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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들어가는 입구인 우화각의 아름다운 모습
송광사 들어가는 입구인 우화각의 아름다운 모습 ⓒ 서정일
승보사찰 송광사를 방문하려면 건너야 하는 다리가 있다. 일명 능허교라 불리는 우화각.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송광사를 방문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건너야 할 첫 관문이자 아치형의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송광사의 얼굴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만을 보고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이 있다면 방문 첫 시작부터 송광사 불사가 하나 하나 지어질 때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다름 아닌 우화각 아래 가느다란 철사줄로 매어진 엽전 석 냥이 품고 있는 큰 의미 때문이다.

사실 다리의 웅장한 모습에 비해 너무 하찮고 작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게 뭔지조차 모르고 지날 정도. 이렇듯 우화각의 엽전 석 냥은 너무 연약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흡사 풍경과 같은 모습이지만 여느 흔하디 흔한 엽전은 아니다.

우화각 아래 용머리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
우화각 아래 용머리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 ⓒ 서정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얘기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군요"하고 말문을 여는 해명스님. 우화각 아래에 매달려 있는 엽전을 유심히도 살펴봤군, 하는 표정으로 궁금해 하는 게 신기하다는 듯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송광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절은 화주에 의해 지어집니다. 불자들이 한 푼 두 푼 보시한 것으로 지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불가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로 혼란스러웠지만 질문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 방문이었고 질문으로 얘기가 길어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어서 엽전 석 냥의 의미가 나오기만을 기원할 뿐.

"우리 불가에선 호용제라는 게 있습니다. 화주 그러니까 공적인 돈은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거죠, 여기 보이는 범종을 불사할 때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우화각을 불사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다못해 등불을 켜고자 등잔에 기름을 부을 때도 사적인 등잔을 공적인 등잔 위에 놓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행여 기름을 잘못 붓거나 기름이 넘치면 공적인 등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여기까지 얘기하고 잠시 뭔가를 생각한 듯 우화각 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우화각이 멋스럽습니까? 저 아래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이 멋스럽습니까?"하고 엉뚱하리만치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스님은 말했다.

"저 엽전 석 냥은 우화각을 불사할 때 남은 돈입니다. 만약 우화각을 고치거나 다시 지을 때 보태서 사용되어질 불자들의 돈입니다. 우화각 아래 용머리에 매달려 있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성불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해명스님은 자리를 떠났다.

아직 질문이 남아 있는데 하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스님"하고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스님은 법당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간단하면서 간단하지 않은 얘기들을 남긴 채….

차츰 어둠이 깔리는 경내를 뒤로 하고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우화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화각 위에서 한참 서 있었다. "우화각이 멋스럽습니까? 저 아래 매달려 있는 엽전 석 냥이 멋스럽습니까?"하는 말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엽전을 바라봤다.

투명하고 맑게 일을 처리하고 남은 돈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매달아 놓은 그 마음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해명스님의 말처럼 우화각 아래의 엽전 석 냥은 우화각보다 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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