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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2004 미국 대선은 양극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내 블루(blue)와 레드(red)의 대립은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치는 물론 지역, 인종, 경제, 문화,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묘하게도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다. 세계화의 엔진이자 진원지인 미국이야말로 세계화의 영향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는 2004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사회의 양극화된 이면을 현장취재한다. 블루와 레드는 미국대선 개표 때 주별로 민주당이 이긴 지역은 블루, 공화당이 이긴 지역은 레드로 표현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기자 주>

아칸소 주의 해리슨(Harrison)이라는 곳에서 벤톤빌(Bentonville)로 가는 62번 도로는 강원도 한계령을 넘는 것보다 더 험하다. 길이 날카롭게 꺾여서 때로는 30도도 안 될 것 같은 좁은 각도에서 격하게 핸들을 돌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중앙선을 넘어간다.

그만큼 산골이고, 마을들도 소박하다. '패밀리 마트'라는 큰 잡화점 간판이 눈에 띄는데 문은 못질이 돼 있다. 베어 크릭 스프링스(Bear Creek Springs), 앨피너(Alpena), 그린 포레스트(Green Forest), 지나치는 마을들의 중심가는 한결같이 껍데기만 남아 있다. 반면에 교회 간판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몸값은 이미 지불됐습니다. 우리는 그를 선택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 10장 10절. 예수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그것을 낙태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그것을 살인이라고 부른다."

▲ 베리빌 상공회의소 상주직원 마이크 엘리스씨
ⓒ 홍은택
살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내세의 구원이 필요한 것일까. 빈집이 늘어가는 남부의 농촌에서 자주 마주치는 교회 간판들의 행렬은 현세의 삶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그런데 베리빌(Berryville)은 달랐다. 여기에는 월마트가 있고 맥도날드도 있다. 마을에 활기가 있어 보인다. 차에서 내려서 상공회의소를 찾아갔다. 회의소의 상주 직원인 마이크 엘리스(Mike Ellis)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베리빌은 일대 소도시 주민들의 중심지"라면서 "반경 7,80km 안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여기 월마트로 물건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월마트가 들어서 소비자들의 발길이 많아지자 베리빌의 다른 가게들도 덩달아 잘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여기 오는 동안 다른 마을들은 쇠락해가던데…"
"사실이다. 그린 포레스트 같은 곳에는 구멍가게도 다 망했다."
"그럼 월마트가 있어서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어차피 적자생존의 사회 아닌가. 돈을 더 주고 물건을 살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의 말은 월마트가 추구하는 사회, 월마트 경쟁력의 비결을 함축하고 있다.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이자 공적 1호

월마트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기업은 없다. 월마트는 미국의 경제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존경 받는 기업(America’s Most Admired Company)'으로 지난 해에 이어 2년 연속 선정됐다. 반면 미 노동운동 나아가 진보진영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낙선운동보다 월마트 내 노조 설립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것은 평가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포춘>은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할 때 1만 명에게 설문지를 돌리는데 그 1만 명은 회사의 관리직과 경영진, 애널리스트들이다. 항상 애널리스트의 예측을 초과해 이윤과 성장을 달성하는 월마트는 그들에게는 꿈의 기업이다.

그런데 벤톤빌 시내 8번가에 있는 월마트 본사는 꿈의 기업 이미지와는 달리 한마디로 남루하다. 과거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다. 본사 건물에 당도하고도 정문 입구를 찾기 위해 건물 주위를 두 바퀴나 돌았다. 처음에 본 게 맞았다.

▲ 아칸소 주 벤톤빌 월마트 본사의 '검소한' 정문
ⓒ 홍은택
적색 벽돌로 된 정면에는 삼겹살 집 간판보다 작은 간판에 'WAL-MART STORES INC' 한 줄만 적혀 있다. 목표달성을 독려하기 위해 외벽 기둥에 걸어놓은 목표 아크릴 판도 한 귀퉁이가 깨져있다. 월마트 본사의 볼품 없는 입구는 검소함보다는 어쩐지 돈만 벌면 된다는 집착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일하는 목적이 노동의 즐거움에서 소비의 즐거움, 그러다 지금은 돈 버는 것 자체의 즐거움으로 옮겨가고 있는 게 아닐까? 평생 쓰지도 못할 돈을 번다? 그리고 쓸 줄도 모른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을 전파하는 회사가 자신을 가꾸는 것에는 전혀 소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본사 건물이 이렇게 남루한 것은 사실 월마트의 존재 이유이자 성장의 비결이다. 이윤을 높이기 위해 창업자 샘 월튼은 경상비용의 지출을 매출의 15% 내로 묶어뒀다. 그러니 건물을 치장하거나 번듯한 새 건물을 사는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지금도 경상비 비율은 16%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다른 슈퍼마켓 체인들의 경상비 지출이 20%를 웃도는 현실은 월마트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 비용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월마트 본사 입구에는 대형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월마트처럼 애국심을 기업홍보에 가장 잘 활용한 기업도 없다. 80년대 말 샘 월튼은 미국 전역에 있는 제조업체와 도매업체 3000곳에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제 애용(Buy American)' 캠페인에 동참해달라는 공개 편지를 보냈다. 아울러 그는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가능한 모든 것을 다 사주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생각을 기특하게 여긴 미국인들은 월마트로 갔다. 얼마 안 있어 월마트가 K마트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바이 아메리칸'이 '바이 월마트'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전체 수입품의 10%를 한 기업인 월마트가 수입한다. 성조기는 여전히 휘날린다.

