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성산의 풀꽃
천성산의 풀꽃 ⓒ 김교진
이번 천성산 산행은 경남과 부산에 사는 회원들뿐만 아니라 서울에 사는 회원들도 참여하였다. 경남 부산에 사는 회원들은 한 번씩 가보았겠지만 서울에 사는 회원들은 천성산에 대해 이름만 들어봤던 산이기에 기대가 컸다.

풀꽃세상 회원인 ‘걷는풀’회원은 "제가 태어난 곳이 경남이기는 하지만 천성산에 가본 적은 없어요. 요즘, 천성산 터널 건설문제가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라서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참가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천성산은 812미터의 산이지만 공식적인 등산로만 10개 이상이 된다.이 등산로들을 통해 한 달에 한번씩만 천성산에 간다고 해도, 일년은 다녀야 천성산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솔’이라는 회원은 “내 집 주방에서 보면 천성산의 미타암이 보입니더. 내는 마 매일 천성산의 미타암을 보며 그곳 부처님에게 천성산을 살려달라고 기도드리며 삽니더”라고 말했다.

천성산은 얼마 전, 지율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57일간 단식하여 도롱뇽소송을 이끌어냈던 곳으로 무분별한 고속철 관통으로 인해 산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산을 밟는 것조차 산은 부담을 갖는다고 하는데, 산의 몸통을 뚫어 길을 낸다는 것은 산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이다. 또한 그런 공사는 산에 사는 생명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어느 산에서도 터널을 함부로 뚫어서는 안 되겠지만 천성산은 세계적인 희귀지형으로서 22개의 고층 늪(화엄 늪, 무제치늪 등)과 12개의 계곡(내원계곡, 법수계곡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 환경 단체 회원들은 "꼬리치레 도롱뇽과 황조롱이, 수달, 꼬마잠자리, 솔나리 등 30종이 넘는 천연기념물과 환경부 지정 법적 보호종이 서식하는 천성산에 터널을 뚫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천성산에는 비구니 사찰인 내원사가 크고 유명하지만 이외에도 불광사, 미타암, 원효암, 홍룡사 등 크고 작은 절들이 많다. 우리는 홍룡사를 출발하여 내원사까지 가기로 하였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계곡은 물이 철철 넘쳐 흘렀다.

산행하느라 힘들다고 한 초등학생이 계곡물에 머리를 담그고 있다
산행하느라 힘들다고 한 초등학생이 계곡물에 머리를 담그고 있다 ⓒ 김교진
여름 더위가 남아 있는 9월의 한 낮은 무척 더웠다. 그만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더위와 목마름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5살, 7살 먹은 남매와 8살짜리 남자아이가 있었으나 아이들은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일행에 어린이가 있어서 5살난 남자아이는 밑에서부터 업고 올라갔고 7살난 여자아이는 걷거나 안고 산에 올랐다.
일행에 어린이가 있어서 5살난 남자아이는 밑에서부터 업고 올라갔고 7살난 여자아이는 걷거나 안고 산에 올랐다. ⓒ 김교진
홍룡사에서 오르는 길에는 지난 2월, 등산객들의 부주의로 산불이 일어 주변의 많은 나무들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를 본 회원들은 부주의한 산행에 대한 경각심도 갖게 되었다.

산 속에서 버스와 지뢰를 만나다

천성산에 사는 많은 생명체 가운데서도 ‘꼬리치레 도롱뇽’이 소송의 원고로 등장한 만큼 회원들은 천성산에 오면 도롱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등산로 계곡에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아쉽게도 움직이는 동물들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을에 피는 꽃과 그 꽃을 찾는 벌레들은 쉽게 볼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자꾸 뒤처지는 일행을 달래가며 올라간 곳은 원효암이었다.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원효암에 오르기 전 누군가가 “버스가 있다”라고 소리쳤다. 이 높은 곳까지 버스가 다닐 정도로 큰 길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 일행은 능선에서 관광버스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산에까지 차를 몰고 오는 편안함만을 쫓으려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천성산 정상부근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버스가 올라 올 정도로 넓은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천성산 정상부근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버스가 올라 올 정도로 넓은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 김교진
원효암 위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산 밑에서부터 군부대까지 차가 올라 올 수 있게 길이 나 있었다. 원효암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려면 군부대 옆에 있는 등산로를 걸어야 하는데…. 등산로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지뢰위험이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보였다.

