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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의 시각장애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 안마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안마를 하고 있는 사람은 1급 시각장애인 박선애(49)씨)
대구시 동구의 시각장애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 안마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안마를 하고 있는 사람은 1급 시각장애인 박선애(49)씨) ⓒ 평화뉴스
지난 13일 찾아간 대구시 동구 효목2동의 '동구자원봉사센터'는 아침부터 찾아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북적였다. 시각장애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안마봉사를 받기 위해 몸이 불편한 분들이 일찍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중풍으로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할머니와 다리가 불편해 걸음이 힘겨운 할아버지도 이곳을 찾았다.

2층 휴게실을 개조해서 만든 온돌 바닥에는 앞서 찾아온 대여섯 사람이 누워 있고, 시각장애인 네 사람이 정성스럽게 안마도 하고 침도 놓고 있다. 담소를 나누는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안마에 열중하던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로 정해져 있지만 요즘은 일찍 오는 주민들이 부쩍 늘어 자원봉사팀도 한 시간 일찍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허리와 무릎이 아파 이날 자원봉사팀을 찾은 대구시 동구 만촌동의 강복순(62)씨는 "안마를 받고 있으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 즐거워져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것 같다"면서 "이제는 안마 받는 날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곳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는 지난해부터 시각장애인들 4~5명이 마을 어른들에게 무료 안마와 침술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차비도 식사도 없지만 매주 두 번씩 이곳을 찾아 하루 6시간 이상 안마를 한다. 이들 대부분은 안마방을 직업으로 하고 있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하루 3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할 정도고, 소문을 듣고 멀리 경남 거창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시각장애인 자원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박효일(63)씨.
시각장애인 자원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박효일(63)씨. ⓒ 평화뉴스
시각장애인 자원봉사팀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사람은 동구 효목동의 박효일(63)씨. 박씨는 지난 27년간 당뇨를 앓다가 지난 2000년에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처음 경험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6개월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생활했지만 곁에서 격려해주는 아내 덕에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박씨는 시각장애인협회에 가입했고, 거기서 남의 도움만 받을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봉사팀을 꾸리게 됐다.

"앞도 보이지 않는 데다 지금도 인슐린을 맞으며 끼니 때마다 약을 챙겨먹어야 하지만 이곳 봉사 활동만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는 박씨.

박씨와 함께 봉사팀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1급 시각장애인 박선애(49)씨다. 고등학교 때 농구와 핸드볼을 하며 국가대표선수로도 활약했던 박선애씨는 결혼 뒤 두 아이의 엄마로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지만 23살 젊은 나이에 망막 손상으로 순식간에 시력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도 사업 실패와 함께 소식이 끊겼다.

그러나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절망만 할 수 없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파출부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후원인을 만나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에 큰 도움을 받았고, 지난 '90년 안마시술을 배워 지금까지 생업으로 삼고 있다. 박씨는 "이제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지난 30년 동안 어둠을 헤맨 끝에 남을 위해 사는 또 다른 삶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동안 이들 말고도 자원봉사팀으로 활동한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간적 여유와 생계 문제로 대부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 달까지도 6명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4명으로 줄었다. 누구보다도 시각장애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 그동안 차비는커녕 점심도 한 끼 대접하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지만 최근에는 주위 사람들이 보태준 돈으로 차비 정도는 지급할 수 있어 한결 마음 편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편상 꾸준히 치료받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입니다. 앞도 보지 못하고 힘들었던 지난날 다른 사람들에게 크고 작게 도움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활동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안마뿐인데 이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정성스레 안마하는 이들의 두 손에 값진 사랑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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