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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고택의 전경
신석정 고택의 전경 ⓒ 강지이
1930년대 <시문학>이라는 잡지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서정적인 시를 썼던 신석정 시인은 김영랑와 함께 당시의 순수 문학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이 작품의 경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고 많은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서정적인 시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이하 생략>


낭만적이면서 이상주의적 경향의 이 시는 크게 두 가지로 평가되는데, 그것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현대시와 소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던 1930년대는 문학사적으로는 풍요로웠던 시기일지 모르나 시대적으로는 희망이 점점 줄어들던 참혹했던 시기이다.

이른바 '낭만파'라고 불리는 신석정과 김영랑 그리고 당시 다른 시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비판의 잣대는 바로 '그 암담했던 시절에 어쩌면 이토록 태평하게 낭만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느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그런 방관적 태도를 취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지적들이다.

시대적 현실을 도피하듯 침잠하게 자신들만의 낭만적 언어유희로 글을 썼던 당시 지식인들에 대한 현대인들의 칼날과 같은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이라는 것은 시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대 현실을 무시한 문학은 그 가치 평가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따라서 신석정을 비롯한 30년대 시인들이 그 시대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를 보인 것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정작 시인 자신들은 훗날 그 당시의 시작(詩作) 풍조에 대한 여타의 언급 없이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다. 그저 후대 평론가들이 그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평가를 내릴 뿐이다.

이러한 비판과는 또 다르게 이 작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암담했던 시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바로 '이상적 공간'인 '그 먼 나라'를 꿈꾸게 했다는 것. 그리고 '고요한 호수 위에 흰 물새가 나는 그 먼 나라'란 바로 '광복을 맞이한 평화로운 조국'이라는 해석이 적용된다.

시인 신석정이 암울한 식민지 현실과 타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적극적으로 대항하지도 못하는 비애를 느끼고 이것을 이상향 추구로 표현했다는 해석도 꽤 많다. 이러한 해석을 적용할 경우 시인을 단순히 식민지의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다고 폄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가 진정으로 식민지 현실에 대해 고뇌하고 그 현실을 탈출하고자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공간을 노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현실 극복 노력이 아니기에 크게 존경받기는 어렵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의 시가 지닌 낭만적 감수성과 아름다운 언어 표현은 현대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언어 표현에 비해 지나치게 당대 현실을 외면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고택 내부에 걸린 시인의 사진
고택 내부에 걸린 시인의 사진 ⓒ 강지이
신석정 고택을 찾아가는 길은 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어려운 것처럼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좁다란 골목으로 깊이 들어가 개량식 지붕들 틈바구니에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세 칸 짜리 소박한 초가집. 넓지 않은 마당에서 옹기종기 꽃을 피운 작은 꽃나무들.

집은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그 집은 시비(詩碑)조차 없이 문짝도 다 뜯겨 나간 채 비바람을 견뎌내고 있다. 마당에는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담긴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고요함 속에 들여다 본 집의 내부는 더욱 더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집에 걸린 커다란 시인의 사진과 그의 시를 써 놓은 글들, 흙벽과 초가지붕. 이 모든 풍경은 왠지 시인의 시와 삶이 다른 이들에게서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찾는 이도 별로 없는 듯한 손질되지 않은 그의 옛집은,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비록 신석정 시인이 당시의 시대 현실을 묵과했다는 과오가 있을지 몰라도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풍요로운 언어의 잔치를 벌였던 사람이다. 그의 시가 지닌 감성적인 표현과 현대시로 발돋움하는 언어 감각은 탁월했다고 칭송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곰팡이가 피어 오른 고택 내부
곰팡이가 피어 오른 고택 내부 ⓒ 강지이
신석정 시인의 오래된 집에 눅눅하게 붙어 있는 곰팡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듯하다. 텅 빈 신석정 고택을 들여다보며 문학과 문학가가 크게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느끼게 된다. 그 서글픔은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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