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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친일청산과 안티조선 시민단체 활동을 해오던 내게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외치며 2002년 태동한 개혁당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개혁당 건설에 참여했고 그 후 직책을 맡으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연구소도 사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쪽 저쪽 양다리 걸치는 것이 싫어 그렇게 했다.

대선 때는 그에게 열광했다. 기존 정치인에게 볼 수 없던 진솔함과 깡다구, 소수 세력을 대변하는 무모함(?) 그리고 개혁성향 등이 그를 지지해야 할 이유였고 김대중 이후의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던 대미 자주성, 대(對) 조선일보 투쟁 등 그동안 내가 해오던 활동과도 거의 완벽하게 '코드'가 맞았다.

그런 정치인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그렇게 나는 그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대전지역 노사모 조직과 개혁당을 이끌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그가 후보가 되어 대전에 내려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과학기술계의 질곡같은 현 상황을 브리핑하면서 그에게 "과학기술계도 표가 좀 된다. 선거에 이기려면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하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이야 아니겠지만 그 후 그의 입에서 과학기술인의 소외라든지 '미래 성장동력은 과학기술'같은 얘기가 많이 나왔고 급기야는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국정과제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젠 되었다. 남들이 그를 칭송해도 이젠 그에 대한 우호적 비판자를 자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첫 작품이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큰 실망 (1) '촛불시위 자제' 발언은 그의 최대실언"이었다. 그 때는 비판글을 그렇게 시리즈로 올릴 생각이었다. 고비고비 그가, 아니면 적어도 그의 참모들이 읽어보고 한번이라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충언을 적어내려 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이상했다. 물론 예상대로 수구언론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허니문 기간'이라고 해서 언론이 일정 기간 동안은 좀 살살한다고 하던데 우리의 주류신문은 그게 아니었다. 취임 석달도 안 되서 딴지걸고 헐뜯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나쁘게만 보도했다. 그리고 그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해서 시리즈로 쓰려던 그에 대한 비판글은 (1)편을 끝으로 다시 나오지 못했다. 그에 대한 비판 시리즈는 그가 잘 나가고 오만해질 때의 얘기였다. 수구신문에게 물어뜯기는 그에게 나까지 타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향이 이상하게 틀어져 갔다. 수구언론과의 타협인가, 우향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미자주는 어디가고, 굴종이 눈에 띄었다. 사진 찍으러 안 간다더니 미국 가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등 희한한 망발(?)까지 나왔다.

부안 사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 있었던 부평 노동자 폭력진압사태는 저리가라였고 일각에서는 광주항쟁 때 일이 생각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라크 파병은 더더욱 그랬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의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기에 그렇게 대미 자주가 체화된 듯이 보였던 분이 그 자리에 올라가자 저렇듯 변할까. 나도 그 자리에 앉으면 그렇게 될까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렇게 실망의 도가 더해져 갔다.

주위에서는 나에게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었으니 A/S하라는 얘기까지 하는 시민단체 열성 활동가도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되도록이면 그들과 마주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노 대통령이 준비가 부족했는가. 그 뒤에도 자꾸 헛발질이 나왔다.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노사모에서조차 그에 대한 지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졌고 나도 과연 노무현 대통령을 계속 지지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김선일씨가 피살되는 과정에서 보인 우리나라의 대처방식을 보며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그에 대한 믿음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그의 신념을 접하고 나서다. 그것은 그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지지율이 몇 %인지와 같은 물음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일청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지 10여 년이 되었다. 친일청산을 위해 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에 92년 가입하여 활동을 해왔으니 12년 되는 셈이다. 95년부터는 대전지부장을 맡아왔으며 2000년 경부터는 전국 운영위원을 맡아 열심히 활동해 오고 있다.

내가 민족문제연구소 가입할 당시에는 정말이지 전국의 회원이 약 200-3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미미한 단체였다. 우리가 친일청산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외계인의 말 정도로 생각하던 때였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렇듯 무질서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가치판단이 제대로 서있지 못한 배경에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단죄 실패가 있다고 보았다.

