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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상계(商界)는 두 상인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 산서상인(山西商人)과 신안상인(新安商人)이 바로 그들이다.

산서상인(山西商人)은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 출신의 상인 및 금융업자들을 일컫는 말로서 대명의 건국 전후로 급격한 세력을 이루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대명 초기의 몽고에 대한 잔당 세력의 소탕 및 몽고군에 대한 북방 정벌에 대한 군량의 수송을 맡아 큰 이익을 얻었다. 영락제에 들어와서도 몽고는 물론 흑룡강(黑龍江) 유역까지의 이민족 공략 등에 따른 군수품 제공에 따른 이익이 계속됨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향 의식(同鄕意識)이 강하여 동업(同業)을 영위하는 다른 상인이라 하더라도 동향(同鄕)이면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왔고, 그들만의 회관(會館)을 건립하고 연합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독점에 따른 이익도 그들만의 것으로 할 수 있었다.

신안상인(新安商人)은 안휘성(安徽省) 휘주부(徽州府) 출신의 상인들을 말한다. 휘주상인이 아닌 신안상인이라 불리우는 것은 안휘성 휘주부의 옛이름이 신안군(新安郡)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명 초기에 소금 전매(專賣)에 따라 염상(鹽商)으로 출발한 이들은 강회(江淮)의 거점인 양주(揚州)로 진출하여 소금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 후 동향업자끼리 합자로 미곡, 면포, 목화, 생사, 견직물, 도자기, 소금, 차 등 각종사업을 영위하며 거금(巨金)을 벌었다. 특히 전당업(典當業)의 경우 그들만의 독점 사업이었다.

강남의 신안상인들과 화북의 산서상인들 간에는 처음에는 각기 사업을 달리했고, 서로간 영역을 존중하여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상권을 넓혀감에 따라 경쟁 관계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산서상인들이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염(鹽)에 대한 사업에 뛰어 들면서 신안상인의 안방이랄 수 있는 강회(江淮)에까지 진출하자 양 상계는 칼 없는 전쟁이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두 상계의 관계는 작금의 정치상황과도 맞물려져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태조 주원장은 강남의 재력가 및 지주들의 도움을 받아 대명을 건국했고, 현 수도도 금릉(金陵)으로 정했다. 하지만 정난의 변으로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는 북경(北京)으로 수도를 천도하겠다고 공언한 후 북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 내면에는 태조의 심복들이 머무는 강남의 금릉은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곳이었고, 북경은 자신이 만든 세력이 밀집한 곳이었으니만큼 안전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강남에서 서서히 화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었다.

산서상인들은 이러한 유리한 정세를 놓치지 않았다. 기름진 평야에서 산출되는 미곡과 해안가에서 생산되는 질좋은 염(鹽)은 그야말로 돈이었다. 자신들이 전쟁터를 쫒아 다니며 목숨을 걸고 부를 축적했던 것에 비하여 신안상인들은 풍부한 물자를 적당한 가격에 넘기는 것만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제 산서상인들은 강남의 상권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들 중 선봉에 선 거부(巨富)가 양만화(揚滿華)였다. 그의 부친인 양귀(揚貴)의 백만석 재산을 수십배로 늘려 놓았다는 타고난 상술가(商術家)가 바로 그였다. 산서상인 중 3대 거부로 꼽히고 있는 그는 이제 겨우 사십육세였다. 또한 산서상인 연합의 오대수장(五大首長) 중 한명으로 산서상인연합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의 소유자였다.

권력이 있으면 재력이 따라오고 재력이 있으면 권력이 따라온다. 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다. 양만화는 지방 정계뿐 아니라 중앙 정계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다. 또한 그가 후원하는 무림방파도 지역적인 편중이 있었지만 구파일방 중 무림의 태산북두로 인정되는 소림(少林)이 있으며, 화산파(華山派)와 종남파(終南派)도 적극 후원하고 있었다.

그 외의 대소문파들과도 친분이 깊어 그의 사업에는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나 오호수로연맹(五湖水路聯盟)에서도 건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그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오랜만에 부인과 함께 저녁을 들고 있었다. 강남 상권을 잠식하기 위해 그는 요사이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산서상인연합회 노인네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고,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세력을 불려야 했다.

일부 세력을 가지고는 절대 신안상인들과 싸우지 못한다. 신안상인들의 재력은 산서상인과는 달리 뿌리가 깊고 튼튼하다. 그들하고 전면전을 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승리하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들의 영화를 한순간에 날려 버릴 수도 있다.

방법은 조금씩 잠식해 가는 수밖에 없다. 북경에 손을 써 지금까지 신안상인들이 독점하고 있던 소금 전매권(專賣權)을 일부라 할지라도 산서상인 쪽으로 가져온 것은 큰 수확이다. 그것으로 인해 오늘 산서상인연합회는 드디어 그를 밀기로 결정했다.

얼마 안가 금가(金家) 노인네가 차지하고 있던 연합회의 회주(會主) 자리는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그것은 돌아가신 자신의 부친인 양귀의 염원이었다. 그는 흡족한 마음으로 전채(前菜) 요리를 먹은 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인 북경 명물의 오리통구이 요리를 담은 뚜껑을 열었다. 갈색으로 구어진 오리통구이에서 김이 피어 올랐다.

“여보. 제가...”

언제나 정숙한 부인은 양만화가 오리통구이를 먹는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부인은 음식용 소도로 살을 저며 떼어낸 다음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이 품위있는 것이라 누차 설명했었다. 하지만 양만화는 손으로 양다리를 찢어 입이 찢어져라 한입 가득 배어 무는 것이 육질이나 풍족감을 느끼는 비결이라고 믿었다.

“아니오. 부인. 오늘만큼은 내 방식대로 먹어 보리다.”

그는 오리통구이의 양다리를 잡고 쩌억 벌렸다. 고소한 내음과 함께 허벅지에 붙은 흰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오리 뱃속에서 무언가 툭하니 상위로 떨어졌다. 손바닥만한 철패(鐵牌) 하나. 비상하는 용(龍)이 음각되어 있고, 한 면엔 환혼(還魂)이란 글짜가, 그 이면에는 멸사(滅邪)라 양각되어 있다.

“뭐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왠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그의 정숙한 부인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 나왔다.

“초혼령(招魂令)?”

그의 부인은 섬서 감가(甘家)의 여식이다. 섬서 감가는 주로 표물업(票物業)을 영위하는 곳으로 상인이자 무림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무림인들이 드나드는 집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그녀는 무림인들의 생리와 무림에 대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유로 무림인이 아닌 상인을 택해 시집을 왔다. 상위에 떨어진 저것을 본 적은 없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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