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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는 제일 무서운 곤충이었다.
사마귀는 제일 무서운 곤충이었다. ⓒ 김규환
내가 어렸을 땐 아이들에게 사마귀가 많았다. 많다고 하는 것보다 아예 점령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손과 발에 불청객이 도사리고 있는 모습이란 정말로 끔찍하다. 미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건강에도 하등 쓸모없던 사마귀. 탱탱 불은 보리밥테기보다 더 큼지막하고 징글맞은 사마귀였다.

그 때는 가운데가 쏘옥 함몰된 사마귀가 왜 그리 많았을까. 오히려 2~30년이 지난 그 시절이 지금보다 생활환경이 더 좋았는데도 예외 없이 사마귀가 있었다. 피부암이었을까? 아니지. 암암자(癌)는 입구(口)자 세 개 뭉쳐있는 것으로 질병의 덩어리(口口口)라고 표현되며, 그 덩어리가 산(山)을 이룬 것을 암(癌)이라고 쓴다. 하지만 사마귀가 있었어도 아무 이상 없이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것 보면 암은 아닌 듯싶다.

그 조직은 암처럼 피부 속을 베트콩 지하 땅굴 미로를 본 딴 듯 굽이굽이 퍼져 있다. 꽝이 박힌 무 뿌리도 아닌 것이 말이다. 기괴한 이상 세포는 파내도 금세 망령처럼 되살아나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곤 했다. 마치 고구마 뿌리를 열댓 개 뭉쳐 심어놓아 얼기설기 뻗은 듯 하다.

특히 여름에는 없던 사마귀가 더 많다. 처음에는 땀띠인 듯 오돌오돌 돋아나다가 며칠 지나면 쑥쑥 자라 하나였던 것이 둘 셋 넷 새끼를 친다. 어미 사마귀 주변엔 열댓 개나 흉측하게 붙어 있다.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형상이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짜증까지 난다.

거치적거리다보니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나나 형들은 평소 사마귀를 보면 세 가지 처방을 한다. 티눈과 다른 점은 티눈은 어쩌다 한 개 박히는데 사마귀는 한두 개로 끝나지 않았다.

“엄마, 너무 성가셔요.”
“글면 짚시랑물을 맞아라.”

여름비가 무던히 내리던 날 어머니는 초가지붕 처마 끝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물이 효험이 있다고 했다. 2~3년 된 이엉과 용마름이 안쪽에서 썩어서 흘러내리는 갈색 짚시랑물에 손을 대서 소독을 하는 것이다. 두엄 침출수 같은 물을 맞는 기분은 영 아니었다. 얼굴까지 빗물이 튀어오르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처마 밑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짚시랑물이라 했다.
처마 밑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짚시랑물이라 했다. ⓒ 김규환
그 다음이 곤충 사마귀를 잡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진한 갈색의 독 오른 사마귀를 잡아서 어디에다 쓸까? 사마귀를 오돌톨 돋은 부위에 마지못해 붙이면 아구지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물어뜯는다.

흡혈귀를 닮은 저작구(詛嚼口)를 날름거리면 어린 우리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대로 사마귀가 없어진다는 통에 그 무서운 곤충을 다시 잡아 손에 붙였다. 사정없이 딱딱한 발 갈퀴로 사마귀가 물어뜯는다. 그래도 맨살만 아플 뿐 사마귀가 난 자리는 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짚시랑물도 발라보고 사마귀를 잡아 물어 뜯겨도 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더 근질근질했고, 사마귀가 손등을 점령한 상태였다. 정 안되겠다 싶어 필통에 든 연필 깎는 칼을 꺼냈다. 혼자서 수술을 하는데 수술이란 것도 별게 아니다.

칼로 그냥 맨살을 파냈다. 티눈이 발바닥에 자리 잡으면 성가실 뿐만 아니라 걷는데도 지장을 초래하므로 기를 쓰고 도려내듯 스스로 의사가 되어 며칠이고 피가 질질 흘러도 끈질긴 정신력으로 무장하여 파낸다.

그 왕사마귀 뿌리는 정말이지 끈질기다. 파고 또 파서 환부가 넓어지면 아궁이에 철사를 달궜다가 지져주는 작업의 반복이 수일 이어졌다. 그래도 다시 살아나 귀찮게 하니 열흘 쯤 뒤에 재수술에 들어간 게 몇 번이었던가.

손등 사마귀 때문에 짚시랑물과 사마귀 곤충, 칼까지 총동원된 그날의 아픔은 쓰라림 그 자체였다. 지금 내 손과 발은 말짱하다.

여전히 난 사마귀가 무섭다.
여전히 난 사마귀가 무섭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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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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