식민지 시절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고 호의호식하던 반역의 무리들이 새 나라에서도 다시 권력의 핵심에 들어서서 대대로 떵떵거리며 사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그 모든 죄악의 원천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친일청산에 몸을 던졌다.

그러니 나는 누구보다도 친일청산, 과거사 청산 얘기를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인다. 그런데 그 말을 대통령이 직접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이 최근에 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이란다. 얼마나 반가운 얘기인가.

친일청산, 반드시 해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과거사 청산 작업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상식과 정의를 다시 복원시키는 길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다시는 시도하기 힘들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대통령, 사회의 주류세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통령. 그것이 오히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만이 과거사청산에 나설 수 있다. 그가 주류에 속해있다면 이것저것 눈치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과거사청산에 나설 수 없다. 그러니 그가 비주류(?)란 것이 오히려 더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친일과 친독재 그리고 거기에 기대어 형성된 소위 이 사회의 주류 세력이 아닌 소외 세력이 주류가 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과거사청산과 대통령으로서 그 자신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9월 6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몇 가지 이 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그 첫째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당 내에서조차 폐지파와 개정파로 나뉘어 혼란스럽던 차에 나는 정말이지 노 대통령에게 의견을 밝혀달라고 할 뻔했는데 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 얘기였던가.

둘째가 과거사 청산에 관한 그의 대답이었다. "어렵더라도 해야할 때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 명쾌한 대답이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 조중동 등 수구신문은 기막힌 호재를 만나 집요하게 여론조작을 하고 있고 먹고 살기도 어려운 판에 무슨 과거사 청산이냐는 말이 일반 국민에게도 먹혀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많은 지식인들까지도 동조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 말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다 안다. 그러면 경제가 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줄까? 그러면 받아들이겠는가? 어림없는 일이다.

셋째는 미국과의 관계다. 그는 "한국도 너무 오래 남에게 기대있는 것은 좋지 않다. 의지하는 것은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고 남의 보호를 받고 있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을 키우지 않게 된다"는 말로 대미 종속을 지양하고 자주성을 키워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할 말을 좀 하는 편"이며 "한 5년 10년 지나가면 한국은 완전히 미국과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대등한 그런 자주 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 얼마나 가슴 후련한 말인가. 정말 그렇게 되길 간절히 빈다. 그동안 우리의 대통령들은 일국의 대통령다운 의연함을 보여주지 못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바로 이런 면 때문에 내가 그를 지지했던 것 아닌가. 바로 대선 때의 그 느낌이 다시금 새록새록 피어나는 것 같다. 김선일씨 피살사건 때의 그 분노가 조금은 사그러지는 것 같다.

우리의 어떤 대통령이 이런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졌던가. 아니, 가졌다 하더라도 이렇게 피력하고 실천한 적이 있었던가. 친일청산을 포함한 과거사 청산과 언론개혁, 거기에 한가지를 덧붙이라면 대미자주, 이는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선진 문명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과제다.

원래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대로 반대세력으로 남아 있는데, 지지했던 사람들은 많이 돌아선 것 같다. 게다가 먹고사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 모든 화풀이가 그에게도 돌아오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욕설연극을 배태시켰다. 그런데도 "어렵더라도 해야할 때 할 일을 해야 한다"며 버티는 그를 보며 그로부터 멀어졌던 마음이 돌아선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파탄이 나지 않는 한 당대의 고통으로 끝난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로 인한 민족정기의 훼손과 기회주의의 창궐은 누대에 걸쳐 사람들의 맑은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것은 국가의 영속성을 밑둥째 흔드는 일이다. 그 폐해를 어찌 잠시의 먹고살기 어려움으로 인한 폐해와 비교조차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대통령이 시대정신의 소유자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이제 나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외로운 소수자인 그의 곁에 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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