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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에 앉아 바라본 바깥 풍경
운조루에 앉아 바라본 바깥 풍경 ⓒ 서정일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엔 운조루라 불리우는 양반 가옥이 하나 있다. 유이주(1776)에 의해 지어진 이 가옥은 후손들에 의해 잘 관리되어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큰 훼손 없이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지리산 자락을 뒤로 하고, 정면으로는 문인들이 많이 나온다는 오봉산과 여러 개의 불기둥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양의 산이 있다. 그 기운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집 앞엔 수로와 연못을 만들었다 전해져 세심하게 지어 놓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00여년이란 세월은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6·25라는 큰 재난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어떻게 이 건물이 건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특히 이 지역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곳이었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나눔의 미학을 실천한 운조루의 뒤주
나눔의 미학을 실천한 운조루의 뒤주 ⓒ 서정일
유씨의 후손인 유홍수씨는 그런 의문을 풀 수 있는 물건 하나가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부엌에 자리하고 있는 뒤주인데 지름 80cm 정도의 큰 통나무로 속을 파고 곡식들을 담았으며 아래엔 두개의 구멍이 있어 곡식을 뺄 수 있게 만든 약간 특이한 구조를 가진 쌀뒤주였다. 그런 독특한 구조를 제외하면 일반 쌀뒤주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물건이 현재까지 운조루가 남아 있게 하는 신통력을 발휘했다고?

15년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정문 앞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유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뒤주에는 항상 곡식을 채워 마을 주민들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가져 갈 수 있도록 곳간에 놓았지요. 특히 흉년이 들 때면 집 주인이 직접 챙겼다 하니 어려운 가정에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주민들이 이 집을 난리통에도 지켜 준 것이지요. 나눔을 실천한 유씨와 그 은혜를 입은 마을 주민의 보은이 낳은 결과라 볼 수 있는데 그 사이에 이 뒤주가 있었던 것입니다."

곡식이 그득하면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진 것이고 바닥이 드러날 정도면 어려운 주민들이 많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어 마을 살림살이의 이모저모도 살필 수 있었다는 운조루의 뒤주. 더불어 사는 사회의 넉넉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올해 서민 경제는 더 없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나눔의 미학을 실천한 유씨와 뒤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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