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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나키 지역 지도
타라나키 지역 지도 ⓒ taranakinz
뉴질랜드가 대영제국으로 편입된 1840년 이후,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여 정착함에 따라 땅을 둘러싼 분쟁이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새로 이주한 백인들에게 땅은 돈을 벌기 위한 농장을 의미했던 반면, 오랜 세월 그 땅에서 살아온 마오리족에게 땅은 조상의 혼과 숨결이 서린 공동체의 터전이었다.

마오리족은 그 터전을 총 몇 자루와 돈 몇 푼을 받고 헐값으로 백인들의 손에 팔아 넘기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게 해서 촉발된 토지 분쟁이 대규모 전쟁 상황까지 이른 곳이 바로 타라나키 지역이었던 것이다.

1860년 2월, 뉴 플리머스 근처의 작은 마을 와이타라(Waitara)에서 발발한 타라나키 토지 전쟁(Taranaki Land Wars)은 이후 뉴질랜드 북섬의 중앙에 자리한 와이카토(Waikato) 지역과 동쪽 해안 지역인 플렌티만(Bay of Plenty)까지 확산되었다. 수 차례에 걸쳐 정부군의 진압과 마오리족의 저항이 이어진 이 토지 전쟁은 10년 이상 끌어 1872년에 가서야 그 막을 내렸다.

백인들은 이 토지 전쟁을 '마오리 전쟁(Maori Wars)'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마오리족은 이 전쟁을 '테리리 파케하(teriri Pakeha: '백인들의 분노'라는 뜻)'라고 불렀다. 수천 명의 마오리 전사들과 영국 군인들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땅은 남자들을 죽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마오리족의 옛 속담을 이 전쟁은 너무나 분명하게 증명해 보였다.

남부 타라나키 지역의 중심지인 하웨라(Hawera) 역시 이런 아픈 역사의 상처를 곳곳에 지니고 있다. 하웨라의 북쪽 근교에 자리한 투루투루 모카이 파(Turuturu Mokai Pa)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파(Pa)'는 다른 부족들의 침입에 대비해 주로 고지대에 요새처럼 지어놓은 마오리의 전통적인 주거지를 말하는데, 타라나키 토지 전쟁 때에는 영국군에 대항하는 마오리족의 방어 진지로도 사용되었다. 투루투루 모카이 파 역시 타라나키 토지 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주요 방어 진지 중의 하나였다.

타피티 박물관에서 본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방어용 주거지 파(Pa)의 미니어처
타피티 박물관에서 본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방어용 주거지 파(Pa)의 미니어처 ⓒ 정철용
그런데 투루투루 모카이는 마오리 말로 '마른 머리들을 걸어놓는 효수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 마오리족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졌던 타라나키 토지 전쟁의 격렬함과 끔찍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진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하웨라 근교의 한 농장에서 묵고 난 다음날이었던 그날 아침,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뒤처져 있었다.

평화로운 농장의 아침 풍경과 귀여운 돼지새끼에 마음을 빼앗겨 꾸물거리느라 그날 오전 일정으로 잡아 놓은 투루투루 모카이 파와 타피티 박물관을 모두 다 둘러보기엔 시간이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둘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는데, 우리는 타피티 박물관을 선택했다.

타피티 박물관 :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제쳐놓고 타피티 박물관(Tawhiti Museum)을 선택한 데에는, 그 전날 밤 농장을 찾지 못해 도움을 청한 우리에게 직접 차를 몰아 농장까지 길 안내를 해 준 시골 아저씨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우리와 헤어지기 전, 내일 꼭 타피티 박물관에 가보라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여기에 '뉴질랜드 최고의 사설박물관'이라 소개하고 있는 안내 책자의 유혹도 쉽게 외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건너뛰고, 하웨라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타피티 박물관으로 바로 향했다.

겉에서 본 박물관 건물은 고색이 창연했다. 1917년에 건립한 치즈 공장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찌 보면 역사를 품고 있는 박물관 건물로서는 더 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많은 기대를 품고 찾아온 여행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겉모습이었다.

