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많은 인파로 붐비는 구리종합시장
많은 인파로 붐비는 구리종합시장 ⓒ 송영한
한때는 서울의 어떤 재래시장보다도 잘 나갔다던 구리종합시장. 25일 오후에 둘러본 구리시장의 대목 풍경은 몇 년 전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여느 재래시장보다는 활기가 있는 편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단골 연설장소로 쓰이는 시장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팔뚝만한 무를 리어카에 쌓아놓고 "자아, 팔뚝만한 고랭지 무가 한 개에 1500원이여. 엊그제만 해도 3000원하던 무가 1500워언"하며 목청을 돋우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맨 먼저 보인다.

"지난번 태풍이 지나갈 때만 혀도 쥐 꼬랑지만한 무값이 3000원씩이나 혔는디 시방은 팔뚝만한 것이 1500원잉께 겁나게 싸졌지라잉. 그래도 하늘님은 철따라 먹을 것을 꼭 맞춰 주시는 것 같소"하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조물주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팔뚝만한 고랭지 무 사려~~
팔뚝만한 고랭지 무 사려~~ ⓒ 송영한
옆에 있던 상인 하나가 "지난번 선거 때에도 이 자리에서 재래시장을 살리는 무슨 놈의 법을 만든다고 하더니 꿩 구어 먹은 소식"이라면서 "그런 법을 만드시는 높은 분들이야 대목 때에도 자가용타고 백화점으로 쇼핑하러가지 이 복잡한 시장 통에 납실 일이 없으실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재래시장도 굵은 손님들을 맞으려면 일단 주차시설이 있어야 하고 상품의 질과 위생상태도 높이는 등 자구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구리종합시장 소방도로 가운데를 따라 쭉 펼쳐진 노점 터는 시장 안에서 제일 좋은 목이다. 소방도로기능을 두고 시청과 말썽이 끊일 날 없는 이곳은 그래도 재래시장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과일을 진열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올게 과실 맛은 꼭 꿀이라카이. 과실이 단디 여물면 모 하노. 풍년 들면 가격 팍 내려뿐다 안카나"하고 푸념을 하면서도 연신 과일을 보기 좋게 진열하기 바쁘다.

단디 여물면 머하노?
단디 여물면 머하노? ⓒ 송영한
사실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도 올해 과일 맛은 유별나게 달고 값도 싸서 노란복숭아(黃桃)를 벌써 두 박스째 사다놓고 먹는 중이다. 전문가들 말로는 일조량이 많아서 당도가 높다고 하니 사람이 아무리 설탕을 만드느니, 아스파탐 같은 대체감미료를 만드느니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온 나라의 과일 맛을 한 번에 달게 하는 절대자 앞에서는 작아만 보일 뿐이다.

골목을 꺾어 도니 모서리 야채가게에 손님이 와글거린다. 야채를 한 바구니 사서 나오는 초로의 할머니에게 "할머니 왜 저 집만 손님이 많지요?"하고 물으니 "저 집이 목도 좋지만 가격이 싸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한 푼이라도 싼 곳으로 가는 거지요. 그리고 장사가 잘 되는 집 물건은 회전이 잘되어 야채도 훨씬 싱싱하답니다"고 살짝 귀띔한다. "아지매 떡도 싸야 사먹는다"는 옛말이 그른 말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비록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기자가 기억하는 명절은 새 옷, 새 신발, 새 양말 그리고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다. '밥은 굶어본 놈이 잘 먹고 고기는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평소에 안 먹던 고기를 먹고 난 명절 끝에는 항상 설사병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역시 명절 상에 고기는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이미 우리 식탁을 절반 이상 점령한 외국 식품에는 고기도 예외가 아니라서 쇠고기에 이어 닭고기, 오리고기까지 외국고기가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돼지고기가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웰빙바람 만만치 않아요
웰빙바람 만만치 않아요 ⓒ 송영한
"자아. 양념에 푸욱 빠진 돼지갈비 한 근에 4500원, 소갈비 한 근에 6000원 밑지고 팝니다. 원가 이하요, 원가 이하아."

인기 가수처럼 마이크를 머리에 쓴 바람잡이가 손님을 끌어보지만 고깃간에 손님들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요즘은 웰빙 바람이 불어서 기름진 음식을 그리 많이 먹지도 않지만 아무래도 경기 탓이 아니겠냐며 상인들은 울상을 지었다.

고기를 사서 나오는 한 아주머니는 "소갈비 6000원이라는 말은 곧 수입소고기라는 뜻이고 돼지갈비도 양념한 고기는 어떤 고기인지 분간 할 수 없어 아예 생 돼지갈비를 토막내서 집에서 재어 찜을 할 요량"이라고 말했다.

구리 종합시장은 동쪽 골목으로 빠져 나서서 경마장을 건너면 바로 남양시장과 연결된다. 남양시장 쪽으로 연결 되는 삼거리에 이르기 까지 전을 부쳐 파는 집, 식혜를 끓여 어름에 재어 놓는 집, 어느 공장에서 땡 치는 물건을 가져왔는지 "유명메이커 양말이 한 켤레에 500원씩 만원어치만 사면 고향 가는 길 선물걱정 없습니다"하고 손님을 부르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삼거리 모서리 밑반찬 집에는 100여 가지 밑반찬이 맛깔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충청도 대천이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우리 집 반찬이 한 100여 가지 되는디. 다 나하고 며느리가 직접 만든겨"하고 "인자부텀 부침개를 부쳐서 팔어야쥬우"하면서 동태포에 연신 계란 옷을 입힌다.

밑반찬을 사다 먹는다는 것은 더구나 명절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었지만 핵가족이 점점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밥을 먹기 때문에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큰길을 건너 남양시장 초입으로 들어서니 구리시장과는 영 딴 판이다. 우선 시장 이쪽에서 반대쪽 끝이 훤히 보일 정도로 한가로운 풍경이고 송편을 두어 움큼 정도 진열해놓은 떡집 외에는 도무지 명절 기분이 나지 않았다.

떡 세트가 잘 나가지요
떡 세트가 잘 나가지요 ⓒ 송영한
남양시장의 한 상인은 "기자 양반, 큰길가에 대형마트들이 들어서서 심지어 콩나물에 두부까지 포장해서 파니 무슨 놈의 장사가 되겠어?"하고 푸념을 해대며 "힘들어도 명절들은 잘 쇠어야 하는데"하고 한숨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입구의 떡집에 들렀다. 추석이라 갖은 색깔의 송편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정작 돈 되는 것은 각양각색으로 낱 포장된 떡 선물세트란다. 보기에도 먹음직한 여러 가지 떡을 먹기 좋게 한입거리로 낱개 포장하여 한 박스에 2만5000원에서 3만5000원 받는데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우리 민족 전래의 먹을거리도 다양한 제품의 개발과 패션화가 되어야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경제가 어렵다고 네 탓이니 내 탓이니 하며 손을 놓고 있지만 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국민의 이마에도 한가위 환한 보름달처럼 주름살이 없어질 날이 올 것이다.

형형색색의 송편들
형형색색의 송편들 ⓒ 송영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