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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내 앞에,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방학 중 대학생 구청 아르바이트 모집”

일은 비교적 쉽고 보수가 괜찮다는 구청 아르바이트. 그러나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기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경쟁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100명을 모집한다고 한다면 무려 700명이 몰려드는 셈.

대학교 지원서 넣을 때랑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학과에 경우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당시에 내 성적으로 그 과에 진학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요인 때문에 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불가피하게 여러 사람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듯 하다. 그렇듯 피 말리는 경쟁구도 속에서 운이란 것은 일종의 요행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구원하고 한 사람을 좌절시킨다.

이번 대학생 구청 아르바이트 경우에도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운이 일조를 해주었던 것인가. 나는 아르바이트에 '당첨'되었다. 엄마는 내가 아르바이트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몇 대 몇의 경쟁률이었더라 하는 말까지 덧붙이며 엄마 친구들께 자랑하셨다. 그리 대단한 행운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행운이 아닌가.

구청 아르바이트에 당첨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 더운 여름에 육체적으로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지만 아르바이트에 당첨된 기분만큼은 기묘하게도 담담했다.

아마도 힘들여 내가 성취한 성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벼운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구청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용돈 벌이 이외에 과연 어떤 것이 나에게 보람을 줄 수 있는가 하는 회의도 내 기분을 담담하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면화하게 한 것은 아무래도 경험자인 누나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누나는 구청 아르바이트에 당첨된 내게 자신이 일했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야 너 구청 아르바이트 당첨 되었다며?”

“어. 맞다. 누나도 구청 아르바이트 했었지? 어땠어?”

“나는 동네 동사무소로 배정 받았었는데. 너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만 아마 집에서 가까운 데로 배정 받을 걸.”

“그러면 거기 가서는 뭐 하는데?”

“글쎄다 특별히 기억은 안 나는데 별일 안 했던 것 같아. 문서 같은 거 쳐서 가져다가 주고. 여하튼 내가 한 일 중에 쉬운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걱정하지마 별다른 일은 없어.”

누나의 말과 더불어 요 며칠 사이에 동사무소를 방문했던 일을 기억해 보았을 때 동사무소에만 배정이 된다면 그렇게 쉬운 아르바이트는 없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유인 즉 동사무소 내에 흐르는 알 수 없는 여유가 그것이리라. 공익근무요원이 컴퓨터로 영화를 봐도 될 정도라면 철마다 오는 아르바이트생은 오죽할까 하는 냉소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렇듯 얕보고 있던 아르바이트라고는 해도 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내 근무지는 처음부터 동사무소의 여유와는 상관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로변에서 내가 맡게 된 첫 번째 임무

내가 처음 배정받은 곳은 주변인들에게 들어오던 구청도 아니었으며 동사무소도 아니었다. 그곳은 바로 도로변. 그 이유는 당시에 불던 버스체계 개편 바람 때문이었다. 이명박 시장의 버스체계 개편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시민의 불편을 감수(?)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개편일 약 사흘 전에 구청 아르바이트생은 도로변으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나는 구체적으로 달라진 버스 번호와 노선을 시민들이 물어 볼 경우에 알려주는 일, 버스 체계 개편에 관한 전단지를 돌리는 일, 부채를 나누어주는 일을 했다. 출근시간은 아침 여섯 시 반까지, 그리고 퇴근 시간은 점심시간 전인 열한 시 반이었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조건만 제외한다면 생각하기에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많은 측면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생 중에서 내 근무지는 집에서 겨우 수십 미터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셔서 저녁 때나 들어오시는 부모님들은 내가 하는 일을 보시고는 “세상에 그만한 아르바이트 없다”란 말을 연발하셨다. 내가 봐도 개인적으로 해본 아르바이트 중 가장 쉬운 일로 생각했다. 고3 말에 하던 갈비집 아르바이트와, 단추 공장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분명 쉬운 아르바이트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이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개편일 당일은 매우 곤혹스러웠던 날로 기억한다. 즉 매우 구체적인 지명을 대면서 찾아달라고 부탁하시는 시민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던 아르바이트생으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받았던 교육이란 것은 한 시간 동안 강당에 다같이 모여서 들었던 책자에 관한 설명이 다였던 것 같다. 단지 교통안내원을 위해서 마련된 큰 책자 하나를 받아서 현장에 투입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교통안내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명을 몰라 질책을 받았던 적도 많았다. 또한 그럴 때마다 지명을 잘 숙지하고 있으며 참견을 좋아하시는 버스이용객에게 망신을 당하기 일쑤였다.

