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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과 평창 경계인 문재의 억새, 우리도 이렇게 생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억새풀은 아닐까?
횡성과 평창 경계인 문재의 억새, 우리도 이렇게 생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억새풀은 아닐까? ⓒ 최성수
사계절 어느 때인들 여행의 즐거움이 없겠는가. 계절에 따라 여행의 즐거움이 다르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늘 설렐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봄 여행은 흐드러지게 핀 꽃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만물이 죽어 있는 것 같던 한겨울의 흑백 풍경이 일순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환희, 봄 여행은 그 환희와 생명을 찾아 떠나는 싱그러운 길이다. 그래서 봄 여행은 가슴 벅찬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봄 여행이 생명의 시작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면, 가을 여행은 생명의 스러짐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나직한 햇살, 한여름의 거친 비바람을 이겨내고 흘러 이제는 넉넉할 대로 넉넉해진 강물, 제 뿌리로 흐르는 물살에 발가락을 간질이는 나무가 툭툭 떨구는 잎새를 만나러 가는 가을 여행은 그래서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봄에는 새로운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가을에는 기억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탄생과 스러짐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수 가늘 길가, 골짜기의 가을 풍경. 돌투반이, 마람골 이런 이름이 정겨운 골짜기 중 하나다.
개수 가늘 길가, 골짜기의 가을 풍경. 돌투반이, 마람골 이런 이름이 정겨운 골짜기 중 하나다. ⓒ 최성수
내가 한 해에 몇 차례씩 찾아가는 곳이 있다. 봄에도 가고, 여름에도 가고, 겨울에도 한두 번씩은 찾아가는 곳이지만 그곳의 진면목은 언제나 가을에 있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의 한 계곡. 계곡은 흔히 여름이 제 맛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곳의 가을을 더 좋아한다.

시골 고향집에서 토요일 밤을 지내고 나서, 새벽같이 길을 나선다. 안흥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평창의 개수까지는 산을 하나 넘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일찍 길을 나서는 것은 개수, 그 계곡에 바쁘게 가고자 함이 아니라 가는 길의 가을을 맛보고자 해서다.

안흥에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은 문재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지만 내가 어릴 때는 한겨울 눈이 내리면 차들이 다닐 수 없는 험한 곳이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그 길은 한 해에도 몇 번씩 차가 구르곤 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벼 벤 들판에 서 있는 낟가리. 가을은 이렇게 지나간다.
벼 벤 들판에 서 있는 낟가리. 가을은 이렇게 지나간다. ⓒ 최성수
이제 옛 길은 풀과 나무로 뒤덮여 산이 되어 버렸고, 훤한 아스팔트길이 시간과 거리를 줄여 놓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지나가며 길가 군데군데 서 있는 골짜기 이름을 새삼 눈여겨본다. 논골, 정자골, 물안리골, 마람골, 돌투반이골, 문재골….

그런 골짜기 이름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산 뽕을 따러 가신 어머니가 개불알꽃이나 함박꽃을 뽕짐에 한 송이씩 꼭 넣어 오시던 시절, 어머니가 헤매고 다니셨던 골짜기 이름이 이제는 표지판으로 서서 내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어머니의 발음으로는 농골, 무라니골, 마랑골, 돌투바니골이었던 그 골짜기들에 어느새 가을이 와 나뭇잎들은 갈색과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제는 산 뽕을 따는 사람도 없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도 사라져버려, 저 혼자 한 여름을 견뎌낸 숲이 툭툭 잎들을 세상으로 지우고 있다.

나란히 서 있는 배추 지게. 한여름의 노동이 저런 결실을 낳았다.
나란히 서 있는 배추 지게. 한여름의 노동이 저런 결실을 낳았다. ⓒ 최성수
어느새 나는 개수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향해 떠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개수를 향해 갈 때마다 내가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이 바로 어머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열아홉에 시집을 오실 때까지 어머니가 사셨다는 개수는 물 맑고 산 높은 곳이다. 언제 가 봐도 넉넉한 물과 깎아지른 산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은, 아마도 그곳이 어머니의 고향이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을 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개수를 향한 내 발걸음은 당연히 기억을 찾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기억을 찾는 여행은 봄이 적당하지 않다. 아무리 개수가 철쭉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도, 내게는 가을, 마음처럼 가라앉는 나뭇잎들이 발길을 막는 계절이 제격이다. 그 나직나직한 햇살에 몸을 맡기며 어쩌면 나는 이제는 돌아가셔서 만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삶을 엿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 단풍과 눈이 시린 하늘의 어울림
가을 단풍과 눈이 시린 하늘의 어울림 ⓒ 최성수
안개 속 갈대가 마구 흔들리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강원도 산골인 이곳은 이미 겨울 가까이 와 있다. 오늘 아침에도 밭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몇 번 내린 무서리에 마당가에 심어 놓았던 백일홍은 제 빛을 잃고 시들시들 몸을 사렸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매달고 있던 고추대궁도 어느새 잎을 축축 늘어뜨리고 있다.

