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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화석정

"첫 답사지로 추천을 의뢰하면 예외없이 화석정을 권한다"는 기자의 호쾌한 장담을 믿고 화석정에 갔던 답사객들은, '깊은 의미를 느끼기엔 화석정이 너무 초라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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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 경기도 파주 화석정

외모가 받쳐주어야 이력서라도 내는 세상에 살아서 그런지, 문화재도 기본 화장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긴가?

그러나 답사여행의 고수들은 부여 정림사지에 가서 절이 없다고 아쉬워 않고, 주춧돌만 남은 절터에 자기만의 절집을 지으며 흥분한다. 새로 입힌 화려한 단청엔 거부감을 느끼지만 흔적만 희미한 단청에선 용케 장구한 세월의 희로애락을 읽어 낸다.

분명 지금의 화석정은 쇄락한 노인의 모습이지만, 깨진 기와를 교체하는 정도의 필요한 보수를 제외하곤 가급적 손을 대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 소망이다. 지속적으로 주변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 크기도 최소한으로 국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유적지 정화사업'(문화재 보수를 왜 '정화'라 말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다. 누가 뭘 정화한다는 얘긴지)을 한다고 손을 대어서 아주 망가져버린 문화재가 하나 둘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손을 대기 시작했고 박정희도 적극 손을 댔던 인류의 유산 토함산 '석굴암'은 이젠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율곡의 치적에 관한 한 아직도 학자들의 당파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화석정의 비통한 야사는 인정하기 힘든 야사여서 그런지 화석정 주변은 초라하다.

그러나 화석정의 정신까지 초라해져서는 안 된다. 화석정은 더 이상 덕수 이씨 문중만의 보배가 아닌 민족의 유산이다. 정사인지 야사인지 역사의 유전자 판독은 고집불통 학자들의(사실 학자에게서 고집을 빼면 존재 의미가 없다) 몫이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염려했던 큰 학자 율곡을 둘러싼 한스런 이야기로 알면 그뿐이다. 단지 화석정에 올라 율곡이라는 어른의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은 것이다.

이 방향에서 보면 결코 초라하지 않은 화석정
이 방향에서 보면 결코 초라하지 않은 화석정 ⓒ 곽교신
"화석정이 초라하다"는 답사자 공통의 첫 인상을 초라하지 않게 풀어가기 위해, 취재 수첩에 적힌 현실의 화석정을 담담하게 알리는 것으로 화석정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화석정도 산 사람도 돈이 '웬수'

뻔한 문화재 관련 예산에, 관청에서 화석정에 '품위유지비'를 제대로 챙겨줄 형편은 안 되니 정자의 자태가 방문자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이는 이 땅의 거의 모든 문화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시련이다. 그나마 흥미거리가 있어 방문객을 끌어모아 관광수익이라도 많이 나는 문화재는 그나마 제 품위를 제 스스로 지키는 수준이지만 대다수 문화재는 그렇지 못하다.

전화 인터뷰를 한 파주시 문화체육과 담당자는 관내 문화재 관련 예산 배정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린 화석정이기에 그간 맘먹고 정비를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한다. 마치 자기 돈을 대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던 담당자의 말에 오히려 기자가 미안했다.

다행히 올해부터 2억1700만원이 배정되어 9월 하순이면 진입로, 주차장 주변 환경 정비 작업에 들어간다 하며, 정자 앞 임진강 쪽 절개면 보강공사에도 1억 예산이 배정되어 있단다. 내년에도 따로 예산이 할당되어 예정된 공사가 모두 끝나면, 모처럼 받아보는 품위유지비 덕에 화석정은 훨씬 단아한 모습으로 변할 것 같다.

지방 재정 형편으론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이 '정화사업'이 또 하나의 문화재 보수 실수로 기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화석정 주차장 한 편엔 두 평 될까 말까 한 작은 매점이 있다. 이 매점을 꾸려가는 이는 신아무개(70) 할아버지. 그는 자신의 16대 직계선조분 함자가 '신경화'이신데 그 분이 바로 신사임당 부친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1998년에 '파주시 문화재 관리원'으로 위촉장을 받으셔서 명찰을 달고 계신데 이름은 번듯하지만 무보수 명예직이다. 정년퇴임한 1992년부터 자진해서 화석정에 나오셔서 소일거리 겸 교통비라도 건질 요량으로 또 음료수를 찾는 관람객을 위해 꾸린 매점은 말이 좋아 매점이지 가게 형색이 대충 보기에도 인건비나 나올까 의문스럽다. 율곡 선생의 흔적을 지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는 것이지 매점에 바치는 수고를 일당을 따지며 나왔다면 벌써 작파했을 거라며 '매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신다.

