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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은 낡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지난 5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히고 있다.
"국보법은 낡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지난 5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제시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4개월도 안 된 1948년 12월 1일 제정되었다. 그해 11월에 발생한 이른바 '여순(麗順) 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좌익세력의 '준동'(蠢動)을 막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서둘러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것이다.

이런 목적성은 이 법이 처음 적용된 1949년 한 해 동안 이 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무려 11만8000명이었고, 132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된 데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이 법을 임시특별법으로 서둘러 제정한 데는 이런 목적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국가를 형성해가는 혼란기에 북한과 연계된 좌익세력들이 정부를 '참칭'(僭稱)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었다. 그러나 이 미봉(彌縫)의 한시법은 91년 노태우 정부 말기의 김영삼씨가 여당 대표 시절에 '날치기'로 7차 개정이 이뤄지기까지 누더기가 되도록 변신해가며 모질고 질긴 목숨을 부지해왔다.

액면 : YS-전면폐지론자, DJ-대체입법론자

사실 '액면'으로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은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으로 폐지되었어야 했다. 이른바 직선제를 처음 쟁취한 87년 대선 및 88년 총선 이후 전개된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정치인의 국가관과 철학을 재는 바로미터였다. 그때 김영삼씨(YS)는 '전면폐지론자'였고 김대중씨(DJ)는 '대체입법론자'였다.

그러나 전면폐지를 예상했던 폐지론자들의 기대와 달리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후 국보법 존치론자로 바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대체입법을 통한 폐지론자이면서도, '여소야대'라는 한계를 안고있었던 탓도 있지만, 야당의 색깔론 공세를 의식해서인지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최근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국가보안법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어떻게 슬기롭게 해쳐가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평화민주당 총재이던 13대 국회 시절 야 3당 합치면 과반수였는데 그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하자고 법안을 낸 적이 있었다"고 전제하고 "그 이후에 (3당 합당으로 여대야소가 되어) 원내 의석상 논의가 안됐다"면서 "그렇게 참고해달라"고 폐지에 대한 심정적 지지의사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이임한 후 국내정치 문제에 개입 안하겠다고 했고 그 말을 지켜왔다"면서 "국보법 문제가 여야간에 첨예하게 대립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국내정치 불개입 원칙에 따라 안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DJ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국보법 피해자

죽어가는 국가보안법 80년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년만인 지난 1월29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죽어가는 국가보안법 80년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년만인 지난 1월29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실 DJ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국보법 피해자다. DJ 스스로도 386 의원들에게 "저는 신군부에 의해 80년대 사형을 언도받았다"면서 "그 이전에도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감옥살이 했는데 신군부가 저를 국보법 제1조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DJ는 더 나아가 "저는 71년 대선에 나왔을 때, 33년 전에 이미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 3개 원칙으로 국민들에게 저의 정책 제시했다"면서 "그때는 '붉은 넥타이'만 매도 사상을 의심하던 시절에 공산당과 평화통일 하자는 정책은 굉장히 위험하게, 좌익 용공으로 매도당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혈기방장한 나이에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대중보다 너무 앞선 이런 선구자적 자세 때문에 DJ는 죽을 고비를 넘나드는 수난을 당한 측면이 크다. 그리고 이런 대중과 괴리된 이상적인 정책으로 말미암은 수난을 계기로 평생의 지론인 '국민대중보다 반보(半步) 앞선 정치철학'을 체득하게 된다.

정치인이 너무 빨리 가면 국민이 못따라오고,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가면 국민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항상 국민보다 반걸음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걸음'도 아닌 '반걸음'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한 번 건넌 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신중함과 주도면밀함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정치철학이다.

그의 '반보의 정치철학'은 386 의원들과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우상호 의원 "존경심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다. 우리도 번민할 때가 있다. 많은 경험과 경륜 가지신 선배 정치인으로서 지혜의 말씀 주시라."

