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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고개인 추령
아흔아홉 고개인 추령 ⓒ 장동언
단풍의 향연이 시작되는 시월, 모든 것을 다 접어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경북 김천의 오지 증산면을 찾았다.

소박한 산골마을에서 고요한 새벽의 귀뚜라미 소리에 젖어 저물어가는 가을을 음미한 채, 한 편의 시라도 읊조려보고 싶어서였다. 또한 오래 전부터 내 여정의 귀착지로 선택된 전통강원의 효시인 불령산 청암사를 둘러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 김천의 시내를 벗어나 국도 3호선을 따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로 40여분쯤 달렸을까, 대덕면 소재지를 눈 앞에 두고 증산면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나는 그 이정표를 대하는 순간, 싱그러운 솔향기와 더불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빠른 템포의 물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것같아 묘한 흥분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지방도 903호선을 접할 때쯤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이곳이 바로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일명 가목재라고도 알려진 아흔아홉 고개의 추령이다.

고갯길을 휘감아 돌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오르는 자동차 소리와 여인의 나신 같은 곡선을 따라 시나브로 내려오는 우윳빛 안개를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곳에 올라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대덕과 증산의 경계를 알리는 추령(가목재)을 힘겹게 넘어 다시 5~6분쯤 달렸을까.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온화한 표정의 증산삼거리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이 바로 증산초등학교와 파출소 그리고 면사무소가 옹기종기 한 곳에 모여 있는 증산면 소재지였다.

그러고 보니 6·25사변 당시 소실되었다는 쌍계사가 이곳 어디쯤에 존재했었다는데, 어디쯤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주위의 나이든 분들께 여쭤보니 현 증산면사무소 자리가 쌍계사가 존재했던 절터란다.

전설 속으로 사라진 절 쌍계사

괜한 의구심을 품은 채 증산면사무소의 입구로 들어서니 백년은 훨씬 더 지났을 듯한 세 그루의 소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앉아 나의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그 중 한 그루는 벼락을 맞아 유전자변이를 일으켰는지 가지가 아래로 자라고 있어 특이해 보였다.

아래로 자라는 소나무
아래로 자라는 소나무 ⓒ 장동언
면사무소 관계자의 양해를 얻어 청사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이 예전 절터(쌍계사)였음을 알려주는 거북모양의 바위, 주춧돌, 돌기둥 등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쌍계사의 흔적들
쌍계사의 흔적들 ⓒ 장동언
당시의 쌍계사는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지금도 소재지 내 마을의 집터 대부분이 사찰 명의로 되어 있다. 현재 거주하는 마을주민들도 청암사에 임대료를 납입하면서 주거하고 있다고 한다.

실상 증산면에는 청암사와 수도암이라는 잘 알려진 사찰이 있는데 쌍계사가 존재해 있던 당시에는 이 두 절이 쌍계사의 산내 암자였다는 설도 있다.

증산면 소재지에서 전설 속으로 사라진 쌍계사를 재조명 해본 뒤 10여분 거리인 청암사로 곧장 향했다.

두 곳의 관문을 지나자 단정한 글씨의 문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암사로 가는 2차선 도로가에는 정갈하게 핀 노란 코스모스가 길게 목을 높인 채 하늘거리고 있었고, 그 꽃길은 바에 닿아 늘어진 듯 평촌 삼거리까지 기다랗게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청암사 입구에 다다랐다. 청암사에서는 불영동천의 맑은 물소리와 얼굴을 간지럽히는 추풍을 만날 수 있었다.

청암사 일주문
청암사 일주문 ⓒ 장동언
일주문 앞에다 차를 세워두고 발품을 팔아 천왕문에 다다르자 불현듯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어느 불자가 써 붙여 놓은 단정한 글귀였다.

불자가 써붙여 놓은 문구
불자가 써붙여 놓은 문구 ⓒ 장동언
그 글귀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 불영동천을 따라가니 이번에는 집채만한 바위에 누군가가 새겨놓은 흐트러진 서체가 눈에 띈다. 글자의 몇몇은 이름자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 그 글을 조각해 놓았는지 깊이 있게 알 수는 없으나 글자를 새기면서 나름대로 불심을 키우고자 했으리라고 가늠해 본다.

