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비는 여전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호종단님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답니다.”
“네가 대체 누구냐고!”
“이전에 비가 안와서 땅이 마르고 갈라질 때 저희 밭에 물을 대주신 적이 있었지요?”

 나비는 여전히 날개를 팔랑이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다가 더위에 지쳐 쉬고 있을 때 물을 가져다 주신 적이 있어요.”

 그 나비가 하는 이야기는 도저히 반항할 수 없을만한 엄청난 힘이 실려있었습니다.
호종단의 뇌리에는 아주 옛날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새미선녀와 매미선녀 때문에 역술서를 찢어버리기 전 호종단은 그 역술서로 가뭄에
허덕이는 농부들에게 물길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낮의 더위에 시달리며 고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마실 수 있도록 우물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선하게 다시 보였습니다.

 하지만 호종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비를 향해 손사래를 해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
습니다.

“그런 전부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라구, 그 이야기를 지금 왜 나한테 꺼내는 거야!”

 나비가 말했습니다.

“호종단님의 수단은 이미 그 제주 앞바다에 빠져서 죽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비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며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 바리님과 백호님을 태우고 있는 저 불꽃은 수단이 아니에요, 바로 호종단님이
버리지 못하는 아집과 집착의 모습이지요. 저 불꽃은 호종단님도 그렇게 태우고 있던
것이었어요. 그래도 모르시겠어요?”

 그리고 그 나비는 마침내 커다란 불덩이가 되어 호종단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가슴 속에 들어온 불덩이가 뜨거운 것인지, 아니면 놀란 것인지 호종단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쳐댔습니다.

 순간 나비 뒤로 병풍처럼 드리워있던 물줄기는 땅으로 꺼져버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백호의 목을 껴안고 울고 있는 바리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바리는 천주떡 때문인지 아니면 백호가 지켜준 때문인지 아무 상처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바리를 보호하기 위해 거침 없이 불길 위에 뛰어든 백호는 털이 온통 불에 그을리고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신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는 백호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습니다.

“백호야, 죽으면 안돼. 여기서 죽으면 안돼, 산신령을 지키는 백두산 호랑이가 여기서 이렇게 바보 같이 죽는게 어딨어?”

 백호는 여전히 거친 숨만 내쉬면서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백호에게 말했습니다.

“정신 차려, 백호야, 네가 여기서 이렇게 다치면 어떡해. 나 천주떡을 먹어서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데…. 그 불길 속으로는 왜 들어온 거야, 엉 엉 엉.”

 바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이 바보 같은 호랑아, 네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앞으로 백두산 산신님은 누가 지키구…. 이제 조왕신님께도 가야 되는데, 나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간단 말이야. 우리 엄마 아빠 만나면 너도 만나봐야지. 나랑 같이 살아, 백두산에 가지 말고….”

 백호는 점점 더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드문 드문 털이 빠진 것에 화상을
입은 것 같은 자리도 보였습니다. 바리는 그 곳에 손을 데어보기도 하고 주물러 보기
도 했지만, 어찌 해야 좋을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바리는 그냥 울면서 소리를 지를 뿐이었습니다.

 “안돼, 백호야, 죽지 마. 난 너를 너무 사랑해. 진달래 언니 여기 없어요? 우리가
위험할 때마다 바로 온다고 했잖아요. 백호가 죽어요, 와서 좀 도와주세요. 호종단 아
저씨, 아저씨 개 때문에 우리 백호가 죽어요, 아저씨는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바리는 호종단이 서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호종단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바리 앞에 조그마한 아이가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울
긋불긋한 도포를 입고 얼굴에는 아주 평안한 미소를 짓고 서있었습니다. 앞으로 천천
히 걸어와서는 누워있는 백호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넌 누구니?”

영문을 모르는 바리가 물었습니다.

“난 호종단의 착한 마음이란다.”

어린 아이가 말했습니다.

“착한 마음이라구?”

“그래, 난 호종단 가슴 속에 깊이 잠들어 있다가 나타난 착한 마음이야, 네 덕분에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어.”

바리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