김부겸 의원 "상당히 많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계셨고 또 돌파한, 우리들의 사표가 되는 김 대통령께서 '어려울 때일수록 당당하고 원칙에 맞게 돌파하라'는 말씀을 기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우리는 과거 유신시대, 신군부시대, 그러한 참혹하고 냉혹한 수난의 시절에 여러분은 학창에서, 나는 정치인으로서 다 같이 민주회복과 남북의 화해협력·통일시대 열고자 헌신했다. 어느 사람은 감옥에 가고, 어느 사람은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저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나이 차이는 있고 초면이라 하더라도 오래 전부터 같은 운명 선상에서 슬픔과 희망을 같이해온 동지다. 더구나 여러분이 당당한 이 나라 대의자로서 가슴에 배지 달고 국정에 참여한 거 보니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정말 민주주의 승리라는 생각 갖는다."


즉 DJ의 지론은 평생 독재와 싸운 자신의 집권으로 이룬 여야 정권교체와 386 세대 운동권 학생들의 제도정치권(국회) 입성 그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승리한 마당에 더 이상의 급진적인 변화는 국민대중과 괴리될 수 있다고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어려운 고비를 넘겨 오늘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 됐었고 여러분은 국회의원이 됐다"면서 "악이 멸하고 정의가 승리한 것을 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뜻깊나"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의견은 역사관과 시국관, 철학의 총체적 반영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소속 단체 회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 제1차 국민대회`가 열렸다. 대회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이 알려진 가운데 한 참가자가 국보법 폐지을 염원하며 참가자들의 손도장이 찍힌 대형현수막 앞을 밝은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소속 단체 회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 제1차 국민대회`가 열렸다. 대회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이 알려진 가운데 한 참가자가 국보법 폐지을 염원하며 참가자들의 손도장이 찍힌 대형현수막 앞을 밝은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표현해 '국가보안법의 수혜자'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시국사건과는 담쌓고 지낸, 그렇고 그런 조세 전문변호사였던 변호사 노무현이 세상에 눈을 뜬 것은 81년 최대의 국가보안법 사건인 부림(釜林)사건을 접하고부터다. 노 대통령의 정신적 사부인 송기인 신부가 이 사건을 '노변'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이호철씨 등 부산지역 운동권 학생·청년 20명이 북한에 동조하는 의식화 학습을 한 혐의로 구속된 부림사건을 변호한 것을 계기로 노무현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에 이르게 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주창하는 '일대 사건'을 저지른 배경에는 국보법에 대한 이런 개인적 체험이 깔려있는 셈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결단이 개인적 체험을 너무 극대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이번 결단은 쟁점 현안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나 정책의 선택을 넘어서 자신의 역사관과 시국관, 철학을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게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자신의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측면이 크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자체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그 법을 해방 후 공산주의자를 때려잡는 데 사용한 것이다. 물론 그후에도 보안법은 56년 동안 일곱 차례 개정은 있었지만, 정적을 때려잡는 독재정권의 강화수단으로 반공·반통일적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확대,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주장은 최근 친일과 과거사 규명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노무현판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과 맥이 닿아있는, 일관성 있는 역사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5일 MBC와의 대담에서 "보안법은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게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왔다"며 "이것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해 이와 같은 인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국보법 폐지 발언으로 그동안 흐릿했던 여야 대치전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보수의 반격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가 강영훈, 이영덕, 현승종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보수의 반격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가 강영훈, 이영덕, 현승종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가장 주목할 대목은 노 대통령이 이미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보수진영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폐기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점이다. 즉 보안법을 개정해 독소조항은 폐기하고 일부 조항은 살리는 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폐기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여당의 한 학생운동권 출신 초선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그동안 누가 '갑'(甲)이고 누가 '을'(乙)인지 피아가 불분명했는데,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갑'과 '을'의 대치전선이 분명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한 갑은 '개혁세력'을 지칭하고, 을은 '수구세력'을 지칭한다. 이름하여 '갑을(甲乙) 전쟁'이다.