아르바이트생을 담당하던 동사무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들은 진정 알아서 할 수밖엔 없었다. 내 경우엔 하루 날 잡고 주요 지명과 관련된 버스 번호를 외우는 등 공부를 해야 했다.

이렇듯 무지에 관련된 곤욕 말고도 더운 날씨에 대한 고통, 안 좋은 공기로 인한 고통, 이명박 시장에 대한 화풀이 등 일의 난이도는 한 스테이지를 점령하면 높아지는 게임처럼 하루하루 더 해만 갔다.

그러나 곤혹스러웠던 일주일은 결국 지나갔다. 생각보다 감내할 게 많았던 아르바이트였기에 다른 아르바이트생 형, 누나들도 불만이 많은 듯 했지만 어쨌든 후련히 일은 끝났다. 그래서 한시름 놓았다며 좋아하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명박 시장의 요청에 의해서 우리는 일주일 연장근무를 배정 받은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도로변 항상 있던 자리에 교통안내요원 띠를 매고 다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버스노선이나 번호에 대해서 더 이상 물어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교통안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일주일이나 연장하게 되다니 나는 매우 허탈한 감을 느꼈다.

진정 다음 일주일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안내요원 띠만 매고 버스 정류장을 배회하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람없이 시간 보내기 식으로 일주일은 흘러갔다. 그 일주일은 사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편했지만 시민들의 냉소적인 눈초리를 접하게돼 마음은 불편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버스노선 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서 아주 남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절친한 대학 친구 K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역사적인(?) 일에 참여했으니 영광스러운 줄 알어"라고 했다.

사실 이미 지나간 논쟁거리가 되어버리긴 했어도 아직도 말이 많은 버스노선 체계의 문제점과 모순을 가장 가까이 확인한 사람 중 한 사람은 교통안내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내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문제점을 기술하고 싶다.

이명박 시장의 서울시 버스교통체계의 문제점 중 첫 번째는 준비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달라질 버스체계에 적응할 여유를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도 큰 혼란을 야기했다. 또한 그러한 혼란을,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맡겨 해결하려고 한 발상도 책임 떠넘기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달라진 버스체계가 노인들을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버스를 이용하지만 주요 이용객 중에는 노인들이 꽤 많다. 그 이유는 다리가 불편하신 노인들이 많이 걸어야 하고 번거롭게 갈아타야 하는 지하철보다는 접근성이 좋은 버스를 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시장이 버스체계개편의 취지로 내세운 것은 궁극적으로 버스를 갈아타기 쉽게 함으로서 이동성과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노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교통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스체계개편에 대해서 가장 많은 불만을 토로한 연령층도 사실 노인층이었다.

교통안내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던 나는 내게 화풀이를 하려고 오는 시민들이 있으면 일목요연하게 맞장구를 쳐주며 유쾌한 말상대가 돼 주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맡게 된 임무를 통해서 얻게 된 또 다른 것은 유연한 처세술이 아니었나 싶다.

골목길에서 내가 두 번째로 맡게 된 임무

구청 아르바이트에 경우 그 기간은 한 달이다. 그 중 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본의 아니게 도로변에서 보냈던 나는, 두 번째 임무는 제발 여유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동사무소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바람과는 다르게 내 근무지는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후보자들 가운데 집이 동네 동사무소에서 가장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사무소가 아닌 구청에 소속되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구청 아르바이트는 구청에 소속된 일과 동사무소에서 소속되어 하는 일, 구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하는 일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단지 집에서 동사무소보단 조금 먼 구청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배정된 부서로 가게 되었다. 내가 배정된 부서는 교통안내과였다. 이름만 듣고서는 전에 했던 악명 높은 교통안내를 다시 하게 될까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다른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맡게 된 일은 주차장 검사.

