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벼가 베어지고나면 혼자 남아 들판을 지킬 허수아비
벼가 베어지고나면 혼자 남아 들판을 지킬 허수아비 ⓒ 윤형권
쌀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농민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수아비들은 하나 둘 나타나 가을 들판을 지키고 있다.

쌀은 우리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한 쌀. 쌀을 생산한다는 것은 단순한 먹거리만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수자원의 저장, 자정작용, 생태계의 균형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어 그 값어치는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다. 쌀은 식량자원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쌀이 벼랑 끝 낭떠러지에 놓여 있다.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으로 돼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그냥 떠밀려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농민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사람들이 아니다. 여기 농민과 농업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몸부림치는 현장이 있다. 이런 노력들이 쌀을 살리는 대안이라고 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보면 대안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논산시 성동면 원남리 1구. 논산평야에서 호남평야로 뻗어가는 길목인 '원남뜰'이다. 들판은 그야말로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물결을 이룬다. 이런 것을 두고 금빛물결이라고 하는가 보다.

오전 10시 경, 원남뜰 저쪽 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꼬마 풍장놀이 패가 신명나게 징과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운다. 참새들도 신바람이 나는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사람들 머리를 스칠 듯이 날고, 동네 사람들은 행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쌀 생산자인 박명철 회장과 소비자인 곽인경 '이쁜엄마가 되려는 사람들'의 회장
쌀 생산자인 박명철 회장과 소비자인 곽인경 '이쁜엄마가 되려는 사람들'의 회장 ⓒ 윤형권
성동면 친환경농업연구회(회장 박명철, 60세) 회원들이 주최한 이 행사는 올 벼농사를 친환경농법으로 짓고 품평을 하는 날이다. 이 자리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초대했다. 수도권지역의 가정주부들 모임인 '이쁜 엄마가 되려는 사람들'과 자녀들 100여명, 그리고 대전 신풍초등학교 주부교실에서 40여명이 초대를 받아 왔다. 쌀 소비자들인 가정주부들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아보자는 것.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다.

성동면 친환경농업연구회는 여러 가지 친환경농법이 있지만 화학비료 대신 쌀겨를 이용하고, 파종 때 분해성 비닐종이를 깔고 구멍을 내 벼가 자라도록 해 풀이 자라지 않도록 하는 '종이멀칭법'을 썼다. 또 목초액과 현미식초, 미생물을 이용한 독립영양제 등을 사용해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벼농사를 지은 것이다.

친환경농법은 기존의 일반농법에 비해 힘들고 까다롭다.

올해 이들 연구회에서 경작한 면적은 34ha이다. 이중 무농약인증을 신청한 게 12ha, 저농약인증 신청이 22ha이다. 무농약, 저농약으로 구분하지만 똑같이 화학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 다만 저농약은 친환경농법을 짓기 바로 직전에 흙에 남아 있던 농약잔류량 때문에 1~2년 지나면서 농약잔류량이 없어지면 무농약인증을 신청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또, 친환경농법은 집단화해야 그 효과가 큰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농업용수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집단화를 해야 하는 이유다. 주변에서 화학농약을 사용하면 오염된 물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연구회는 30여 가구가 하나의 단지를 형성해 금강 물을 직접 받아서 쓰고 있다.

친환경농법은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뽑아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꽤나 힘들고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파종에서부터 수확까지 3~6회의 풀 뽑기를 해야 하고 또, 외부로부터 화학농약이 유입되지 않도록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해서 길러낸 것이 '지프러스'라는 친환경농법으로 만든 쌀이다. 벼 종자는 동진1호. 쌀겨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미질이 뛰어나다고 한다. '지프러스'는 전량을 성동농협과 계약 재배한다. 수매가가 일반벼의 경우 40kg에 5만7000원인 데 비해 '지프러스'는 6만6000원을 받는다. 약 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정성을 들인 것을 생각하면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한다.

박명철 회장은 "어차피 쌀은 개방할 것이고 개방했을 때 차별화된 쌀을 생산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별화한 쌀 생산은 친환경농법밖에 없더라고요. 또, 친환경농법이라야 오염 안 되고 좋은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고 친환경농법을 하게 된 동기와 당위성을 역설한다.

떡메치기와 벼 타작하기 체험
떡메치기와 벼 타작하기 체험 ⓒ 윤형권
이날 행사의 초대 손님인 수도권지역과 대전지역에서 온 어머니들은 메뚜기잡기, 가래떡 짚으로 구워 먹기, 밤 구워먹기, 인절미 만들기, 벼 탈곡하기 등 아이들과 함께 농촌체험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쁜 엄마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장인 곽인경(24세)씨는 작년 9월부터 다음카페를 통해 회원을 모집했는데, 회원이 37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도회지에 살면서 가장 부족한 게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서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농촌체험을 하고 또 공연 등도 공동으로 관람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성동면 친환경농업연구회의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지프러스가 최고여~'
성동면 친환경농업연구회의 친환경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지프러스가 최고여~' ⓒ 윤형권
오늘 처음 논에 나왔다는 경기도에서 온 윤난희(31세) 씨는 손예림(5세), 예빈(3세)이의 엄마다. "우리가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쌀입니다. 와서 직접 친환경농법으로 쌀농사를 짓는 것을 보니 농부들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내가 먹을 쌀이 이곳에서 이런 방법으로 생산되는 과정을 확인하니 안심이 됩니다. 오늘 정말 즐겁습니다"라며 아이들과 메뚜기잡기를 계속한다.

우리의 쌀을 살리는 일은 생산자인 농민들만으로는 안된다. 우리 쌀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쌀 소비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쌀 소비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가정주부들은 쌀 개방의 높은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농업을 구하는 일과, 우리의 생명산업인 벼농사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농촌체험을 온 '이쁜엄마가 되려는 사람들'  모두 미인이다.
수도권 지역에서 농촌체험을 온 '이쁜엄마가 되려는 사람들' 모두 미인이다. ⓒ 윤형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