바위에 조각된 서체
바위에 조각된 서체 ⓒ 장동언
암각의 서체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물이 너무도 맑아 잠시 미동을 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물 속에 가라앉은 낙엽처럼 정지한 세월은 개울의 중심에 풍덩 빠져있는 듯했다.

불영동천에 가로놓인 키작은 다리를 가로질러 다시 촘촘한 돌계단을 밟고 오르자 청암사 본채가 불빛에 밝아지듯 환하게 내 시야에 들어온다.

법당을 향하는 길목
법당을 향하는 길목 ⓒ 장동언
메커니즘에 순종하는 우울한 세상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세상

산세 수려한 불령산의 푸른 정기로 둘러싸인 청암사,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서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청암사 전경
청암사 전경 ⓒ 장동언
사적에 따르면 인조 25년(1647)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혜원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재중건하였으며,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당시 이곳 극락전에 거주하면서 기도를 드렸던 인연으로 왕실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 조선시대 말기까지 상관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청암사는 불교 강원으로의 명성이 높은 사찰로서 강원의 효시는 조선시대 강백이며 당시에는 운집한 학인수가 300명을 넘었다고 하며, 현재도 14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전공부와 수행을 쌓으며 전통강원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강의실인 중현당, 고승의 영정과 조사상 등을 봉안한 진영각 그리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형식과 겹치마 팔각지붕을 갖춘 대웅전을 거쳐 강당으로 사용되는 정법루, 화엄학인스님들의 대방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극락전, 사십이수 관음보살좌상과 각종 탱화가 봉안되어 있는 보광전 등을 둘러본 뒤 나는 다시 산내 암자인 백련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동산 같은 언덕 위에 덩그러니 얹혀져 있는 백련암.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평평한 돌계단을 펼쳐 휘어놓은 듯 고전적인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백련암 가는 길
백련암 가는 길 ⓒ 장동언
이렇게 누마루가 없고 툇마루가 좁은 백련암을 돌아보고 내려오는데 멀리에서 무엇이 그리 바쁜지 뛰어가는 비구스님이 보인다. 그 분의 싱그런 표정에서 순백의 순수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쩌면 세속인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하다.

청암사에는 지금 불자의 여섯 가지 실천내용(身, 口, 薏, 戒, 見, 利)의 뜻을 담은 육화료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새롭게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번뇌를 씻어내는 불자의 마음같이 억겁을 거슬러 무거운 더깨를 떨쳐내려 함이던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이 곳에 오면 제각기 쓰고 온 가면을 벗어 놓고 돌아간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다.

메커니즘에 순종하는 우울한 세상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세상을 오늘 나는 이곳에서 만났으며, 어쩌면 이곳에서 나 또한 흐려진 마음을 씻고 정갈하게 돌아가리라고 마음을 눌러본다.

무흘구곡을 비롯한 수도계곡은 증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경

옥동천에 우뚝 선 옥류각
옥동천에 우뚝 선 옥류각 ⓒ 장동언
사실 증산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고들 한다. 무흘구곡의 제6곡, 옥류동의 옥동천에는 예전 이곳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는 옥류각이 보란 듯 자태를 자랑하고 있고, 비룡이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을 비롯하여 제8곡 무흘정사, 제9곡 용소폭포 또한 비경이다.

또한 웅장한 물소리를 자랑하는 장전폭포 그리고 여름 한철 시원하게 눌러 지낼 수 있는 수도계곡 및 내원계곡은 또 어떤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껏 단풍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가을철 수도산 산행이 제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입맛을 상실했을 땐 평촌리 테마마을에 가서 송이버섯이 넉넉히 가미된 토종백숙과 염소양념구이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산사의 풍경소리를 거리낌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무류의 공간 증산. 그 대표적인 사찰인 청암사보다 아름답고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어 세속인을 맞이할 그 때, 다시 증산을 찾을 것이라 다짐하며 오늘은 이쯤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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