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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깊은 숨을 쉴 때마다>
책 <깊은 숨을 쉴 때마다> ⓒ yes24
책을 읽으면서 그 속의 배경을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가장 최초의 출발은 바로 1995년 현대 문학상 수상작인 신경숙의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신경숙이라는 소설가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신세대 작가였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는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문체와 독특한 시점, 구성으로 인해 많은 문학인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 신경숙씨가 95년 현대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 수상작이 바로 <깊은 숨을 쉴 때마다>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그다지 대중적인 유명세를 타진 못했다. 하지만 신경숙의 작품 중에서 꽤 뛰어나다고 평가할 만큼 아름다운 문체와 구성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제주도의 서부 지방인 성산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묘사의 아름다움이 개성적으로 살아나 있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참여하게 된 '현대문학분과'라는 동아리 덕분이었다. 이 동아리는 그 당시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키던 현대 문학을 읽고 분석하는 곳이었다. 특히 한강, 최영미, 신경숙, 김혜순 등의 여류 작가가 한창 많은 활동을 하던 시기여서 동시대의 여성으로서 이들의 작품을 읽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분과에서는 간혹 여행도 계획했는데 이른바 '문학 답사'라는 것이었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배경이 되는 공간을 여행지로 선정하고 그곳을 찾아가는 독특한 여행이었다. 특히 90년대 작품 중 좋은 곳을 골라 여행지를 선정했는데, 한번은 바로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이 된 제주도 성산포 일대를 여행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이 소설 구석구석에 묘사된 여러 배경들이 성산포에 실재로 존재하고 있었다.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실제의 성산포 인근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고 전했다. 소설의 배경인 목조 건물로 된 피아노 학원이라던가 넘실거리는 당근 밭의 푸르름, 성산 일출봉의 독특한 형상과 바다.

이 모든 것들은 소설의 배경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문체가 되어 작품 속에 녹아 흐른다. 작품을 먼저 읽고 나서 배경이 된 여러 공간들을 찾아갔는데, 소설 속에 묘사된 길을 따라 갔더니 그 공간들이 바로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제주도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상상으로만 느꼈던 작품의 아름다운 묘사를 실제 체험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로마인 이야기>를 들고 이탈리아에 가서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사랑을

이처럼 책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색다른 경험이다. 책을 통해 만난 세계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활자로 머무르고 상상 속에서 보았던 공간들이 실제 건물이 되고 자연이 되며 사람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문학답사'라는 명칭은 아니지만 내가 간절히 꿈꾸는 여행은 바로 장기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 여행을 꿈꾸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이탈리아 고대 도시의 유적과 미술품,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책은 알게 모르게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동경을 심어 주었다.

책 <로마인 이야기> - 현재 12권까지 출간되었다
책 <로마인 이야기> - 현재 12권까지 출간되었다 ⓒ yes24
<로마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 어록>,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등 시오노 나나미의 많은 저작물들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글들은 과거 유럽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답사 형식으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싶어진다.

로마 황제가 만들었다는 그 길도 걸어 보고, 중세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교황청도 꼼꼼히 보고 싶다. 다빈치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그려 놓은 그림들도 천천히 감상하면서 과거의 이탈리아를 하나하나 느끼고 싶다. 폼페이 화산 폭발 현장도 살펴 보고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은 과거를 풍미했던 도시들도 방문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적인 가치만을 높이 평가하여 이곳을 방문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처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소설들도 많지 않은가.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바로 작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냉정과 열정 사이>이다.

책 <냉정과 열정 사이>
책 <냉정과 열정 사이> ⓒ yes24
이 책은 남녀 작가가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서로 릴레이 형식으로 소설을 써 나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10년 전에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들이 서른살이 되는 날 피렌체의 두오모(대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소설의 주축을 이룬다. 서로 각자의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하고 결국 이곳을 찾아가는 주인공들.

이들처럼 멋진 사랑이 왠지 이탈리아에서는 용납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늘 꿈꾸어온 '진짜 사랑'을 여기서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피렌체의 두오모에 올라 이 책에서 재회하는 두 연인의 마음을 느껴보면 어떨까.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과 시끄러운 사람들, 맛있는 음식들.

그 속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비록 뭔가를 사기는 힘들겠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되는 작고 예쁜 보석 가게에도 들어가 보고 아이스크림도 사먹는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곰곰이 새겨본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책 속에 있다. 그리고 책은 나를 꿈꾸게 하는 간접 체험의 세계이다. 언젠가 책 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들로 찾아가는 꿈을 꾸며, 나는 가끔 책이 이끄는 상상의 공간으로 빠져든다. 물론 그 상상의 공간들이 실재(實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This is love 1 : 냉정과 열정사이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소담출판사(2009)


깊은 숨을 쉴 때마다 - 1995년 제40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신경숙 외 지음, 현대문학(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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