월마트의 소비자 지상주의

▲ 본사 앞에서 휘날리는 대형 성조기
ⓒ 홍은택
월마트에서 가장 놀라는 것은 반품정책이다. 물건을 한두 번 쓰다 가져가도 거기서 샀다는 영수증만 있으면 반품이 된다. "왜 반품하느냐"고 물어볼 때 굳이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어차피 형식적인 질문이기 때문에 "안 좋아한다" 또는 "맘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래서 옷을 사서 파티에 다녀온 뒤 또는 캠핑을 다녀온 뒤 텐트를 반품하는 식으로 이런 '관대한' 정책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샘 월튼은 다 해진 신발을 가져와서 결함을 지적하며 반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새 신발로 바꿔줄 뿐 아니라 결함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덤으로 양말까지 주라고 가르쳤다. 거의 성인의 경지다.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밀어주라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월마트의 '은총'을 한번 받으면 매주 발길이 월마트로 향하지 않을 수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월마트를 '전도'하지 않을 수 없다.

샘 월튼의 전기작가 밴스 트림블(Vance Trimble)에 따르면 샘 월튼 고객철학의 제1조는 '고객은 항상 옳다'는 것이다. 제2조는 '만약 고객이 옳지 않다면 제1조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고마운 기업이 또 있을까. 이런 소비자 지상주의가 오늘의 월마트를 있게 한 원동력인 동시에 월마트를 진보진영의 공적 1호로 만든 원인이다.

월마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소매유통업체다. 월마트가 기존의 소매유통업체와 다른 점은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중개를 하는 게 아니라 극단적으로 소비자의 편에 선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사는 것을 원한다. 월마트는 하루에(일년이 아니다) 찾아오는 2000만 명의 소비자들을 지렛대로 활용해서 납품회사들에게 납품원가를 낮추라고 압력을 가한다. 납품회사들로서는 하다 안되면 낮출 수 있는 것은 인건비 밖에 없다. 그래도 안되면 공장을 저임금의 중국으로 옮긴다.

납품회사들뿐 아니다. 월마트는 스스로도 인건비를 최소화한다. 매출의 8% 이내다. 월마트 직원들의 시간당 평균 임금(2001년 기준)은 8달러23센트. 연간 1만 3801달러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정한 3인 가족 기준 빈곤선(2001년)이 연간 1만 4630달러였으니까 부양가족이 2명이 있을 경우, 월마트에서만 일하는 평균적인 직원들은 빈곤계층에 속할 수밖에 없다. 월마트에서는 120만명이 일한다.

▲ 주차장에서 본 월마트 본사 전경
ⓒ 홍은택
존 플랜켄버그(36·가명)도 그런 월마트 직원 중 하나였다. 그는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있는 월마트에서 일했다. 기간은 2000년에서 2001년까지 14개월간.(필자는 그의 본명을 알지만 가명으로 써달라는 그의 요구대로 가명을 쓴다)

그는 고객들이 주차장에 놔둔 또는 내팽개친 쇼핑 카트들을 모아서 매장 안으로 가져오는 일을 했다. 플랜켄버그와 같은 사람들이 수십 대의 카트를 연결해서 마치 기차놀이 하듯 밀고가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는 30대의 카트를 연결해서 민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쇼핑 몰의 주차장 구조가 완만한 V자로 돼 있다는 것을. 매장에서 주차장 중간까지는 내리막이고 중간에서 주차장 끝까지는 다시 오르막이다. 그래서 주차장 중간까지 밀고 가는 필자와 같은 손님들은 힘이 덜 들고 그것을 찾아서 매장으로 밀고 오는 플랜켄버그씨와 같은 사람들은 허리가 휜다. 시원스럽게 쭉쭉 밀고가지도 못한다. 손님이 지나가면 멈춰야 한다. 탄력을 받을 수가 없다. 더구나 주차장에서 일하는 것은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이 뒤따른다.

