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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가고 가을 오는 계절의 순환이 이렇게 '경·이·롭·게' 다가오는 걸 보면 분명 나이 탓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연두에서 연노랑으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루며 이제 막 가을 색깔로 곱게 익어 가는 산골 다랑이 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몇 번이나 더 맞을 수 있을 지, 이런 생각이 미치면 이내 가슴이 서늘해진다. 해마다 맞고 또 그렇게 덧없이 보낸 가을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만, 이 순간이 생애 처음 맞는 가을처럼 눈부시다.

▲ 깎아지른 절벽에 나란히 피어 있는 가을꽃 구절초의 금슬이 좋아 보입니다.
ⓒ 장권호
비로 쓸어버린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코스모스가 절정인 가을 길 따라 천 년의 숨결이 배어 있는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성을 향해 발길을 향한다.

금성산성이 위치한 금성산(603m)은 남으로 담양군 금성면과 용면, 북으로 전북 순창군 강천사 계곡과 경계를 이루며 담양읍에서 동북쪽으로 6km에 위치하고 있다. 담양읍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원율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다시 7∼8 분이면 우측산길로 이어지는 금성산성 입구 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다.

간이 매점이 있는 곳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는 있으나 번잡을 피하려면 주차장에서 내려 걷는 게 낫다. 본격적인 산성 답사는 간이 주차장에서부터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산성으로 이어지는 주 보급로의 기능을 다했을 소나무 울울한 이 호젓한 산길은 그냥 쉬엄쉬엄 걷기에 좋은 길이다.

▲ 내남문에서 바라본 외남문 전경으로 산과 들과 호수가 어우러진 절경입니다
ⓒ 장권호
평양성보다 더 우수한 천연 요새, 금성산성

이마와 등에 촉촉이 땀이 배어들만하면 이내 금성산성 외남문이다. 최근 내남문과 함께 복원한 외남문 문루에 앉아 보면 비로소 호남 제일의 산성으로서 금성산성의 위용을 알 수 있다. 외남문의 좌우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데, 좌우 절벽을 따라 외성벽을 쌓아올리고 다시 내성으로 이어지는 내남문 성벽과 연결하여 이중으로 철벽 방어선을 구축한 천연 요새다.

사직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임진년 '7년 전쟁' 와중에 백사 이항복이 선조에게 고하기를 "담양은 산성이 크고도 웅장하여 평양성보다도 더 우수합니다. 또 지형이 험준해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지킬 수 있는 곳이 2/5나 됩니다"라고 했다는데 그의 고함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이곳 외남문 문루에 앉아 보면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켜켜이 쌓아올린 성벽의 돌 하나하나에 옛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듯 가슴이 저려옵니다.
ⓒ 장권호
담양의 추성지(秋成誌)에 따르면 금성산성의 축성 시기는 멀리 삼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오늘의 규모로 본격적으로 축성된 것은 학계에서는 대체로 고려 중기로 본다. 고려 때는 항몽의 격전지였고 임진왜란은 물론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 역사의 격변기마다 요새로서 기능을 발휘하였다.

또 정유재란 시엔 남원성과 더불어 호남 방어전선의 거점이었으며, 갑오년 동학농민전쟁 시엔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격전지로 최후를 장식했다.

평지에 조성된 읍성들과는 달리 가파른 능선을 따라 축성된 금성산성은 전체 길이가 7.3km에 면적이 36만평이 넘는 거대한 규모로 사람을 압도한다. 노적봉과 철마봉(475m), 연대봉과 시루봉(504m)을 거쳐 운대봉(603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전형적인 산성인데, 성벽 안쪽으로는 비상시엔 7000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넓은 계곡과 우물을 안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장기전과 대규모 전투가 가능한 한반도에 몇 안 되는 거대한 규모의 산성이다.

