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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16일 오후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한 중대한 헌법 및 법률적 쟁점을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16일 오후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한 중대한 헌법 및 법률적 쟁점을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증거로서 능력을 발휘해왔던 기존의 판례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대법원(최종영 대법원장)은 16일 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을 열고, 공개변론을 통해 '변경'을 주장하는 변호인측과 '유지'를 주장하는 검찰 측간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둘러싼 당위성을 들었다.

대법원의 공개변론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중요한 사안일 경우나 기존의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이례적으로 열린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여성이 종중(宗中)의 종원(宗員)이 될 수 있는지를 가리는 종회회원확인 사건(소위 '딸들의 반란' 민사사건)에 대해 최초로 공개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 공개변론은 두번째이면서 형사사건으로는 첫 번째로 재판대에 올랐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을 둘러싼 변호인측과 검찰측의 논리 공방은 다음과 같다.

김종훈 변호사 "시대상황에 뒤떨어진 법해석은 시정돼야... 지금이 그 시점"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형사소송법 제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①검사가 피의자나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검증의 결과를 기재한 조서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 단,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 진 때에 한하여 피의자였던 피고인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불구하고 증거로 할 수 있다.
우선 변호인측의 김종훈 변호사는 발언대에 올라 "이번 사건에서 참고인의 진술을 증거로 삼아 유죄를 내려진 것에 대해 참고인은 1심 법원 증언에서 '검찰측의 협박 때문에 진술한 것으로 조서의 내용과 다르다'고 증언했다"며 "형식적 진정과 실질적 진정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는 이 같은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고 진술에 대한 위법이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기존의 판례는 피고인이 조서의 서명 등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면 조서자체에 증거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왔지만, 이는 조서작성과정에서 발생하는 위법이나 부당한 수사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다"며 "재판관은 법정에서 증언된 것으로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고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부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형식성이 인정되면 실질성도 인정돼야 한다는 추정론은 입법취지에 비춰 너무 쉽게 증거능력이 부여되는 것으로 유죄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의 부담을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것이어서 헌법상 무죄추정 원리에 반한다"며 "수사가 비공개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서명 등을 했더라도 조서의 진정성과는 관계없는 조서작성절차의 문제일 뿐이기에 증거능력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변호사는 "법해석도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법해석도 이례적일 수 없다"며 "시대상황에 뒤떨어진 법해석은 시정돼야 하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호철 변호사 "흔히 '조서를 꾸민다'는 말에 부정확·왜곡 상징적으로 보여줘"

이어 두번째 발언에 나선 김호철 변호사는 "(피고인이) 국가권력 중 최고인 검찰을 상대하는 한계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지 않고서는 이번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말을 이어갔다.

김 변호사는 "검사작성 조서를 증거로 사용해온 기존 상황은 공소제기 이후 추정론에 따라 검사가 '자백조서'를 작성하는데 심혈을 쏟게 만들고 있다"며 "이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시 가혹행위의 원인이 되고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법원도 형사재판에서 밀실 자백으로 작성된 조서를 통해 심증이 형성되고 사실상 서면심리 위주로 진행돼 '조서재판'에 치우는 결과를 가져와 당사자의 구두 변론과 직접 변론이 이뤄지는 '공판주의' 원칙에서 멀어졌다"며 "결국 '무죄추정의 원칙'보다는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실체적 진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김 변호사는 "이미 '자백조서'를 목표로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써진 조서는 음성언어의 일부만 박제된 형태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며 "흔히 '조서를 꾸민다'는 말에서 조사가 부정확하고 왜곡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김 변호사는 "밀실에서 만들어진 신문조서에 우월한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조서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걸림돌과 장애물이 될 것"이라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부여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김태현 검사장 "'밑져야 본전'식 조서내용을 부인하는 일 발생할 것"

이에 맞선 검찰측의 김태현 대검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은 "진술자가 자신의 서명날인이라고 인정할 경우 진술대로 조서가 작성됐음을 추정하는 것은 경험치상이나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기존의 판례는 유지돼야 한다"며 "형사소송법 입법취지를 고려해 검사나 사법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형식적 진정 성립을 인정하고 증거능력을 받아들여 그 내용에 대해서는 법관의 자율 신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공판송무부장은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의 저변에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있다"며 "현재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 사례가 없도록 감시하고 감찰하는 등 엄격한 적법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공판송무부장은 지난 2001년 11월 이후부터 올해 6월말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등에 대한 진정 550건 가운데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건은 2건에 불과하다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검찰 수사과정의 투명성과 검찰 자체의 인권의식 신장 등을 강조했다.

또 그는 "피고인은 비록 검찰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하더라도 전략적 고려에 의해 법정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는 주장을 할 수 있다"면서 "증인의 경우도 수사기관에서는 심적 부담감 없이 피의자에게 불이익한 진술을 할 수 있으나 법정에서는 피고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증언을 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증언을 못할 우려가 많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약에 판례를 변경하게 되면 피고인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조서내용을 부인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고, 이에 영합한 증인의 허위증언으로 인해 무죄판결이 많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의식 고취로 사법발전 기여" VS "판례 변경은 현실적으로 득보다 실 커"

변호인측과 검찰측의 변론이 끝난 후 합의재판부는 양측에 직접 의견을 묻기도 했으며, 이어 양측의 최후 변론을 진행했다.

변호인측의 이용훈 변호사는 "판례를 변경하자는 것은 검찰 조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식의 고취로 사법 발전을 이루자는 의견"이라며 "그동안 '승인'하는 재판에서 벗어나 공판중심주의, 직접변론주의로 가장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술이 이뤄져 법관이 직접 나서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게 된다면 검찰은 준 사법기관으로써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고 최후 변론했다.

이에 대해 김태현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사소송법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이념이자 목표이고 사명이란 것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실체적 진실 발견'도 형소법의 이념이자 목표"라며 "억울한 피고나 부정한 혜택 등 장·단점, 순기능·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충분히 고려를 해본다면 판례 변경은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됨이 형사법의 정의를 위해 옳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공개변론을 진행한 최종영 대법관은 선고기일을 추후에 통보하겠다고 밝히고 오후 4시10분께 심리를 마쳤다. 재판부는 이날 변호인측과 검찰측으로부터 들은 논거를 토대로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에 관련된 기존 판례를 변경할지 여부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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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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