미소 등을 통해 차별에 한 방 먹인다.

▲ 한가득의 깃털이 감옥 안을 가득 채우며 어지럽게 날린다. 작가 이중재는 작품을 통해 5.18민중항쟁마저 일종의 노스탤지어가 되어버린 현실과 비_몰_반 역사화 되어가는 시류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말하고 있다.
ⓒ 마이너리티
마이너리티, 조롱과 풍자의 수사학

재생된 장소에서 전번 비엔날레에 이어 두 번째 펼쳐진 ‘현장 3’의 ‘차별과 편견-스마일 통(痛)의 치유’는 바로 차별에 대한 언급이며, 작품의 다양성 때문에 얼른 보기에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기도 한다.

기획의도에서 밝힌 차별과 억압의 구조를 조롱과 풍자를 통해 묘사한다는 방법적인 요소는 일관되게 읽히지만 주제와 소재들은 느슨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느슨함은 작가들의 개별적인 관점 혹은 관심사들에 의해 변주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주제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흥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작가들은 소수자, 혹은 마이너리티, 그리고 그에서 비롯되는 차별에 관해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고승욱은 5·18 민중항쟁의 기억이 역사화, 문화화 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문자 그대로 몸으로 경고 한다. 그는 멀쩡히 살아 있는 역사를 봉인하고 매장하는 것 역시 일종의 차별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는 움직이는 트럭에 실린 흙이 담긴 나무상자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헤엄치듯 버둥거린다.

이중재 또한 고승욱과 비슷한 관점에서 치즈 케이크 모양의 감옥에 닭털을 가득 채우고 선풍기와 영상을 설치한다. 고승욱이 보다 직접적이라면 이 중재는 상징적 코드들을 냉소적으로 구사한다.

▲ 작가 김태헌과 백기영은 광주를 일상과 역사가 교차하는 이중공간으로 파악한다. 외지인의 입장에서 광주를 바라보는 두 작가의 작품은 광주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이면서 몽상이기도 하다. 사진 위는 김태헌 작가의 작품. 아래는 백기영 작가의 작품.
ⓒ 이성제
광주에 대한 몽상, 그리고 상징

이와는 달리 몇 몇 작가들은 광주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차별, 편견, 혹은 몽상과 지역성을 더듬는다. 플라잉 시티는 광주에 있는 작은 규모 재래시장을 들여다본다. 그들이 골목경제라고 부른 전통 시장이 자본의 집중과 효율성의 추구에 따라 배제되어 소멸되어 가는 것을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들과 통계들을 대비시킨다. 상징적인 물적 증거와 냉정한 수학적 통계 사이의 부딪힘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내지 않지만 그 시선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김태헌은 광주라는 장소를 개인적 체험을 통해 접근한다. 택시를 타고, 혹은 걸어서 기억 속의 광주와 지금 부딪히는 광주 사이의 틈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지나간 기록들이 문자와 이미지가 되어 남는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개인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광주에 대한 인식의 차이, 혹은 광주를 둘러싼 안 밖의 편견이다.

백기영은 상무대라는 장소에 인위적인 자연인 꽃과 그 배후의 현실적인 도시의 대비를 이미지화해 갖다 놓음으로써 부딪히게 한다. 부딪히는 이미層湧?상투적임으로써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 학교의 급훈은 학생들을 통제하는 또 하나의 장치다. 원하자팀은 욕조에 잠긴 교복 치마와 그 앞에서 점멸하는 유치찬란한 슬로건을 교차시켜 훈육시스템의 섬뜩함과 촌스러움을 동시에 재현하고 있다.
ⓒ 이성제
영창의 담을 넘어 버린 미술

사실 상무대가 가지는 강력한 장소성은 작가 입장에서 보면 중성적인 전시 공간에 비해 전시하기 힘든 장소이며, 동시에 그 강력한 장소성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배영환은 바로 이 재현된 가짜 장소에서 펼쳐지는 가짜 꿈에 관해 말한다. 평소의 작품에 비해 서사성이 강해진 그의 가짜 꿈에는 상무대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분장한 젊은 청년이 등장한다. 다소 덜컹거리는 백일몽이자 역사적 악몽인 그 꿈은 사실 그 자신에게 가하는 심리적 얼차려이기도 할 것이다.

믹스라이스는 해오던 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텐트 속과 밖에서 들려주고 보여주며 관객에게 시위한다. 그 시위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장을 직접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자신이 다수자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그리고 단체로 참여한 '원하자'팀의 학생들의 작품들은 억압적 구조를 가진 감옥으로서의 학교에 관한 현실과 기억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들의 작품은 경험의 생생함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지만 동시에 산만함 역시 감출 수가 없다. 담장을 앞뒤로 에워싼 책상의 설치는 과잉이고, 자동차를 감옥으로 그린 것은 평면적이며, 목욕탕의 네온 설치는 장소와 불편하게 부딪힌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이집트 관 뚜껑 그림처럼 기다란 종이 상자에 그려진 학생들의 전신 초상화이다. 왜냐하면 발상과 표현방식이 일반적인 코드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냉소의 미학

▲ 원하자팀의 윤여관 작가가 설치작업을 마친 후 영창의 담 위에서 상무대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 임국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차별, 편견 따위의 생산과 증폭과 확대는 피할 수 없다. 거기에는 생물학, 사회, 문화, 정치적, 역사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개입되어 있어 손쉬운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모든 종류의 차별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는 것이다. 차별은 차이에서 기인하지만 그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경멸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정하는데서 온다.

전시장에 가득한 미술 작품들이 그것들을 치유하거나 교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미술이 그에 관한 반성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면 냉소를 보냄으로써 금을 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전시장의 작품들이 겨냥하는 지점도 그곳일 것이다.

참여전시에 대한 단상
예술과 문화 이벤트의 간극

▲ '박스도시 차차차!'를 설치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일반인들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전시는 그 신선함과 더불어 약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 전시의 경우 전체의 짜임이 작가들이 완결 시킨 작품을 관객의 면전에 그대로 들이미는 데 있지 않다.

대신에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작품과 전시에 대해 생각하고 끼어들기를 요망한다.

그것은 이번 비엔날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개념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비엔날레를 의미 있는 작품들과 마주치는 장이라기보다는 이벤트성, 혹은 문화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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