벼를 다 벤 논에는 낟가리만 우두커니 서 있는데, 마지막 수확물인 배추를 출하하느라 바쁜 밭 가운데에는 지게 가득 배추들이 형제처럼 놓여 있다.

물살에 비친 개수의 산 그림자
물살에 비친 개수의 산 그림자 ⓒ 최성수
이 모든 풍경들은 가을의 끝,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런 풍경을 보며 지나가는 여행길은, 그래서 더욱 낮고 잔잔하다. 마치 창가로 아른아른 스며드는 가을 햇살처럼….

문재를 지나고 계촌을 거쳐 멋다리 근처에서 방림으로 접어든다. 한여름에는 가끔 메밀국수를 먹으러 오던 곳이다. 방림을 지나 한참을 더 가면 왼편으로 금당계곡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내가 가는 곳은 금당계곡 쪽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결코 금당계곡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내가 이 골짜기를 부르는 이름은 개수다. 그러니 내 여행길에 금당계곡은 없다. 어머니의 고향인 개수만이 있을 뿐이다.

열 두 골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룬다는 계곡의 물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 없다. 이제는 물 빨아올릴 힘조차 다 놓아버린 나무들이 제 몸에 매달고 있던 잎들을 투명한 물 위로 툭툭 떨구어 버리는 개수의 가을은 더 없이 편안하다.

봉황대. 봉황새가 정말 저 벼랑에 살았을까?
봉황대. 봉황새가 정말 저 벼랑에 살았을까? ⓒ 최성수
마음에서 툭 삐져나와 놓여 있는 것처럼 쓸쓸한 봉황대의 소나무도 가을 탓인지 제 빛을 잃고 있다. 물가로 늘어선 버드나무 잎들이 다 바래 버린 것 같은 느낌은 가을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내 마음의 아련함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가다 보면 개수의 길은 비포장으로 바뀐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차들 때문에 길 가의 나무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 먼지 또한 가을답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날려 스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 계곡의 물은 짙은 녹색이다.

그 깊이 모를 심연에 가을 산이 잠겨 있다. 나는 한동안 개울가에 앉아, 가을 골짜기 속으로 사라진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린다.

“한여름에는 팔뚝만한 고기가 잡혔지. 아버지가 밤새 놓아둔 통발에서 고기를 건져 올 때의 기억이 잊혀지질 않는구나.”

어머니는 생전에 개수를 그렇게 말씀하셨다. 한여름의 풍부하던 물도 가을이면 줄어들지만, 그래도 개수의 가을 물은 여전히 투명하다.

길이 없어 산을 넘어 대화 장에 가곤 하셨다던 어머니, 열아홉에 가마를 타고 시집오시곤, 친정이 풍기로 이사하는 바람에 평생 동안 고향에 몇 번 밖에 못 가보셨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기억 속에 개수는 늘 남아 있었나보다.

펜션이 들어선 개수, 그래도 내 마음에는 여전히 옛 모습이 남아 있다.
펜션이 들어선 개수, 그래도 내 마음에는 여전히 옛 모습이 남아 있다. ⓒ 최성수
이제는, 비포장이지만 번듯한 길이 나 있고, 첩첩 산골이던 곳에 도회 사람들이 몰려들어 펜션과 별장을 지어 놓았다. 산 좋고 물 맑으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는 요즘의 세태에 해발 1173미터의 금당산 자락에 자리 잡고 열 두 골짜기에서 맑디맑은 물이 사시장철 흘러내리는 이 개수 사십 리가 옛 모습으로 남아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이곳 개수도 포장도로가 들어서고, 온갖 유흥과 위락 시설이 자리 잡을 것이다. 골짜기를 나서며 내려다본 어머니의 옛 집 주변에는 이미 펜션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어머니의 옛 집은 미운 오리 새끼 마냥 펜션 귀퉁이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머지않아 어머니의 옛 집도 헐려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가을이 와도 개수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개수를 찾아 올 것이다.

비록 어머니의 옛 집이 없어지고, 마을은 화려하고 그럴 듯한 집들과 음식점으로 바뀌어도, 내 마음의 개수는 여전히 열 두 골짜기에서 시린 물이 흘러들고, 나직한 가을 햇살은 여전히 자락자락 내려앉을 것이다.

한 여름 내내 밭을 가득 채웠을 옥수수들은 베어지고, 이제 대궁들이 모여 빈 밭을 지키고 있는 개수, 이번 가을에도 나는 개수를 그렇게 마음에 담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짙푸른 물과 그 물에 일렁이는 낮은 햇살과, 빛바랜 나뭇잎들이 가을을 지키고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개수는 어쩌면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이며, 그리움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옥수수 벤 밭에 쌓인 옥수숫대. 개수는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옥수수 벤 밭에 쌓인 옥수숫대. 개수는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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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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