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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해 학교측으로부터 제적을 당한 강의석 군.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해 학교측으로부터 제적을 당한 강의석 군. ⓒ 한겨레21류우종
한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강제로 행하는 기독교 교육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수업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학교는 설립 이념이 기독교 교육에 있는 만큼 도저히 받아줄 수 없다며 그 학생을 제적했다. 학교측이 전학을 권유하였으나 그 학생이 거부하자, 극단적인 처벌을 내린 것이다. 곧이어 제적된 학생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또 학교의 제적처분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교목이 직위 해제되면서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됐다.

매스컴이 큰 관심을 보였고, 사람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학생과 학교 양쪽이 다 잘못했다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양쪽 모두 잘못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양비론은 양쪽이 사태를 극단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양시론은 정부의 평준화 교육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양비론과 양시론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헌법상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피해를 입은 학생에게 개인적 성격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동안 상습화된 인권 침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시론이 정부의 잘못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학교측의 대응 방식을 무조건 옹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종교의 자유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학생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학교와 정부는 인권 보장의 절대성을 수용한다는 전제 아래, 제도의 보완 및 처리 방식의 변화를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선교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자유다. 양자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선교의 자유가 종교 집단의 차원에서 주장되는 반면, 신앙의 자유는 개인적 내면성의 차원을 강조한다. 19세기 말 이래 근대적 자유 개념이 우리나라에 형성되면서 주로 부각된 것은 선교의 자유였다. 하지만 근대적 자유에 좀더 핵심적인 것은 개인의 신앙 및 양심의 자유다.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아직도 이 차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조만간 국가 존망의 위기의식이 완화되고, 냉전적 남북대결 의식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그동안 무시되었던 개인 내면성의 자유가 더욱 강조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개인적 자유의 차원에 대한 요구가 이미 심화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변화의 추세를 학교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여태까지와 같이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를 계속 견지한다면 터져나오는 사회적 갈등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특정 종교의 교육을 설립 이념으로 삼은 학교는 선교의 자유를 내세우는 것이 결코 개인 신앙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명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교육과 세뇌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강압적인 신앙교육은 오히려 심각한 역효과를 낳게 마련이다.

얼마 전 미션계 대학에서 제기되었던 비슷한 사건이 크게 불거지지 않은 것은 대학측이 종교교육 프로그램의 편협성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으로 개인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종교교육 프로그램과 운용 방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정부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정부는 학교와 학생 사이의 일이므로 개입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했다. 그동안 평준화 정책의 보완에도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학교와 정부가 모두 이런 사건에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지만, 특히 정부는 학생의 인권 보호에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혹독하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교육 평준화 정책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정부는 그 근간은 유지한 채 학생의 종교 자유 권리와 학교측의 선교 자유 주장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 절충 방안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 종교의 자유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다. 가톨릭 교회와 세속국가의 투쟁,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그에 이은 종교전쟁, 개인 인권에 대한 계몽주의의 절대화 등이 종교의 자유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 인권 개념의 서구적 맥락을 주장하는 측에서조차 인권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종교의 자유는 그 인권 개념의 중심에 놓여 있다.

종교의 자유는 권력의 난폭함과 변덕스러움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상징적이고 동시에 실제적인 근거다. 특히 개인 신앙의 자유가 그렇다. 이 자유가 침해되었다면, 어떤 이유나 변명도 쓸모가 없다. 대광고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점은 다시는 이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이 자유의 절대적 가치를 확고하게 인식하도록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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