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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전경, 용문사는 호구산에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용문사 전경, 용문사는 호구산에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 김정봉
난 휴가 일정에 절은 거의 빼놓지 않고 집어넣는데 천주교 신자인 아내는 싫은 내색 없이 잘 따라와 준다. 이런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여 이번 여행에서 절만은 아내와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숙소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수영을 하고 있는 동안 나 홀로 잠시 짬을 내어 찾은 절이 용문사다.

난 불자는 아니지만 괜히 절에 들어가면 마음이 가라앉고 심신의 피로가 가신다. 생활의 찌든 때가 벗겨진다고나 할까? 오래된 절터는 명당 중에 명당에 자리하고 있고 그에 못지 않게 풍광도 수려할 거라는 것이 나의 신념인데 이래서 더욱 절을 찾게되는 지도 모르겠다.

꼭 이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사람의 손때를 타면 더러워지는 것, 훼손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사람의 손으로 더 아름다워지고 추한 것이 정(淨)케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 땅에서는 절이 아닌가 싶다. 용문사는 위의 두 가지를 충족시키고 있으니 시간을 내어 이 절을 들르지 않았다면 후회막급할 뻔했다.

절에 도착했을 때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절 입구의 풍경이다. 이제는 웬만큼 알려진 절이라 하면 호젓한 분위기는커녕 온갖 맛 자랑을 해대는 음식점 때문에 절에 가기도 전에 기분이 상하기 일쑤지만 여기는 깔끔하고 한적한 것이 벌써 절에 올라가지 않고도 이 절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 입구, 달랑 매점 하나 있다
절 입구, 달랑 매점 하나 있다 ⓒ 김정봉
아니나 다를까 조금 올라가면 비탈진 좁은 공간을 비집고 터를 잡은 예쁘장한 부도 밭이 나온다. 부도 밭이라고 하기엔 돌담으로 둘러쳐 있어 부도 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하다.

시선은 멀리 남해 바다를 향한 채 9기의 부도가 아래위로 나뉘어 정답게 서있다. 부도로 이어지는 돌계단과 시야를 가리지 않을 만큼의 높이로 쌓아 올린 돌담은 정갈하기만 하다. 이 부도와 돌담을 보는 순간 벌써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도 집으로 부를까?
부도 집으로 부를까? ⓒ 김정봉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 일주문. 그 일주문을 통과하여 다리 하나를 건너면 제법 예스러운 건물을 만나게 된다.천왕각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숙종28년에 다시 지은 것인 데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천왕이 밟고 있는 것이 마귀 대신 벼슬아치, 양반이다. 불교가 민중에게 다가가려는 또 하나의 징표가 아닌가 싶다.

천왕각, 사천왕이 밟고 있는 것이 관리, 양반인 점이 특이하다
천왕각, 사천왕이 밟고 있는 것이 관리, 양반인 점이 특이하다 ⓒ 김정봉
천왕각을 벗어나면 조그만 무지개 다리를 만나는데 화강암을 시멘트로 이어 만든 것이지만 정성이 대단하다. 다리를 건너 올려보면 봉서루. 대웅전 정면과 마주보고 있고 이 절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봉서루 옆으로는 흙길 대신에 크기와 두께가 일정한 돌을 골라 온갖 공을 들여 만든 돌계단길이 있다. 돌마다 푸른 이끼를 머금고 있고 옆에는 푸른 대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이 보다 운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봉서루 옆으로 난 돌계단길
봉서루 옆으로 난 돌계단길 ⓒ 김정봉
돌계단길에 이끌려 대웅전으로 곧바로 가지 못하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교하게 쌓아올린 석축 위에 범종루가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치고 있다. 봉황이 봉서루에 깃들지 않고 범종루에 깃든 느낌이 든다.

석축 위의 범종루가 날아갈 듯 날개를 펴고 있다
석축 위의 범종루가 날아갈 듯 날개를 펴고 있다 ⓒ 김정봉
언덕에 올라서면 높낮이에 따라 낮은 담장을 쌓았고 그 옆으로는 범종루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일부러 담장을 둘러 돌아가는 돌담길을 만들었으니 너무나 예쁘고 은근히 정을 느끼게 하여 한참이나 눈길을 주게 된다.

키 작은 담장과 돌아가는 돌담길
키 작은 담장과 돌아가는 돌담길 ⓒ 김정봉
낮은 담 뒤로 보이는 앙증맞게 생긴 건물이 무얼까? 궁금하여 그 옆에서 열심히 밥을 짓는 공양주한테 물어보니 건물 옆에 있는 호스를 가리키며 그게 힌트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 건물은 소화전이 있는 건물인데 속으로 내가 '소화전(消火殿)'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바로 옆을 보면 장독대. 그냥 장독대만 있었으면 별 볼게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돌 예술'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돌담 안에 있는 장독은 약간 빈약하여도 제법 폼이 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한 가족을 보는 것 같다.

장독대와 '소화전(消火殿)'
장독대와 '소화전(消火殿)' ⓒ 김정봉
남해 사람들은 돌을 잘 다루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 같다.가천 다랭이 논의 돌축대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이 절을 꾸민 분은 분명 남해사람 중에서도 미적 감각이 가장 뛰어난 분일 게다.

돌담 두른 부도밭과 장독대, 봉서루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 범종루를 받치고 있는 석축, 범종루 옆으로 돌아가는 돌담길, 언덕길 따라 나 있는 예쁜 담장, 앙증맞은 건물, 요사채 뒤의 세 개의 굴뚝과 요사채 앞의 팔가모를 쓰고 있는 굴뚝.어느 한군데 정성을 다하지 않은 곳이 없다. 돌멩이가 뭉치면 이렇게 아름다워 지는구나.

용문사의 역사는 남해 보리암에서 시작된다. 원효대사는 금산에 지금의 보리암인 보광사를 짓고 그 후 이 곳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운 뒤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 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이 불타버리고 나서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 숙종 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 곳의 승병이 활약한 공으로 인해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이런 흔적이 숙종 때 지어진 대웅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팔작지붕치고는 처마가 크고 지붕이 웅장하다. 이래서 이를 떠받치고 있는 받침기둥은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대웅전
대웅전 ⓒ 김정봉
정면의 중앙 기둥위쪽에 있는 용머리 장식은 그 솜씨가 대단히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다. 대웅전의 전체적인 모습은 국가에 소속된 장인이 초빙되어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될 정도로 예술적 경지가 높다.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는 봉서루, 대웅전을 가운데에 두고 왼쪽 뒤편에 영산전, 오른쪽 옆에 명부전, 명부전 뒤로 용화전 등의 건물이 짜임새 있게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면서 화려하지 않은 게 전체적인 절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용문사 전경, 멀리 남해바다가 반짝거리고 있다
용문사 전경, 멀리 남해바다가 반짝거리고 있다 ⓒ 김정봉
여행의 마무리는 절 뒤편에 있는 녹차 밭에서 하는 게 좋다. 녹차 밭 중간 정도만 올라가도 절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절 지붕선 끝으로 멀리 남해바다가 반짝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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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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