주차장 검사란 건물 준공 시에 구청에서 허가 받았던 주차장을 용도에 맡게 잘 사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현재 서울시 경우에는 집집마다 주차장이 있다고 서류상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 허가받은 주차장을 사용하지 않고 도로변으로 차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이서 주차난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허가 받은 자기 집 주차장이 아닌 도로변이나 골목길로 차들이 나와 있으면 차들이 밀리고 도로가 좁아지는 등 교통난과 주차난이 심화되기 때문에 구청에서는 주차장을 검사한다고 한다.

주차장 검사를 하기 위해서 구청에서는 우선 임의로 팀을 짜도록 지시하고는 디지털 카메라 한 대와 구청에 등록된 주차장이 있는 번지가 표시된 지도, A3용지, 그리고 필기구를 지급하였다. 즉 우리가 하는 일은 지도를 통해서 길을 찾고, A3 용지 위에 주소를 크게 써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일은 처음에 어렵다기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졌다.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경험하는 것이고 구청 행정에 미흡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단 생각에서 보람을 느꼈다. 보람도 있고 흥미로운 일이었기에 우리 조는 열심히 일했고 그 경과는 순조로운 듯 했다.

그런데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첫째 짓궂은 여름 날씨였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종이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기 힘들게 할만큼 비가 많이 왔다. 한 절반쯤 했을 때는 살인을 부를 것 같은 불볕더위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일의 특성상 골목을 발로 누려야 했기 때문에 날씨는 일의 능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일을 방해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일이 법에 관련된 일이다 보니 주차장이 원래 용도와 변경되었을 때는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법 위반하는 광경을 적발하려 할 때마다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집주인의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어떤 아주머니의 경우는 위반 사항을 찍으려 하니 지금 당장 현장을 감쪽같이 치우겠으니 사진을 나중에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아저씨는 어디서 나왔냐면서 약간은 싸늘한 분위기를 흘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어떤 아주머니는 왜 다른 집은 단속하지 않고 자기 집만 와서 이러고 있느냐며 무려 30분 동안이나 우리에게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한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꿋꿋이 하루 평균 40건 분량의 일을 해치웠다. 그렇게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까닭은 같은 조원이었던 누나들이 노련하게 일을 잘 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청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얻은 첫 번째 수확은 일을 열심히 하고 똑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네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청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항상 스치듯이 목격해왔던 행정 당국과 시민들 사이의 대립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한 가지 경험이 될 듯싶다. 항상 행정당국에 대해서 무능함만을 부르짖고 탓하던 시민의 입장에서, 이번에는 행정당국의 입장에 한번 서게 되었으니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도로변에서 바뀐 교통체계에 대해서 큰 문구 하나 안내판 하나 없다고 행정이 졸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차장을 단속하는데 차가 들어오게 집 앞 가로수나 먼저 없애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일주일 후에 바로 안내판을 설치할 것이니 시민들에게 설명해 주라고 주문하는 공무원들의 입장, 가로수를 철거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공무원들의 입장 모두를 보게 된 것은 저마다 보는 것과 원하는 것이 상대적임을 깨닫게 해주는 경우였다.

즉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느낀 점은 행정당국은 보다 세밀한 행정을 위해서 유연하고 시민들의 말을 좀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 시민들은 자신이 억울한 점에 대해서 누가 해주길 바라고 있기 보단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시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돈 버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꼈다. 부모님들에게 손을 벌리고 놀이로 탕진했던 많은 돈들이 아깝게 느껴지면서 아직도 치기 어린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엔 없다. 도로변과 골목길을 누비면서 번 돈을 이번에는 쉽게 날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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