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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을 막 타려고 하는데 인도네시아인 샤미밍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와 있는데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못 알아듣겠으니, 통역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하철 안이라 통화하기가 곤란해서, 잠시만 기다리면 내려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못 참고 문자가 급하게 들어 왔다.

"상기 환자로 이학적 검사상 흉추 중간 부위 압통이 있으며 엑스선상 경도의 측만증"
"소견이 관찰되어 향후 적절한 대중요법 가료 요할 것으로 사료됨...이에 약2주간"
"물리치료 후 재진 요할 수 있음..."


샤미밍이 직접 문자 메시지를 넣었는지 다른 한국 사람이 옆에서 거들어줬는지 모르지만 3회에 걸쳐 들어 온 문자를 통해, 샤미밍이 2주 정도의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흉추 중간 부위'에 눌리는 듯한 통증이 있고,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 '경도의 측만증'이 보여서 약 2주 정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한국인인 나 역시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샤미밍은 3년 전 산업기술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같이 들어온 동료 두 명이 입국한 지 얼마 안돼 연수업체를 이탈하는 바람에 세 명이 일하기로 돼 있던 부직포 생산 라인을 혼자 도맡아 일하게 됐다. 그러면서 샤미밍은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게 됐다.

그를 처음 만난 곳도 병원이었다. 이천의 한 정형외과에 손목이 잘려 입원 중이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당시 그는 허리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여러 날 병원에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날도 그는 병원에서 발급해 준 진단서를 들고 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그 후로 샤미밍은 종종 전화를 해 왔다. 특히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는 꼭 전화를 해서는 자신의 증상이 어떤지를 확실히 알고 싶어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무료 진료가 있는 날이면 와서 침과 뜸으로 한방 치료를 자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치료를 해도 엑스레이까지 찍게 된 걸로 봐서는 허리 통증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듯하다.

지난 주 샤미밍은 여의도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고 했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서 연수업체를 이탈하지 않고 계속 일했기 때문에 앞으로 2년 동안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귀국을 하겠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집에 가면 허리부터 치료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굳은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 전문 할머니들이 시골에 있어서 싼 값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산재처리 여부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지만 이미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는지 그는 귀국이나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샤미밍은 지난 2년 동안 아파도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대충 허리가 아프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손자 손녀 아픈 배 주무르듯 아픈 허리를 살살 문질러 줄 고향의 할머니 마사지사들을 그리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라도 통하는 사람에게, 아픈 이유와 치료 방법 등을 쉬운 말로 알아듣게 말해 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픈 곳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인도네시아에 귀국하면 아픈 허리뿐만 아니라 상처 받은 마음까지도 치료되기를 바란다. 따뜻한 고향 땅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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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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