군부대 옆으로 등산로 안내판이 있고 등산로에는 지뢰 경고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에서 는 이러한 대인지뢰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군부대 옆으로 등산로 안내판이 있고 등산로에는 지뢰 경고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에서 는 이러한 대인지뢰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 김교진
우리나라의 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많이 있고, 그 부근에는 지뢰를 묻어두었다고 하는데 천성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살벌한 지뢰 매설 지역을 나오니 넓은 억새밭이 펼쳐졌다. 이곳이 산지 습지인 화엄늪이다.

우리는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양산시에서 제일 맛있다는 동동주를 한잔씩 마시며 땀을 식혔다.

억새는 산에 살고 갈대는 물가에 산다.
억새는 산에 살고 갈대는 물가에 산다. ⓒ 김교진
일행 중 한 명이 “갈대밭 참 멋있습니더” 라고 말하자,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다른 분이 “이게 무슨 갈대여 억새지” 라고 말한다.

“갈대와 억새가 어떻게 다른데요?”
“아, 내가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강가에 사는 것은 갈대, 산에 사는 것은 억새 아니겠나?”
“그럼 으악새는 무슨 새입니꺼?”
“으악새? 글쎄, 억새를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왜가리의 사투리라고도 하던데 나도 잘 모르겠다.”

갈대와 억새의 논쟁은 으악새로까지 확대되었으나 아무도 자신있게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눈앞에는 통도사를 품고 있는 영취산이 가까이 보였다. 산 아래에는 양산시가 보였고, 부산의 금정산 등 주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화엄벌의 억새 군락

시간은 이미 오후 3시가 되었다. 서둘러서 내려가야 했다. 몸을 일으켜 몇 미터 걸어가니 화엄벌 습지 보전구역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그 아래에는 우리 일행이 쉬었던 곳보다 훨씬 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이를 업고 화엄벌 억새밭을 향해 가고 있다
아이를 업고 화엄벌 억새밭을 향해 가고 있다 ⓒ 김교진
오랜만에 넓은 억새밭을 보았다. 경남 부산 쪽의 산에는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화왕산 등 억새로 유명한 산들이 많이 있지만 천성산의 화엄벌에 펼쳐진 억새도 그 못지 않게 장관이다.

조금 전 천성산에 뚫린 군사도로와 지뢰밭을 보고 안 좋았던 기분이 탁 트인 화엄벌의 멋진 모습을 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언뜻 보면 군사시설로 인해 천성산은 순수함을 잃은 것 같다. 하지만이 화엄벌과 곳곳에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천성산을 명산이라고 칭하게 할 만하다.

풀꽃세상 회원들이 화엄벌 바위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풀꽃세상 회원들이 화엄벌 바위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 김교진
화엄벌은 원효대사가 일천여명의 불자들에게 설법을 하였다는 곳이다. 화엄벌 가운데에 있는 화엄늪은 우리나라에 있는 다섯 번째 고층 습원지로써 멸종위기 식물이나 희귀 식물이 많이 살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 보고 된 우리나라의 고층 습원지는 강원도 양구 대암산 용늪과 울산시 정족산 무제치늪, 경남 산청군 왕등재늪, 경남 양산시 취서산 단조늪 등 4 군데에 불과하다.

억새군락은 용천수가 나오고, 물자라가 살고 식충식물이 사는 습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 억새군락에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억새밭이 온통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정해진 등산로로만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엄벌을 바라만 봐도 ‘우리가 왜 이곳을 지켜야 하는지’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성산 화엄벌의 전체 모습.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
천성산 화엄벌의 전체 모습.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 ⓒ 김교진
억새가 사는 곳에는 억새 이외에는 다른 식물들이 제대로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하도 풀이 억세어서 풀이름조차도 억새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억새 이외에는 다른 식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 보이는 억새 무리 옆에 외롭게 핀 꽃들이 반가울 정도다.

화엄벌을 뒤로 하고 비구니 사찰인 내원사로 내려가려고 하였으나 아쉽게도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내원사와 내원사 계곡은 가지 못했다.

다음 산행을 약속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이나 걸린 천성산 산행을 마무리 했다.

특히 일행 중 세 명의 어린이들도, 어른들조차 힘들어하는 8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해내어서 아주 자랑스러웠다.

화엄늪 감시 초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엄늪 감시 초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 김교진
한 번의 산행으로 천성산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말로만 듣던 천성산에 직접 가 보니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고, 뭇 생명들의 고귀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지켜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