"하루 8시간 동안 카트를 밀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다"는 그가 처음 받은 임금은 시간당 6달러 25센트. 석 달 뒤 50센트가 올라서 6달러75센트를 받았고, 그 이후로는 인상이 없었다고 한다. 주당 270달러, 한 달에 1080달러(120만원 상당)를 받고 살았다. 그 중 절반 가량이 집세로 나갔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손님들의 물건을 계산하는 회계원(cashier)이 되는 것이었다. 점심 시간을 아껴 교육 훈련을 자청했다. 고졸 학력인 그는 시험에서 5개 과목 모두 거의 만점을 받아 마침내 회계원이 됐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서 야근조로 배치됐다. 밤에는 손님이 적기 때문에 하루에 1시간만 회계원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시 카트를 밀어야 했다.

그는 14개월을 일하고, 월마트를 그만뒀다. 회사를 나온 이유는 의료보험 때문이었다. 6개월이 지나면 지급하게 돼 있는 의료보험 혜택을, 입사 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그는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항의하며 결국은 본사에까지 이 문제를 끌고 올라갔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14개월을 일했다.

"왜 더 일찍 나오지 않았는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면 최소한 2주간은 돌아다녀야 한다. 수중에 돈이 없는데 2주간 다닐 여유가 없었다."

싼값의 사회적 비용

▲ 벤톤빌 외곽에 있는 유통창고. 정문 입구에는 "이 문으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The Finest People)이 지나다닌다"고 적혀 있다.
ⓒ 홍은택
월마트는 플랜켄버그와 같은 빈곤계층을 엄청난 규모로 배출하고 있다. 이들의 의료비용과 의식주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비용이 든다. 납세자들의 몫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월마트 직원들의 의료비용으로 주 예산에서 2000만 달러를 투입한다는 연구결과(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노동과 고용연구소)가 나왔다.

미 하원 노동과 교육위원회소속 민주당 연구위원들의 조사 결과로는 월마트 직원 한 명당 2103달러, 200명 규모의 월마트 한 곳당 연간 42만750 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월마트가 임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적게 준 그 차액 만큼을 정부가 보조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마트에서는 노조가 없어서 저임금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월마트는 노조를 발본색원한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잠재적 노조 동조자를 가려낸다. 학력이 높다든지 옳고 그른 일에 흥분을 잘 한다든지 하면 채용 인성 테스트를 통과하기 어렵다.

얼마 전 밝혀진 '노조에서 자유롭기 위한 매니저의 연장통(A Manager’s Toolbox to Remaining Union Free)'이라는 월마트의 내부 지침은 조합 결성의 낌새를 눈치 채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매니저들은 직원들이 동료 집에서 자주 회합한다든지, 또는 평소에 말을 안 하던 사람들끼리 갑자기 대화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래서 징후를 포착하면 핫라인으로 본사에 알려야 한다. 본사는 즉시 본사 항공기인 에어 월튼(Air Walton)에 '노조대책반'을 태워 현장에 급파한다. 매니저의 의혹에 찬 시선을 피하려면 원래 얘기하던 사람 하고만 계속 얘기를 해야 한다.

2000년 2월 텍사스 주 잭슨빌(Jacksonville)에 있는 월마트에서는 미국 월마트 사상 최초의 일이 일어났다. 정육부 직원 10명이 투표 끝에 7대3으로 노조를 결성한 것. 그러나 월마트의 대응은 신속하고 강력했다. 바로 정육부를 없애버리고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부서가 없어졌으니 노조도 있을 수 없다.

명백히 노조 탄압으로 보이는 이 사안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오는데 3년 이상 걸렸다. 드디어 2003년 6월 연방 노동 판사는 정육부 해체가 불법이라며 노조를 인정할 것을 판결했다. 그 결과를 '넙죽' 수용할 월마트가 아니다. 불복해서 아직도 사건은 재판 계류중이고 여전히 미국 월마트는 노조가 하나도 없는 직장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 노조 탄압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니 돈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

월마트가 무서운 이유

▲ 벤톤빌에 있는 월마트 수퍼센터 매장 내부.
ⓒ 홍은택
월마트가 21세기형 자본주의의 전형이 되고 있는 이유는 판박이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서는 올해 몇 달간 슈퍼마켓 체인 종업원들의 파업이 있었다. 종업원들은 슈퍼마켓 체인들이 제시한 기존 의료보험 혜택의 축소안에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은 대폭 혜택이 축소된 채 파업이 일단락됐다.

