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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락 박사
이재락 박사 ⓒ 권윤영
"조선 왕조 말기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졌습니다. 과학기술이 천시되던 때이지요. 과학기술과 역사의 관련성을 틈틈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발언이 아니다. 국내 고분자 재료 분야의 전문가, 한국화학연구원 이재락(51) 박사의 소신이다.

재료 전문가답게 이 박사는 역사를 ‘재료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현재 ‘재료로 본 한국사‘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현재 3년째 쓰고 있지만 연구하랴 집필하랴 쉽지가 않다. 내용도 워낙 방대해 출간은 4년 후로 미뤘다. 연구하면서 역사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는 즐겁기만 하다.

그가 연구 분야 외에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린 시절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이 박사의 고향은 안동. 안동은 일제시대에도 순사가 다녀가지 않는 마을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마을 어른들에게서 역사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500년 전, 1000년 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었지요.“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지난 81년 프랑스로 유학길에 오르던 시점부터 구체화됐다. 해외에는 역사와 과학이 결합된 사례를 수도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인 유물이나 발자취에 대해서 너무 둔감합니다. 역사의 현상을 과학으로 풀이하려는 시도가 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요.“

이 박사는 ‘청기와 장수‘ 이야기를 꺼냈다. 청기와 장수가 청기와 제작 비법을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청기와 장수가 왜 자식에게 비법을 안 가르쳐주고 죽었을까 하는데 의문을 던졌다.

대개의 경우 기술을 독점하려는 한국인의 잘못된 습성으로 매도하는데 자신은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청기와 장수가 생각할 때 청기와 제조기술은 자식의 장래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패러다임에서 아들의 장래를 생각한 결과라는 뜻이다.

"우리의 관리주의 문제가 다 조선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똑같이 재현되고 있지요. 사농공상만 해도 그렇죠. 엔지니어들은 밑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다양성을 인정 안하고 사농공상이 뿌리가 깊습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의대와 법대를 좇는 것 아닌가요."

이 박사의 생활신조는 ‘불가능은 없다’이다. 연구를 하다보면 불가능한 것들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가 몇 년 전 탄소섬유를 개발한 것도 한 사례다.

탄소섬유 기술 국산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1년 반 만에 한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는 국산 탄소섬유를 만들어냈다. 국산 탄소섬유의 물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양산화에 성공했다. 국산화 성공으로 지난 15년 동안 국내 산업계에 약 1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만들어 냈다.

'실패를 거울 삼아, 좌절을 친구 삼아 묵묵히 인고의 세월을 한없이 행군하다 보면 가끔 인생의 작은 오아시스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성공에 도취되지 아니하고 더욱 큰 미지의 그 무엇을 죽을 때까지 추구한다.'

과학자이면서 역사가이기를 자처하는 이재락 박사의 좌우명이다.

법률가 길 뿌리치고 과학자 택해

이 박사는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 소설, 특히 우주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했다. 전후 세대여서 일까. 한국이 황폐화된 상황에서 공상과학은 하나의 위안이었다. 천둥, 번개 등 신기한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과학자는 타고난 운명이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그에게 다른 길을 강요했다. 아버님은 무슨 과학자냐, 율사(律師)가 되어야 한다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는데도 아버지는 입학식 날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육법전서를 가지고 오셨어요. 사법고시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는 일주일만에 육법전서를 접었다.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때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는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꿈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꾸는 꿈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뿐인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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