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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인물과사상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 그 지지자들마저 조중동에 휘둘리고 있다."

우리 시대 최고 논객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지난 3월 <한국일보> 칼럼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편지형식으로 분열주의 정치 폐해와 열린우리당 창당의 방법론적 폭력성을 비판하며 글쓰기 중단을 선언한지 5개월 만이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강 교수는 최근 발행된 <인물과사상> 9월호에 기고한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는 노무현'이라는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원고지 220장에 달하는 긴 분량의 이 글은 '2004년 7월의 한국정치'라는 부제가 말하듯 노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물론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에 이어 '조중동',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 등 한국정치 지형에 대한 총체적 진단을 담고 있다.

"노무현 비판 공공적 득이 더 크다"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엄혹하다. 곳곳에 특유의 독설이 배어있다. 과거 <노무현 살리기>, <노무현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노무현과 자존심> 등을 통해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밝혔던 그로서는 '통분'이 교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8월 펴낸 <노무현 살리기>에서 "'노무현 죽이기'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학으로부터의 쾌감'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 의젓한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며 "언제까지 어린애들처럼 징징대면서 노무현을 씹고 조롱하고 야유해야 하겠는가"라고 외칠 때와 정반대 모습이다.

그는 당시만 해도 보수언론과 보수 지식인의 악의, 편협, 부화뇌동에 의한 '노무현 죽이기'에 천착했다. 보수언론과 우파성향 엘리트를 향해 거침없이 비판의 날을 던졌다. 이제는 그 비판이 '노무현'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역시 '노무현 죽이기'가 궁극적 목적이 아닌 듯하다. 진정한 개혁과 정치발전을 위한 그의 깊은 애정은 다시 글을 쓰게 된 연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노무현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사이의 공공적 득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썼다가 발표하지 않고 처박아 두기도 했으나, 이젠 득이 더 크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고 밝혔다. 노무현 지지자들의 내부 비판이 거의 없으며, 가끔 나오는 비판도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뼈아픈 고민과 결단은 노 정권에 대한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노 정권에 대한 갖는 생각은 환멸도, 냉소도 아니다"며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사회와 정치에 대해 깊은 관심과 함께 나의 생각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기를 바라는 열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80년대 반독재투쟁을 하던 시절의 행태적 정체성을 보이는 노 정권에 대해서는 불유쾌함을 나타냈다.

▲ 강준만 교수가 그동안 펴낸 '노무현' 관련 책.
ⓒ 오마이뉴스 신미희
증오의 정치...조중동 키워주는 건 '노무현 정권'

그는 "노무현 일행은 '증오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비판의 포문을 열고 "노무현 일행이 하는 '증오의 정치'에 대한 유일한 면죄부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한심한 작태"라고 혹평했다. "노무현은 예전의 노무현이 아니라 어느새 어설픈 마키아벨리가 됐다" 평도 덧붙였다.

그리고 물었다. 언제까지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그토록 과대평가할 것인가. 언제까지 조중동에 휘둘리는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그는 노무현과 노 정권이 '이분법 정치'에 자기 발목을 잡힌 문제부터 짚었다. 민주당 분당에 뿌리를 둔 이분법 정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책임없는 말을 너무 많이 떠들어댔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풍의 악순환'을 가져왔고, 이에 기여한 게 조중동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노무현과 노 정권은 국민보다는 조중동을 상대로 정치를 해왔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노무현과 노 정권이 '허풍의 악순환'과 극렬한 전투태세에 빠져들면 들수록 조중동의 몫은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조중동을 키워주는 건 수구 기득권세력이 아니라 노무현과 노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의 보이지 않는 적은 노무현 안에 있다"며 좀더 겸허해질 것을 주문했다.

열린우리당은 정치판을 기회주의로 만든 1등공신

그는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 행태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집단적 기회주의'이자 '시대적 광기'로 표현했다. 싸움질 정치로 국정운영을 대신 하겠다는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것. 그는 "노 정권이 목숨을 건 모험주의를 불사했던 것도 헤게모니 투쟁과 연관된다"며 "이라크파병 건에는 대단히 신중하거나 소심, 비굴했던 것은 헤게모니 투쟁과 무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싸움질 정치 자체보다 '기회주의'라는 게 그의 우려이다. 그는 "어느 집단이 어떤 명분을 선점해 여론재판으로 치고 나가면서 자신은 선의 편에 서고 다른 집단은 악의 편으로 몰아넣는 식의 싸움질을 본 적이 있는가"라며 "그런 식으론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회주의로 일어선 정당은 언젠가 또다른 기회주의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열린우리당은 한국 정치판을 기회주의 잔치판으로 만든 1등 공신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 지난 3월 15일 정치 글쓰기 중단을 밝혔던 <한국일보> 칼럼.
ⓒ 한국일보 PDF
노무현 주변 기회주의자들도 지목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 뒷짐지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대통령이 되자 무슨 일을 벌이건 찬성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는 노무현이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된 뒤 한국사회는 전례없는 새 유형의 기회주의 논쟁에 휘말려들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포장지가 워낙 화려한데다 뜨거운 정열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맴돌고 있어 "모든 논쟁의 핵심이 기회주의라는 걸 깨닫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심리학’의 영역으로 탄핵사태를 간주한 그는 "탄핵의 주동세력은 민주당이지 한나라당이 아니었다"고 확인했다.

