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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하얀모래님과 넝쿨이의 물싸움. 하얀모래님이 아무래도 열세인 것 같다.
ⓒ 박철
느릿느릿 이야기 홈을 통해 만나던 사람들끼리 올해 처음으로 가족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가족수련회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가족 휴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느릿느릿느릿 홈에 문을 두드리고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 대략 1천 명쯤 됩니다. 주로 온라인 상으로 만나다가 함께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 사흘 동안 같이 밥해먹고, 잠자고 지낸다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수련회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간다고 했던 사람들 중에 사정이 생겨서 못 간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프로그램 진행자와 밥짓기 조별 명단이 들어 있는 가이드북 인쇄 과정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난감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 진행을 즉흥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시원한 정자 그늘 아래서.
ⓒ 박철
출발 하루 전, 동두천에 사는 필명이 '원시인 아들'(정현민. 초등학교6년)이라는 꼬마가 "뭐 입고 가죠?"는 글을 올려놓아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제가 한동안 뜸했죠? 방학이라고 노느라고 시간을 다 빼앗겼네요. 근데 내일 수련회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사 입을 수도 없고. 제가 내일 가서 옷을 잘 입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세요. 아직 어리니까요. 그럼 내일 봐요."

'원시인 아들'의 걱정에 대해 '해마루'님의 답변도 걸작이었습니다.

"걱정 뚝! 원시인 아들이니까. 옷 안 입어도 되지 않을까? 후다다닥=3=3=3"

출발 당일인 8월 9일(월) 아침부터 날씨가 푹푹 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인 덕동계곡에 들어서자 우렁찬 매미소리와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했습니다.

▲ 기린님의 멋진 다이빙. 노는게 완전 어린애 같다.
ⓒ 박철
느릿느릿 가족들이 속속 도착하고 '하얀모래'라는 필명의 부산 사나이가 부산에서 공수해 온 생선회로 이른 저녁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계곡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겅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끼리도 거의 처음 만났는데, 친형제들처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목조로 잘 지어진 덕송교회 마룻바닥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기타를 반주로 백창우씨의 창작동요를 한 시간 동안 배웠습니다. 창 밖으로는 나지막이 어둠이 내리고 별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어릴 적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강 건너 산 밑으로 기차가 가네. 멀-리 가느다란 연기 뿜고서. 언덕 위에 올라선 어린 두 형제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봅니다. 언니 태우고 간 기차 말 하나 없이 달이 열 번 둥글어도 안 데려오나. 언니 소식 언제나 들어보나요. 오늘도 들판에는 해가 집니다."


▲ 기린목사의 하모니카 연주. 하모니카 연주가 수준급이다.
ⓒ 박철
느릿느릿 가족들 간에 자기소개를 하고 생활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원장으로 있는 차흥도 목사의 "판단하지 말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차 목사는 현대인들의 삶이 이토록 살풍경하고, 모든 인관 관계가 깨어지게 된 이유가 서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해 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차 목사의 강연을 모두가 공감하며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있었습니다. 첫날밤은 조금 들뜬 마음으로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쉬 자지 못하고, 퉁당거려 잠을 설치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날 아침, 새벽에 잠이 깬 느릿느릿 가족들이 아침산책에 나섰습니다. 덕동계곡은 산과 숲으로 둘려 쌓여 있기에 사방에 볼거리가 많습니다. 허물을 벗어 놓은 매미, 이제 씨가 맺히기 시작한 산초나무, 낮은 산자락 허리를 감고 있는 아침안개, 수많은 꽃들의 향연 등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 동두천에서 온 정형란님. 맑은 웃음이 너무 멋져요.
ⓒ 박철
카레라이스와 매운탕으로 일찌감치 아침밥을 해먹고 널찍한 계곡으로 모든 일행이 이동했습니다. 어른들은 시원하게 지어진 정자 그늘에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물놀이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다이빙이 시작되었습니다. 높은 바위 벼랑에 올라가 뛰어 내리는 것인데, 그 높이가 4∼5미터쯤 되어 뛰어 내리려면 더럭 겁이 나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다이빙하는 것이 재밌게 보였는지 이번에는 아내가 도전하겠다고 바위에 기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위험하니 그만두라고 해도 꼭 해보고 싶다고 막무가내입니다. 엉거주춤 한 번 뛰어내리고 다시 바위에 오릅니다. 그러면서 “무섭지 않을 때까지”해 보겠다고 합니다.