그 겉모습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낡은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으리라고 지레 짐작한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물관의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그러한 첫 인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인들의 이주 전 마오리족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는 미니어처
유럽인들의 이주 전 마오리족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는 미니어처 ⓒ 정철용
유럽 이주민들이 뉴질랜드에 발을 딛기 이전, 타라나키 지역에서 살았던 마오리족의 삶의 모습을 마치 축소한 영화세트처럼 정교하게 복원해 놓은 수많은 미니어처 전시물들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빛 바랜 사진과 유리관 안에 모셔진 유물만으로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그 옛날 마오리족의 생활상이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있었다. 얼굴에 문신이 가득 새겨진 모습으로 전시장의 구석구석에 서 있는 실물 크기의 마오리 전사 인형들은 금방이라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 것 같았다.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방어용 촌락 파(Pa)의 미니어처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방어용 촌락 파(Pa)의 미니어처 ⓒ 정철용
그러나 용감무쌍해 보이는 이 마오리 전사들도 총과 포로 중무장한 영국군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으리라. 실제로 타라나키 토지 전쟁에 관련된 전시물들을 늘어놓은 다음 전시실에서 우리가 본 미니어처들은, 마오리 전사들이 영국군에 쫓겨서 고지대의 파로 피신하고, 그나마 그 파도 공격을 당해 서둘러 부녀자들을 피신시키고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라나키 토지 전쟁이 끝나고 뉴질랜드 정부는 130만 에이커에 달하는 타라나키의 토지를 몰수했다. 땅을 잃은 마오리족은 깊숙한 오지나 도시의 빈민가로 내몰렸고, 유럽에서 이주해온 백인들이 이제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오리족에게 빼앗은 땅에서 양을 방목하고, 아름드리나무들을 벌목하고, 석탄을 채굴했다.

실물 크기로 제작한 초기 유럽 이주민들의 생활상. 어린 소녀가 아빠에게 잡은 쥐를 보여주고 있다.
실물 크기로 제작한 초기 유럽 이주민들의 생활상. 어린 소녀가 아빠에게 잡은 쥐를 보여주고 있다. ⓒ 정철용
타피티 박물관에 마련된 전시장의 대부분은, 바로 그렇게 마오리족에게 빼앗은 땅에 이룩한 백인들의 행복한 삶의 풍경들을 포착하여 제작한 실물 크기의 인형들과 정교한 미니어처 전시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한 세기 전에 등장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한 세기 전에 등장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 정철용

미니어처로 제작한 초기 유럽 이주민 가정의 흥겨운 한 때
미니어처로 제작한 초기 유럽 이주민 가정의 흥겨운 한 때 ⓒ 정철용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들판에서 잡은 쥐를 보여주고 있는 소녀, 멋지게 차려입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쳐다보고 있는 신사, 그리고 함께 우유를 짜고 노래 부르며 춤추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더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남자들의 피를 지불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각각 독립된 방으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박물관 문이 닫히고 어둠이 내리면 땅을 잃은 마오리 전사들과 그 땅을 차지한 유럽에서 온 백인들 간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수적으로 열세인 마오리족이 백인들을 당해내기는 어려우리란 생각이 들었다.

벌목한 나무들을 실어나르는 녹슨 철로가 이어지는 제재소 건물
벌목한 나무들을 실어나르는 녹슨 철로가 이어지는 제재소 건물 ⓒ 정철용

바큇살이 떨어져나간 이 나무 수레바퀴처럼 역사의 수레바퀴에도 사라진 부분이 많으리라.
바큇살이 떨어져나간 이 나무 수레바퀴처럼 역사의 수레바퀴에도 사라진 부분이 많으리라. ⓒ 정철용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숲으로 이어지는 녹슨 철로가 있는 제재소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한 세기 전 이 지역에서 번창했던 벌목 산업을 재현하기 위해 나중에 추가된 이 숲 속을 달리는 철로는 지금도 매달 첫째 일요일(방학 중에는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운행이 된다고 한다.

나는 그 제재소 앞에 있는, 바큇살이 떨어져 나간 수레바퀴를 여러 장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은 도로에서 사라진 수레바퀴처럼, 피로 물든 타라나키 지역의 역사도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망각을 불러내는 박물관에서조차 이 땅의 옛 주인이었던 마오리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저 수레바퀴의 바큇살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는 패자에 대한 기억은 실어 나르지 않는다.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 역사의 이 냉혹함에 나는 잠깐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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