▲ 스위스의 호수를 연상케 하는 담양호의 푸른 물빛이 물고기 등보다 더 푸릅니다.
ⓒ 장권호
산과 들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산성풍광

산성 완주를 위해 내남문 성벽을 타고 노적봉과 철마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성산성 전 구간 중 가장 조망이 빼어난 이 구간은 멀리 무등산과 불태산, 병풍산과 추월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까이는 담양읍에서 봉산과 수북 들판을 거쳐 광주의 첨단 단지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평야가 발 아래 조망된다. 이런 풍광을 일컬어 옛 사람들은 일망무제(一望無際)라 하지 않았나 싶다.

노적봉에서 한숨을 돌리고 철마봉을 향하면 물고기 등보다 더 짙푸른 거대한 담양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혹시 담양호를 동네 저수지쯤으로 상상하는 분들께는, 스위스의 호수를 연상해도 실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산과 들이, 하늘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절경 앞에서 나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차라리 눈을 감는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길은 때론 깎아지른 절벽과 이어지는데 이런 구간은 따로 성벽을 쌓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이용했다. 이런 아찔한 절벽을 끼고 7km의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성벽을 쌓아 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고역이었으리라.

▲ 저녁 연기 오르고 하루가 저물어 가는 남도의 들녘은 이다지도 아름답습니다.
ⓒ 장권호
담양의 향토 사학가 이해섭씨에 의하면 성(城)을 쌓으면서 이곳에 강제로 동원된 백성들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죽어갔다고 한다. 배고파 죽고, 병들어 죽고, 돌에 치여 죽었으며, 여름엔 더위에 지쳐 죽고, 겨울엔 추위에 얼어죽어 나갔으니, 여기에서 유래한 욕설이 '오살(五死) 할 놈'이라고 한다. 장장 5시간이 소요되는 금성산성 답사 길 내내 가파른 경사를 따라 켜켜이 쌓아올린 성벽의 돌덩이 하나하나에 옛 사람들의 피와 땀이 어린 듯하여 가슴이 저려왔다.

겹겹한 산과 협곡이 만들어 낸 국토의 주름

철마봉을 거쳐 서문과 북문을 지나 북쪽 능선 연대봉에 이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꼭 네 시간이 지났다. 금성산성 전 구간 중 3/5 지점쯤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준비해 온 소박한 도시락을 열어 본다. 사과 두 알에 송편 예닐곱이다.

▲ 최근에 복원한 서문에서 북문으로 오르는 능선 길에 쌓아 올린 성벽의 모습입니다.
ⓒ 장권호
철마봉 조망은 남쪽으로만 열려 있는데 연대봉 조망은 남북이 모두 열려 있다. 북쪽 조망은 단풍으로 유명한 순창의 강천사 계곡이다. 남쪽 조망이 산과 들과 호수라면, 북쪽 조망은 끝없이 이어지는 겹겹한 산과 협곡이 만들어 낸 국토의 주름이다.

국토 가용률이 높은 유럽과는 달리 산지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국토의 주름이 많다. 산과 계곡으로 이어지는 깊은 주름이 많은 이 땅은 다니면 다닐수록 숨겨진 곳이 많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삶의 겹이 두터운 것이다.

겹겹한 주름으로 유혹하는 강천사 계곡은 다음 답사를 위해 남겨 놓은 채 오늘의 마지막 관문 동문을 향해 출발한다. 동문을 거쳐 동학농민전쟁 때 불타버린 성안의 부속건물 터와 보국사지까지를 둘러보고 외남문 문루에 도착했을 땐 짧은 가을해가 벌써 산자락을 넘는다.

▲ 외남문에서 바라본 내남문의 저물어가는 모습입니다.
ⓒ 장권호
여행 마무리

금성산성은 외성의 성벽만 타고 걷는데도 5∼6시간이 소요된다. 만일 내성이나 그 주변의 부속 건물 터를 포함해 성 안 여기저기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하룻길로도 빠듯하다. 넉넉하게 하룻길을 잡고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온천욕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산성 바로 아래 깔끔하게 새로 단장한 담양리조트 노천탕으로 고된 산행의 피로를 풀면 더욱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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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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