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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하여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의 가슴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에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런 것은 어린애도 다 아는 이치 아닙니까? 먼 길을 온 내게 고작 그것밖에 할 말이 없답니까?"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선사가 차나 한잔 하라고 붙잡자 그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선사가 물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 내가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 박인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해졌습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맹사성이 소리쳤지만 선사는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난 맹사성을 보고 말했다.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지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는 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선사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이다. 강원도 집들은 다 야트막하다. 집집마다 문이 다 여닫이인데 문 높이가 내 키보다 훨씬 낮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 보니 그 사실을 잊어 버릴 때가 많았다. 교우들 집이나 동네 이웃집이나 들어가면서 내 이마가 문틀에 박치기를 한다. 별이 번쩍번쩍 한다. 손으로 아픈 이마를 만지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오면서 문틀에 또 박치기를 한다. 이마가 성할 날이 없었다. 작은 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심지어 다락문 같은 데는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잊어 버리고, 또 박치기를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을까?

요령부득하면, 이마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친다. 문이 주는 화두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 그 반대가 '교만'이다.

▲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 박인오
교만은 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풍요롭게 한다. 오만한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오만의 그릇은 쏟아 보면 나올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빈 그릇에서도 지략이 철철 넘쳐 쏟아진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을 내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조그만 일에 성을 낸다.

자기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교만을 떨면 마음은 추해지고 만다. 자기가 잘났다고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겸손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아직 인생의 철이 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삶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내가 낮아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세상의 문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결국 길과 문은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고, 또 그 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다. 낮아져야 한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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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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