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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책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 한길사
보통 '르네상스'라고 하면 종교 개혁과 함께 중세의 암흑기에서 탈출한 유럽의 한 운동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신 중심의 사회가 인간 중심의 사회로 옮겨가고, 과거 그리스·로마 시대의 풍요로운 문화적 가치와 사고를 되살리는 시기였다고 평가되는 르네상스.

하지만 이 흐름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 알고 있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이와 같은 흐름을 주도하고 또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데에 공헌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도만을 익숙한 이름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고대 로마만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녀의 이탈리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끊임없는 탐구와 함께 여러 저작물들로 출간되었다.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은 탐구의 산물로 르네상스 시대를 선도한 여러 인물들을 복원하여 되짚어보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피렌체를 시작으로 하여 로마, 그레베, 베네치아라는 네 개의 르네상스 중심 도시를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르네상스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 운동의 본질'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 운동이 시작된 근원은 천 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세 사회의 억눌림 때문이었다.

비록 기독교 정신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된 운동이긴 하지만 그 출발은 기독교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저자는 자유롭게 평신도들을 수용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르네상스의 출발로 본다. 검소한 그림 형태를 추구했던 프레스코화 또한 성 프란체스코의 지지 아래 번성하는데, 이것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는 르네상스 정신과 부합된다.

교황의 절대 권력에 대항했던 존재로 프리드리히 2세를 들 수 있다. 그는 남부 이탈리아에 나폴리에 대학을 세움으로써 기존에 존재했던 교황청 산하 대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신이 원하기 때문에 한다는 명목으로 이슬람 국가를 정벌하고자 했던 십자군 원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저자는 르네상스라는 정신 운동이 왜 이탈리아에서 일어나야 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체제의 본거지라 해도 좋은 로마 교황청이 바로 옆에 존재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결점이 눈에 띄기 어렵지만, 가까이 있으면 싫어도 눈에 들어옵니다. (중략) 이탈리아의 경제인들은 돈벌이에 정력을 쏟으면서도 성직자 계급의 실태를 똑똑히 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모순을 똑똑히 파악했던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경제적, 학문적, 문화적 부흥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인체나 자국의 언어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고대 로마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르네상스 정신 운동의 시작은 강렬한 비판정신을 지닌 피렌체에서 비롯된다.

"피런체 공화국은 금융업과 직물업에서는 이미 유럽에서 손꼽히는 세력을 얻고 있었지만, 메디치 가문의 지배를 통해 정치가 성숙하면서 정치대국과 문화대국으로 발전해갑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걱정할 게 없습니다.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는 인재는 일부러 부르지 않아도 제 발로 피렌체를 찾아옵니다."

특히 피렌체의 문화적 부흥에는 경제적인 부를 거머쥐고 있었던 메디치 가문의 두 남자, 코시모와 로렌초의 지원이 컸다. 이들은 예술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뛰어난 조각가 도나텔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이들의 후원 하에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국가로 전환된 로마는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예술품들을 이교도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파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새롭게 눈을 뜬 로마인들은 기독교 내부에서부터 새로운 움직임을 받아들인다.

"르네상스 정신의 발화점은 고대 부흥이니까, 일단 르네상스 정신에 물들면 이 면에서는 로마가 피렌체보다 훨씬 유리해집니다. 피렌체의 학자나 예술가들이 로마를 방문하거나 메디치 가문이 구입한 고전을 읽거나 예술품들을 보면서 고대 정신을 재발견한 데 비해, 로마에서는 그것이 주변에 널려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고대'는 지금까지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보고 싶어하기만 하면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런 경우, 보인다는 것은 곧 그런 것들의 훌륭함을 깨닫는다는 뜻이지요."


이리하여 고대 로마 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도시 로마는 르네상스 운동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기존의 가치관인 기독교가 이런 새로운 물결을 손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저서는 금서가 되고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르네상스 운동이 새롭게 유입된 다른 도시 국가는 바로 베네치아이다. 베네치아가 두뇌 유입국이 되어 재능 있는 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이 항구 도시에 존재하는 '자유'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 교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는 철저한 정치 중심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했다.

특히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사고는 르네상스 운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정치가 종교에 희생되지 못하도록 막는 공화국 체제와 이질 분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는 베네치아를 르네상스 시대의 꽃으로 만든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체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지 않은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에 있다'고 밝힌다. 모든 세상의 움직임은 기존의 것에 대한 의심과 합리성, 정신과 육체, 감각과 이성의 조화로운 사고에 기초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르네상스의 정신 운동은 되새겨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변화와 발전을 거부하는 보수적 사고를 버리고 합리성과 감성, 이성의 조화를 꾀할 때에 사회는 더욱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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