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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상당히 많이 내립니다.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비가 그친 적막감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남부지방에는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폭우가 그치고 차분하게 내린다면 좋을 듯 합니다.

아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가을이 되겠지요. 굉장히 무덥던 올 여름도 이렇게 흘러가고 벌써 가을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시간은 한 순간도 쉬지않고 빠르게 흘러갑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자니, 군대 시절이 생각납니다. 비가 올 때마다 짜증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며 철책을 지키고 서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초소에 총을 들고 서서 조용히 내리는 비에 갖가지 상념에 잠기던 그 시간들, 홍수에 철책선이 무너져 며칠동안 날밤을 세워가며 흉악하게 변해버린 임진강을 바라보기도 하던 그 시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납니다.

GOP에 배치받아 처음했던 일이 폭우로 무너진 여러 시설을 복구하는 것이었던 내게, 비는 이미 멀어진 그 시절을 되새기게 하는 하나의 매개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 긴 철책을 따라 초소마다 병사들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제대가 가까워진 병장은 아마도 짜증스러워 할 것이고,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은 집 생각, 애인 생각에 우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지요.

휴전선 철책에 매달린 전등에 불이 켜져 있을 지금, 아마 그 긴 휴전선만큼이나 내리는 비에 병사들의 생각도 길게 이어지고 있겠지요.

비가 일으킨 과거의 추억에서 돌아오니 책상 속에 넣어둔 '파병반대'머리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나던 거리에 떨어져 있던 것을 우연히 주은 것입니다.

멀리서 그 시위를 바라보며 그리고 어느새 조용히 이라크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파병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그렇게 치열했던 찬성, 반대의 ‘국가적 논쟁’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라크에 파병된 이들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 지금의 이 나라도 기억해 냈습니다. 왠지 비가 그친 고요함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파병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나라가 양분되었다고 서슴없이 말할 만큼 파병에 대한 찬성,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세계 체제의 일원으로서 병사들을 보내야 한다는 정부와 명분없는 전쟁에 뛰어들려 한다는 비판, 누군가들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제발 좀 벗어나라고 이야기하기도 할 만큼, 한때 나라 안은 파병을 찬성 혹은 반대한다고 시끌시끌했었지요.

파병이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많이 한 나라입니다. 매일 외신에서 전해오는 불안한 이라크 땅에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군인을 많이 들여보낸 나라입니다.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는 미군도 그 이라크 땅에서 죽어간 젊은 병사들의 수가 어느덧 1000명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 자기 땅에서 죽어간 남녀노소 이라크 사람들의 수는 그 10배를 훌쩍 넘는다고 하고 말이지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죽음이 이어지는 땅에 우리는 수천의 군인을 보냈습니다. 보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몰라도 ‘도둑이 들었다 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그들은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찬/반 의견을 뒤로 하고 특별기에 몸을 싣고 떠난 우리 병사들의 정확한 수가 얼마인지, 또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들이 파병의 목적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혹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는 않는지…. 이러한 대한민국 이라크 파병군의 상황을 혹시 여러분은 아십니까?

일부 언론에서는 파병된 군인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보도자제를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 납득되지가 않습니다.

이왕 파병된 마당에 파병군의 임무수행이나 현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해야 할 책임은 가장 우선적으로 정부에 있고, 그 뒤를 이어 여러 언론, 방송매체들에 있습니다. 국민의 의견이 찬/반으로 크게 나뉘었고, 정부가 파병의 명분을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강행한 지금, 오히려 파병군의 현실에 대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해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 옳다면, 예전 베트남 파병 때 같이 '선전'하지는 않더라도 국민들에게 객관적으로 알려 뒤늦게나마 동의나 안심을 구하려는 태도가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리고 그들의 양해를 매우 잘 이해한 듯한 언론매체들은 왜 이렇게 조용하기만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병사들을 이라크로 떠나보냈다고, 파병이 끝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군대를 파병하여 상황이 불안한 이라크에 주둔하게 한 지금, 이라크에서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과연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정부는 파병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그들의 생활을 전달할 책임이 있고, 국민들은 파병군의 생활과 임무수행에 대해 인지하여 파병군의 임무수행을 감시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죽음이 이어지는 불안한 정세의 이라크에서, 과연 우리 병사들은 ‘이라크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분’에 맞는 임무수행을 하고 있는지, 현지에서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한 방송사에서 파병된 병사들의 장비가 부실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직결된 방탄모, 방탄복, 차량의 방탄장비들이 부실하다고 그 방송사는 고발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을 이라크로 파병한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다’라고 부인했습니다.

3000여 명의 병사를 이라크에 파병한 이 나라에서 과연 이런 논란이 일어나도 되는 것인지도 우습지만, 그 장비들을 실제 착용하고 사용할 파병군 병사들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쳐 웃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진실이 어떠한 것인지 시급히 밝혀져야 합니다. 수천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파병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미 이라크에서 임무수행중인 우리 파병군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정보를 규제하는 정부의 태도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우리 언론들도 개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는 파병의 명분없음을 보다 명확하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명분 여하를 떠나 그들의 안전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과 감시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그들이 어느 순간 이라크의 혼란 속에 휘말릴지 모르기 때문이죠.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을 그 땅에 있는 우리 병사들의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메마른 그 땅에서 긴 상념을 이어갈 우리 병사들에게 이 빗소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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