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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민­관협력 사회운동은 새마을운동본부 등 특정 관변단체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예산지원 폐지방침이 확정되면서 시민운동단체와 계약을 통한 새로운 민주도 방식의 사회개혁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94년 7월 26일 '정부, 13개 시민단체 지원키로... 민­관 협력한 새 운동방식 될 듯' 기사 중)

▲ 조선일보 94년 7월 26일자.
ⓒ 조선일보 PDF
지난 94년 7월 정부가 처음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조선일보> 시각이다. 당시 정부는 민간자문위원회 심사를 거쳐 YMCA, 흥사단, 환경운동연합 등 13개 사회운동단체에 사업별로 모두 7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정부가 시민운동단체와 계약을 맺고 예산을 지원, 자발적인 운동을 유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관협력 운동방식"이라며 "새로운 민(民) 주도 방식의 사회개혁운동 추진을 위한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조선일보는 또 95년 1월 9일 '한국여성NGO위에 정부-UN서 지원금, 북경세계대회 예산 10만불 확보' 기사를 통해 정부와 UN의 여성단체 활동지원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UN본부가 북경대회에 참가하는 각국 여성NGO를 적극 재정 지원할 것을 권고하고 있던 터"라며 "정무제2장관실이 UN협력사업으로 이를 지지, UNDP 해외협력사업 주무부서인 과학기술처와 함께 조정에 나섬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UNDP(유엔발전계획)는 4만3천달러, 정무제2장관실은 4만달러를 각각 한국여성NGO에 지원했다. 조선일보는 "정무제2장관이 민간여성단체에 이같은 대규모 재정후원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 '권력과 시민단체의 어두컴컴한 유착'으로, '아낌없이 퍼주는 혈세'로 정부 지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9월 2일 사설 '시민단체의 옥석을 가릴 때다'에서 "권력이 먼저 돈으로 유혹했는지, 아니면 시민단체가 자신의 활동과 정부 지원을 맞바꿨는지 애매할 정도로 깊고도 어두컴컴한 관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과 시민단체의 유착은 권력이 먼저 돈으로 유혹했는지, 아니면 시민단체가 자신의 활동과 정부 지원을 맞바꿨는지 애매할 정도로 깊고도 어두컴컴한 관계다." (2004년 9월 1일 사설 '시민단체의 옥석을 가릴 때다')

▲ 조선일보 2004년 9월 2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 입장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일보는 "정부 돈을 받은 단체 중에는 지난 4·15총선 때 낙선운동을 벌인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한 전국 단위의 25개 단체 중 8개 단체도 포함돼 있다"며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정한 낙선운동 대상은 한나라당 100명, 민주당 57명, 자민련 24명 등 야당에 집중됐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0명에 불과해 야당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노골적인 친여(親與) 선거운동이란 비판과 의심을 받았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 총선에서의 낙선운동 등 정치적 소신이 뚜렷한 시민단체 활동을 '친여'라는 프레임으로 문제삼은 것이다. 이들 시민단체의 총선 낙선운동을 '친여 선거운동' 혹은 '권력과의 유착에 따른 정치활동'으로 풀이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우리 시민단체들은 전문분야보다는 정치 활동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실상의 정치단체가 주류"라고 비난했다.

결국 이같은 주장은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을 바라보는 조선일보 시각에서 비롯된다. 조선일보는 관변단체 지원폐지론이 높았던 90년대부터 줄곧 '순수 민간단체 지원론'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94년 3월 8일 사설 '난공불락 관변단체'에서 "이들 단체가 자생력을 키워 순수 민간단체로 존립할 수 있다면 그건 적극 지원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듬해 9월 1일 사설 '민자당과 관변단체'에서는 총선과 연계해 '민간운동지원법률'을 통과시키려는 민자당의 정략적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개혁운동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의 '정치 탈색'이 가능한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정권에 따라 보도방향이 달라지는 점은 일관된 태도로 보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은 '새로운 방식의 민관 협력모델'이고 노무현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은 '권력과의 뒷거래이자 어두컴컴한 관계'가 됐다.

또 당시 총선을 겨낭한 여권의 관변단체 활용 의도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조선일보가 최근 비영리단체지원법 개정을 추진 중인 한나라당의 정략적 태도는 문제삼고 있지 않다. 되레 정치활동 단체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한나라당 입장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정치색도 빼고 정치활동을 해서는 더욱 안되고, 정부나 공공기금 지원은 시민운동의 중립성을 훼손한다면 94년 조선일보가 주창한 '새로운 민(民) 주도 방식의 사회개혁운동 추진을 위한' 시민운동 모델은 과연 무엇인가. 그 답이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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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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