화석정 관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파주시의 고백처럼 신 관리원께서는 사명감 하나로 화석정에 들어온 이래 주변 정리에 돈이 들어가니 곶감 빼먹듯 사재를 털어 넣기 시작했고, 96년 98년에 연이은 큰 수해 때는 문산 시내 엄청난 수해복구만으로도 넋이 나간 관청만 바라볼 수가 없어 또 주머니를 턴 것이 경제적으로 결정적 직격탄을 맞았단다.

매점에서 파는 율곡 관련 안내책자를 자비로 출판하셨다는데 책을 찍는 일의 속사정을 아는 기자가 보기에 투자비의 10%도 못 건졌을 것이 빤하다. 쓰레기봉투라도 사라고 나오던 지원비도 올해부터 끊겨서 매점에 동전 모으는 돼지저금통을 하나 놓으신 걸 보며 어찌나 율곡 선생께 죄송하던지.

성금(?)을 모으는 돼지저금통. 기자도 900원의 거금을 넣고 왔다.
성금(?)을 모으는 돼지저금통. 기자도 900원의 거금을 넣고 왔다. ⓒ 곽교신
그러다보니 한때 일산에 아파트도 지녔으나 지금은 문산에서 이백만원 보증금에 이십만원 월세에 사는 지경이니 형편을 더 묻는 것이 미안스럽다. 그럼에도 그런 내용을 알리면 괜히 공치사가 되니 기사로 쓰지 말라는 당부가 구구절절이시다.

이런 자세한 얘기를 남에게 하긴 생전 처음이라 하셨는데 이 곳에 구구절절 썼으니 난 취재원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오마이뉴스> 여행 섹션이 알리지 않으면 누가 타는 속을 알까?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 힘을 보태서 화석정이 이 정도라도 깔끔하니 그게 보람이다"가 대답이시다. 이젠 몸이 시들해져 끼고 사는 약봉지만 여덟인데 문제는 신 관리원이 못 오게 되는 그 다음 일이 걱정이시란다. 행락 쓰레기는 기본이고 밤 사이에 건축 폐기물을 차로 부어놓고 가는 일도 많은데 낮에 상주하는 사람마저 없으면 화석정은 삼일이면 "쓰레기 하치장"이 될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시다.

파주가 고향인 문산읍 장산교회의 성 목사님은 신 관리원이 오기 전 화석정이 풀섶에 묻히고 묵은 쓰레기로 덮인 폐가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한다. 신 관리원이 오고 나서 정자가 모습을 갖추었고 눈비 맞아가며 변함없는 정열에 감탄해서 지금은 날이 궂거나 매점 마치는 시간이 늦거나 하면 승합차로 신 관리원을 퇴근(?)시키는 운전기사를 자청한 지 수 년이 되었다 한다.

현직 목사님이 전용 운전기사인 분은 신 관리원이 유일하지 않을까? 목소리도 조분조분하신 목사님께 오랫동안 지켜본 신 관리원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자 "그 매점 장사가 되서 하시는 게 아녜요. 훈장드려야 할 분이죠"가 목사님의 간단명료한 대답이시다.

내력을 짚어보면 신 관리원은 사돈의 유적을 지키고 계신 셈이다. 사돈의 유적을 사명감 하나로 지키며 고군분투하시는 신동균 문화재관리원의 노력이 끝까지 아름답기를 바란다. '규정에 없는 매점건물'이어서 매점 보수 같은 지원계획은 "일체 없다"는 파주시의 답변이지만 건강이 되시는 한 화석정을 지키며 관람객을 위해 매점도 지키고 싶은, 경제원칙에선 한참 벗어난 신 관리원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시기를 빈다.

끝으로 율곡 선생께서 불과 8세에 지으신 '화석정시'(花石亭詩)로 통칭되는 시의 일부를 적는다. 8세에 지었다고 믿기지 않는 원숙한 묘사, 푸름과 붉음의 절묘한 채색, 달과 바람의 기가 막힌 배치 등.

기자의 번역이 원시의 시상을 철저히 망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앞 두 구와 뒷 두 구는 시를 지으신 나이가 8세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기자의 재주로는 도저히 번역이 불가능함을 아울러 밝힌다.

遠水蓮天碧
끝없는 강물은 하늘에 잇대어 푸른데
霜楓向日紅
서리맞은 단풍은 햇살에 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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