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마루를 무대 삼아 아이들이 직접 꾸민 연극공연도 올렸습니다.
ⓒ 송성영

지난 여름 방학, 우리 집에서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의 여름 캠프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대형 캔버스에 공동으로 그림도 그리고 또 조를 짜서 스스로 음식도 만들어 먹고 어두컴컴한 개울가로 나가 가재를 잡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루청에 어줍잖은 공연 무대를 만들어 저마다 장기자랑도 펼쳤습니다.

이날 내가 맡은 일은 아이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이름하여 '추리극장'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컴컴한 마당 한가운데로 불러 모아놓고 먼저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등 뒤에서 귀신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면서요.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 귀신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다 쓰러져 가는 빈집 한 채가 있거든, 거기에 말여,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있는 겨. 그 보물을 얻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게 되지.

헌데 그 보물을 지키는 천하무적의 고양이 두 마리가 문제여. 아주 싸나운 그 놈들을 통과해야만 보물을 얻을 수 있지, 자 그럼 너희들이 지금부터 그 보물을 얻기 위해 그 빈집으로 떠나는 거다. 어떻게 하면 이 보물을 얻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설정해 주자 아이들은 각자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보물을 얻기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를 해치우고 보물을 가져오면 되지요."
"고양이가 아주 싸납다구 했지,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면 어른도 꼼짝 못혀…."

"그래두요, 작대기로 후려치면 도망갈 걸요?"
"그 방법으로는 보물을 가져 올 수 없다. 작대기쯤은 단박에 물어뜯어 버리는 놈들이니께."

"그렇다면요, 칼로 후려치면 되잖아요"
"그것도 안돼."

"그럼 총두요?"
"천하무적이라고 했는디 총 가지구 되겠어?"

무시무시한 폭력이 난무하는 컴퓨터 게임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점점 폭력적으로 이야기를 몰고 나갔습니다. 어떤 아이는 아주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에이 그럼 핵폭탄을 확 터뜨려 버리면 되잖아요"
"그럼 인마, 너도 죽게 되고 옆에 있는 친구들까지 다 죽고, 또 보물도 사라지게 되는 거지, 이 보물은 폭력으로는 절대루 얻을 수 없는 보물인겨, 너희들이 칼을 쓰면 그 고양이는 더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덤비게 될 것이고, 또 총이나 그 어떤 무기도 마찬가지여…. 폭력을 쓰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고양이여, 내가 아까 말했잖아 천하무적이라고…."

"고양이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잠잘 때 몰래 훔쳐 오면 안되나요?"
"그 고양이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 고양이여."

"아, 알았다, 그럼 고양이가 좋아하는 생선 같은 것으로 유인해서 그 틈에 보물을 가져오면 되잖아요."
"턱도 없다. 천하무적의 고양이가 어디 고런 속임수에 넘어갈 거 같혀,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보물이여…."

"에이 그런 게 어딨데유, 그럼 아저씨는 그 보물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데유?"
"그건 너희들이 풀어나가야지, 아저씨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 보물을 어떻게 가져와야 할지 나 또한 난감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추리극장'에서는 딱히 이것이 답이다, 라고 정해놓고 시작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생각에 제동을 걸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잔머리를 굴렸지만 나 역시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끙끙거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은근슬쩍 나섰습니다.

"고양이하구 친해지믄 안되나?"
"어? 친해져? 그래 그렇지, 친해지면 뭐가 되지?"

"친구요?"
"그래 맞다, 맞는 거 같다. 아저씨도 헤매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맞춘 거 같혀."

"친구가 된다고 어떻게 그 보물을 얻을 수 있어요?"
"고양이하고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믄 고양이는 그 보물을 내주는 거여, 이게 오늘의 추리극장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즉석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만든 '추리극장'은 이야기의 결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가 매듭을 짓는 놀이입니다.

"…근디 말여, 그 보물은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니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거여."
"헤헤 사랑요…."

아이들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까르르 까르르 난리를 칩니다.

추리극장이 끝나고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데 한 녀석이 불쑥 물어왔습니다.

"근디 아저씨, 그 보물이 뭐래유?"
"그거? 글쎄…."

나는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 부드럽고 또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라 말할 수는 있었지만 진실로 나는 그 마음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보물이 뭐냐니께유?"
"나도 모르겠다. 고것두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추리극장이여."
"헤헤, 그람 우리 다시 해봐요, 추리극장."

배시시 웃는 녀석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깊은 내면 속에는 이미 그 어떤 해답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해질 때 비로소 그 지혜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옛 성인들이 한결같이 '어린아이처럼 되라' 일렀던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