▲ 제1회 느릿느릿 가족수련회 참석자 일동
ⓒ 박철
배가 고프면 나와서 먹고, 또 물에 들어가 첨벙거리고 하다보니 금방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저녁에는 서울에서 ‘꽃님’이라는 회원이 기타리스트 오승국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동안 일산 번개모임에 두어 차례 오승국씨의 기타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느릿느릿 수련회에서 오승국씨의 기타연주를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승국씨는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 기타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귀국 후 수십 회의 독주회와 오케스트라와 협연, 앙상블파의 연주를 한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입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삽입곡으로 많이 알려진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창 밖으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선율이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들의 얼굴은 연인들의 얼굴처럼 발갛게 상기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 오승국 님의 기타연주.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 박철
셋째 날은 이제 수련회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입니다. 덕동계곡에서 가장 비경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친형제처럼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덕동교회 김은수 목사가 백운산 트럭사파리를 제안했습니다. 물어보나마나 모두가 좋다고 합니다. 모두가 트럭에 올라타고 임도(林道)를 따라 백운산 정상까지 갔다 오는 것이었습니다.

길 밑으로는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처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리도 지르고 하더니 나중에는 모두 겁을 집어먹고 조용했습니다. 스릴만점이었습니다. 애들이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도중에 두 번 차에서 내려 오줌을 누여야 했습니다.

▲ 트럭 싸파리. 임도를 따라 백운산 정상까지. 스릴만점이었다.
ⓒ 박철
산에서 내려오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헤어지는 순간이 아쉬워 오랫동안 손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 삭막한 세상에 인터넷 온라인 만들어 준 새로운 인연을 깊이 감사하면서….

느릿느릿 가족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년 이맘때면 아마 아이들의 키는 더 자라 있을 것이고, 어른들은 더 풍성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만나게 될 것입니다.

느릿느릿 수련회를 다녀와서

같이 밥 해먹고 얘기 나누고 잠을 자면서 저는 김주숙 사모님께 정이 팍 들었습니다. 그분은 어쩌면 사람들의 필요를 제일 먼저 헤아리고 부지런히 움직이시고 항상 웃음이 가득한 지. 노래도 잘 하시고 요리도 잘 하시고 게다가 아이들이 바위 위에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뵌다고 용감하게 다이빙도 시도해보시는 순수함까지.

기린님은 번개모임 연출자로 알았는데 재치있는 말솜씨로 군중을 웃게 만드는 번개 같은 지혜의 소유자였습니다. 모래님은 맛있는 회 뿐만 아니라 저희가족들을 실어 나르는 봉사정신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하시고 무척 달변에 박식한 분이었습니다.

꽃님은 꽃잎처럼 사뿐하게 수영 솜씨를 발휘하고 오승국씨 기타연주로 느릿느릿 수련회 품격을 한층 돋은 뒤 별이 총총 빛나는 밤길에 돌아가신 멋쟁이셨습니다.

김은수 목사님 내외분은 참으로 소박한 미소로 저희를 반겨주시고 모든 것을 열어 보여주고 자연 속에서 주님을 저절로 만나게 도와주셨습니다. 모래님과 같이 오신 노 목사님 내외분과 성미 성우도 같이 지내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은 인연으로 사귐이 있었던 분들처럼 여겨졌습니다.

덕동계곡 물도 좋고 공기도 좋았지만 박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느릿느릿 가족들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씨가 넘치는 아름다운 수련회였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정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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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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