하물며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이광재 의원마저도 국가보안법 폐지보다는 개정보완 쪽에 섰던 것을 보면, 흐릿했던 여야 대치전선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분석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으로 그동안 흐릿했던 여야 대치전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면서 "여권은 앞으로 1년간 '갑'의 힘과 실체를 확실히 보여주는 국정운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을 신호탄으로 여 대 야, 혹은 개혁 대 수구의 가파른 대치전선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은 '갑을(甲乙) 전쟁'의 신호탄인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초선의원은 "노 대통령의 일련의 국정운영에는 '기존 기득권 해체'라는 최종 목표가 밑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의원은 "DJ의 집권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가 됐지만 그후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바뀌지는 않았다"면서 "짧게는 50년, 길게는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사회의 '주류'가 바뀔 때 진정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수석당원'의 향도(嚮導)로 저마다 성향이 제 각각인 이른바 '108 번뇌'를 달고있는 거대 여권으로서는 국보법을 둘러싼 가파른 대치전선의 형성을 계기로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원내 '이슈 관리'가 필요 없는 구도를 짜게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장애물은 을(乙)의 반격과 중간세력의 향배, 그리고 국정운영 지지도

"내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9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내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9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앞으로 넘어야 될 산은 적지 않게 놓여있다.

그 첫째는 '전쟁'의 상대인 을(乙)방의 반격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주류 교체' 메시지를 분명히 한 이상, 기존 주도세력의 반발은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결단이 단순한 정책적 차원의 결정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을방'의 대응도 단순히 정책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명분 삼은 사생결단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 두번째는 중간세력의 향배이다. 지난 총선 전에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를 가지고 지지세력을 집결시켜 중간층의 입지가 축소된 것처럼, 이번 국보법 폐지 논란을 가지고도 중간파의 입지가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총선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중간층이 '반대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 추이에 따라서는 '개혁 독주'에 대한 반작용도 예상된다.

그 세번째는 그로 인한 여론의 향배와 국정운영 지지도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선점한 국보법 폐지 의제에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개혁적 요소'와 '역사인식'이 내포돼 있는 점을 국민 상당수가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지도로 받쳐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국가보안법 폐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행정수도 이전)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구사하는 '고강도 화법'으로 국민에게 찬·반의 선택을 강요하는 '갈등의 리더십'으로는 국민 지지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 제시라는 민감한 의제설정이 예고된 '500회 특집'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출연한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 시청률이 평상시 프로그램 시청률보다 더 저조한 것은 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게 매우 '아픈' 대목이다.

일반대중은 꼭, 지금, 이 시점에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할 당위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또 '법 없이 사는' 일반대중에게 국보법의 존재는 아무런 불편함의 대상도 아니다. 바로 그것이 숙제이다.

DJ의 '반보'(半步)든, 노 대통령의 '우보'(牛步)든 역사는 진보한다

"지금이 '질곡역사' 청산할 마지막 기회" 지난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이 충남 천안시 목천읍 소재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열린 제5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 경축사를 하고 있다.
"지금이 '질곡역사' 청산할 마지막 기회" 지난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이 충남 천안시 목천읍 소재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열린 제5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이런 경우 국가 지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도 국민이 외면하면 소용이 없다. 또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가 30%를 밑돌면 아무리 의미 있는 개혁의제도 거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노 대통령이 즐겨 쓰는 표현 중의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묵묵히 국정을 챙기겠다'는 뜻 말고도 '누가 옆에서 뭐라 하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노 대통령의 '행보'는 지난해 4월 역대 대통령의 전용별장인 청남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면서 국민에게 보낸 인터넷 공개편지에서 밝힌 '호시우행'(虎視牛行), 곧 다른 말로 '호시우보'(虎視牛步)이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호시우행(虎視牛行), 저는 저를 흔들려는 사람들까지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대체입법 초안을 만든 국회 법사위원인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갑)의 지적대로 "대통령도 헌법기관으로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것"이고 "국보법은 북한을 겨냥해 만든 것인데, 그 법에 의한 처벌을 받는 자의 99%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미 죽은 법"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역대 현직 대통령 중에서 유일하게 '사문화된 악법 폐지'를 주창하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으려는 노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 노 대통령의 지론대로 국가보안법 폐지는 현실에서도 대한민국 국가의 품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분명한 점은 DJ의 '반보'(半步)든, 노 대통령의 '우보'(牛步)든 역사는 진보(進步)한다는 신념일 것이다. 흔들려는 사람들까지 안고 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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