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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화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천관에서 소녀에게 볼 일이 있으신가요?”
“본인이 모시는 분께서 소저를 뵙고자 하오이다.”
“호…오…뜻밖이군요.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그녀의 어조가 변하기 시작했다. 천관이란 조직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니 현 정세로 보아 이들의 눈밖에 나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까지 그 어떠한 곳에서도 무시당한 적이 없다. 청하는 말이지만 은근한 압박이다.

“그런 것은 아니외다. 다만 소저께서 여기까지 오신 일이….”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런 것까지 천관에서 알아야 하나요?”

뻔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서장군가는 아무리 황제직속의 천관이라도 함부로 대할 곳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까지 서가화가 천관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내비치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전영반께서 모시는 그 분은 여기 오셨나요?”
“흐음….”

그는 잔기침으로 일단 서가화의 예봉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 분은 낙양에 계시오.”
“그럼 내가 지금 낙양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요?”

말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연부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는지라 각오는 하였지만 서가화의 태도가 이리 변할 줄은 몰랐다.

(그저 세도가의 자식들이란 자기가 벼슬한 줄 알아. 부모 잘 만나서 대우받는 줄 모르고….)

그는 속마음과는 달리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청했다.

“그저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외다.”
“우습군요. 나는 지금 정주로 갈 예정이에요. 정주에서 볼일을 보고 낙양 쪽으로 갈 예정이니까 그 때 잠시 들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가야 한다면 정주를 지나 낙양까지 갔다가 다시 정주로 왔다가 다시 낙양을 가야 하겠군요.”

이것은 사실 전연부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반응 정도는 이미 예측했던 바다. 그는 지금부터 그가 온 진짜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낙양으로 가신다니 다행이군요. 그 때 잠시 들러주시면 되겠죠. 다만….”
“다만 뭐죠?”
“그 분께서 재촉이 심한지라 그 분을 대신해서 몇 가지만 알아보고 보고를 올리면 본인도 편할 것 같소이다만….”
“전영반께서 직접 신문(訊問)하시겠다는 건가요?”
“무슨 말씀을…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소이다.”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사안(事案)이 사안인지라 너무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리겠소이다. 이건 부탁이지 절대 다른 뜻은 없소이다.”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야 서가화도 화를 내며 모면하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금방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좋아요. 그럼 무엇을 알고 싶으시죠?”
역시 서가화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흐…음…”
그는 나직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소. 본인이 알기로 소저는 송하령 소저와 함께 표물을 싣고 정주로 가고 있다고 들었소. 헌데 이상하게도 그 표물을 노리는 자들이 수상쩍고…. 표물이 무언지도 궁금하고…. 무슨 일로 정주로 가시는 것인지 알고 싶소이다.”

때로는 말을 돌리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전연부는 그 때를 알고 있었다. 서가화는 이미 그가 묻고자 하는 내용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띄웠다.

“그럼 소녀도 단도직입적으로 답해 드리죠. 송언니와 소녀는 정주도 아니고 낙양도 아닌 불공을 드리고자 소림사를 가고 있어요. 표물은 황금만냥으로 소림에 시주할 것이구요.”

이미 정해진 각본이요 그에 따른 대사였다.

“우리를 쫓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소녀도 몰라요. 하찮은 녹림도는 아닌게 분명하지만 무슨 목적이 있는지는 몰라요. 이제 답변이 됐나요?”

서가화는 분명 손쉽게 볼 상대가 절대 아니다. 쉽게 대답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안했지만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더 묻기도 곤란하다. 더구나 그는 조사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느낀 것은 진정한 표물이 무엇인지 숨기고 있지만 그 외에는 서가화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쯤에서 물러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표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서가화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최종 목적지가 소림사라는 것 하나를 안 것만 해도 여기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심기를 어지렵혀 드려 죄송하외다. 제가 힘닿는 데까지 편히 가시도록 조치하겠소이다.”

“전영반께서 그렇게 해주시면 어디 도적떼들이 얼씬이나 하겠어요? 안심이군요.”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럼 이만….”
전연부는 몸을 돌려 서서히 걸음을 떼어놓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서가화를 바라보았다.

“헌데 송소저는 어디가시고 서소저만 계시는지….”

갑작스레 찔러 보는 말이었다. 이런 질문에 상대는 대개 황급히 대답하다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서가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었다.

“아…. 송언니요…. 언니는 하남성의 절경이 좋다고 먼저 가더군요.”

전연부는 피식 웃었다. 강남삼미 중 하나라는 미녀의 웃음이 치가 떨리도록 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을 나온 그의 등뒤로 서가화의 짤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출발하기로 해요.”

(5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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