슈퍼마켓들이 내세운 이유는 월마트가 들어오면 다 죽게 돼 있기 때문에 비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최근에도 미국의 또 다른 소매유통업체인 크로거(Kroger)는 노조에게 월마트와 경쟁하기 위해서 임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진보성향의 잡지 <네이션(Nation)>은 6월28일자에서 "월마트는 자신이 뛰어들지 않은 시장에서 기업들의 노사 협상을 좌지우지한 사상 최초의 기업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호랑이가 온다는 말만 들어도 아이가 울음을 딱 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잔 필립스(Susan Phillips) 슈퍼마켓과 요식업 연합노조(UFCW)의 부위원장은 "오늘날 미국의 민간 기업 노사 협상 테이블에도 보이지 않는 대형 괴물이 앉아 있다"고 월마트를 괴물에 비유했다.

단지 미국만이 아니다. 월마트에는 세계적으로 1만개의 납품회사들이 있다. 월마트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납품회사로 살아남기 때문에 납품회사들의 노동조건은 연쇄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엘살바도르, 방글라데시와 같은 더이상 임금을 낮출 여지가 없는 나라들도 공장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임금을 낮춘다. 결국 열악한 노동환경은 방치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반드시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노조를 설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처럼 연간 이직률이 절반에 달해 이동이 빈번한 곳에서는 노조를 만들기 어렵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미국의 노동환경이다. 노동계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 중 하나가 노조는 만들기 어려우니까 '월마트 노동자협회(Wal-Mart Workers Association)'를 만들어서 일단 단체활동이라도 시작하라는 것이다. 줄여서 월노협인데 한국에서 상급단체 조직이 금지돼 있을 당시의 전노협을 연상시킨다. 미국 노동계의 현실이 그렇게 척박하다.

시작 단계인 공동체의 대응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소비자이기도 하고 생산자이기도 한다. 소비만 하면서 혹은 생산만 하면서 살 수 없다. 소비와 생산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물건을 싸게 사기도 해야 하지만 제 값을 받고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병원도 다니고 아이들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 월마트의 극단적인 소비자 지상주의는 이런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 월마트의 가격은 다른 소매유통업체들이 도매로 사는 가격보다 더 낮다. 하지만 밑지고 파는 장사꾼은 없다. 물건값을 낮추는 데서 발생하는 비용은 생산자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전가된다.

문제는 그런 체제가 잘못된 것이지만, 물건을 싸게 사지 않으려는 소비자란 없기 때문에 월마트로 발길을 돌린다는 점이다. 존 플랜켄버그는 월마트에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월마트에 간다. 그는 한마디로 평가했다.

"It is a bad place to work but a great place to shop.(일하기는 나쁜 곳이지만 쇼핑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네이션>에 따르면 미 노동조합들이 발행한 신용카드로 결제된 금액의 30%가 월마트에서 지출됐다. 싸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노동자들은 더욱 월마트로 가야 한다. 필자도 간다.

그래서 새롭게 나오는 대안이 공동체의 대응이다. 로스앤젤레스의 교외에 있는 잉글우드(Inglewood) 시는 주민투표를 통해 월마트 슈퍼센터의 진입을 거부했고, 앨러미다 카운티(Alameda County)에서는 법을 만들어 매장 면적이 10만 평방 피트 이상이고, 야채 품목의 판매가 매출 10% 이상이 되는 슈퍼마켓의 개장을 불허했다. 이 조건은 정확히 월마트 슈퍼센터를 겨냥한 것이다.

월마트를 거부하는 공동체는 시카고의 남부 빈민지역, 애리조나 투산(Tucson), 버몬트 주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 전역을 놓고 보면 220곳에서 일본의 스모 경기처럼 링 안으로 들어오려는 월마트와 이를 밀어내려는 공동체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월마트를 거부하는 이유는 월마트의 출현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고, 시 정부의 세수를 줄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지역 신문마저 울상을 짓는다. 언제나 제일 싸고 질 좋은 물건을 파는 월마트는 별로 광고를 할 필요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노동계의 힘이나 월마트의 매력적인 소비자지상주의에 비춰볼 때 공동체단위의 움직임이 월마트의 세확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저항이, 공동체가 거의 무너진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월마트가 도시로 들어오면서 겪는 부분적, 일시적 장애에 불과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싼값의 숨은 비용에 대한 집단적 통찰력과 월마트의 소비자 지상주의 둘 중 어느 선수가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앞으로 3년 내에 미국의 모든 식품과 약품의 35%가 월마트에서 팔릴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현재로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은 월마트화(walmartization)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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