그는 탄핵사태를 "억울한 왕따를 당해 파멸의 궁지로 내몰린 사람(민주당)이 저지른 칼부림 사건"에 비유했다. 다수파는 칼부림 사건의 ‘사악함’에 분노한 반면, 왕따 전략을 비판하던 극소수 사람들은 그 ‘어리석음’에 분노했다는 설명이다.

왕따 전략의 당사자는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을 가리킨다. 또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개혁’과 ‘진보’라는 구호는 ‘민주당 죽이기’를 비롯한 헤게모니 쟁취용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는 탄핵사태 결과에 대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회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꼬집었다. 과거와 유형을 달리하지만 젊은 민중의 순진한 개혁열망을 포섭하고 동원했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제왕적 대통령’ 탄생의 과시였다는 것이다.

호남표심 '지역주의 탈피'?..집권여당 놓칠 수 없다는 선택이었을 뿐

그는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 노 정권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선 16대 총선에서 나타난 호남 표심을 ‘지역주의 탈피’‘개혁성’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했다. 한나라당의 전면거부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기존 독식 밥그릇 주인만 교체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호남인들은 4.15총선서 누가 옳건 그르건 집권여당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준 것 아닌가"라며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던진 메시지 핵심은 개혁을 위해 호남이 한번 더 당하라는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밥그릇 분배 정의' 이상 의미가 없다"며 "그게 무슨 지역주의 타파냐"고 한탄했다.

그는 최근 호남 민심이 나빠진 결정적 이유인 '호남소외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따졌다. 호남 표심은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지역주의 양비론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고, 민주당은 지역주의 기생정당으로 매도됐다는 것. 그는 "열린우리당의 동진전략을 받아들인 셈인데 열린우리당이 영남에 더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이제 와서 그럴 줄 몰랐다고 ‘호남소외론’을 떠들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민주당 호남독식 체제에 안주해 망했다..아예 입닫아라

그는 민주당에 대한 혹평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은 당하게끔 돼 있었다"며 예정된 몰락임을 강조했다. "애초에 답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 게 정답"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그는 "민주당이 살 길은 당원이 주인되는 민주노동당처럼 만드는 것뿐"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간 민주당 행적으로 보아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그는 "지금 민주당 의원들 대다수는 자리나마 즐기려는 사람들이지 민주당 회생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사람들이 아니다"고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는 "추태부리지 말고 죽을 때 의연하게 죽을 것"을 주문하는가 싶더니 "의연하게 죽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예 입닫는 게 상책일지도 모르겠다"고 혹평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겸손한 장례식’ 편에 서련다"는 말로 민주당의 비전 없음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노무현의 말 안되는 말을 비판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원망하지 말 것"도 당부했다. 이어 "민주당은 호남 독식체제에 오랫동안 안주했던 탓에 판단력을 잃고 망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 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은 나 같은 제3자의 몫이지 감히 민주당이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밖에 교수, 언론인과 함께 시민운동가들의 정관계 진출이 낳는 과도한 정치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치갈등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줄 수 있는 심판의 영역이 사라지고 사회불신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 언론인, 시민운동가의 정관계 진출에 반대했다. 극렬한 패거리싸움에 오염된 한국정치 풍토에서 시민의 신뢰를 받는 중립지대를 넓혀가는 게 정치발전을 위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개혁 명분 하에 개혁쪽 '줄 문화'가 더 극성을 부리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나타냈다. '줄의 정치'를 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유시민을 지목한 그는 "노무현이 무슨 일을 하건 유시민은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고 지원사격을 보낸다는 점에서 '유시민은 노무현 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혁과정에서 도덕뿐 아니라 인간성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선과 자기도취’‘배신과 기회주의’에 바탕한 개혁은 하나를 얻고 둘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 개혁주의자들의 '전투적 자세’와 관련해서는 대상에 따른 차별화의 필요성, 다양성 존중 등을 주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노무현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노무현은 확실히 ‘보통사람’이 아니다"고 전제한 그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태도를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안희정은 무겁게 벌해야 할 것이며 훗날에라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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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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