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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사랑의 위탁모>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에 까맣고 큰 눈을 가진 아기의 모습이 지나간다. 그 뒤에 '이뻐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을 하며 아이를 안고 있는 미녀 연예인이 환하게 웃는다. 이 장면은 '사랑의 위탁모'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기들은 백이면 백 보통 아이보다 훨씬 귀여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아무래도 위탁이나 입양에는 뛰어난 외모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경우 유리한 외모를 갖고 있는 아이보다 오히려 위탁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출연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 입양 기피 대상이 되는 아이들을 방송으로 보여주는 것이 입양을 권장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더 맞는 것 같다.

지금껏 출현한 이들은 전도연, 엄정화, 김민, 한은정 등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젊은 인기 연예인들이다. 모두 미혼으로 직접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처음 이들에게 위탁을 맡길 때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위탁모의 자격을 심사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위탁모의 자격은 아주 까다롭다. 희망을 한다고 해도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또한 특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위탁모가 되는 것이다.

우선 위탁 가정은 신청자 및 가족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하며 신청 당시 위탁모의 연령이 만 25세 이상 55세 이하로 신청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위탁 부모는 중졸 이상의 학력으로 아동양육에 경험이 있어야 하며, 미취학 연령의 자녀는 없어야 한다.

또한 교육을 받거나 아이의 건강 체크가 용이하게 위탁가정은 입양시설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내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격요건이 맞는 신청자가 신청서를 관련 서류와 함께 입양시설에 제출하면 면담을 거쳐 '아동양육과' 직원이 위탁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심사하게 된다.

환경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위탁모는 입양기관에서 실시하는 4시간 교육을 필수 이수해야 하며, 필요시에는 양육 중에도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런 엄격한 조건으로 보면 지금까지 출연했던 여자연예인들 중 위탁모가 될 자격을 갖춘 연예인은 단 한사람도 없다.

시청자들은 마치 신화 속 에로스와 같은 아이를 안고, 환하게 미소 짓는 미녀를 보면서 기쁨을 얻는다. 또한 위탁된 아이가 입양이 되어 그녀들의 곁을 떠나갈 때, 그녀들은 참아 온 눈물을 떨어뜨린다. 이런 미녀 연예인들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비춰지면서 시청자들도 같이 애처로운 기분을 갖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흐뭇함과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상과도 같은 화면 뒤의 현실을 살펴본다면 이 감동적인 무대는 부조리한 장면으로 돌변한다. 화면 속 얼짱 아기의 귀여운 몸짓에 현재 시설 속의 아이들이나 입양도 잘 되지 않는 장애 아이들의 참담한 모습은 더욱더 음지 속으로 가려지게 된다. 환하게 웃는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의 미모로 위탁모로서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실수는 그저 애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는 또 다른 학대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을 미화시킨 프로그램을 방송함으로서 시청자들은 위탁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다. 이렇게 됨에 따라 정작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위탁의 현실은 점점 타자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위탁?

사람의 일생 중에서 어린 시절은 그 사람에게 전체의 인격을 결정하는 시기이다.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이때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며 이것의 충족에 따라 성격 형성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입양기관에서도 위탁모에 대한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육아의 경험이 없는 연예인들에게 위탁을 맡긴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스스로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프로그램에 출연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아이들은 그저 신체적인 조건에 따라 방송에 맞기에 일방적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자격이 부족한 위탁모에게 당하는 불이익은 덮어두더라도, 그들이 입양이 된 뒤의 문제도 심각하다. 위탁이라는 것은 입양이 되기 전 일년 미만의 기간동안 임시로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탁 후 입양이 되고나서 아이들은 새로운 가정에서 새 삶을 꾸려 나가며 성장을 하게 된다. 그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전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에게 일정기간 입양 전 위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우리나라의 입양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사회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곱지만은 않다. 이런 세태 속에서 한 아기가 위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는 것은 그 아이의 인격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성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를 버린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강한 비난이 쏟아지며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줄 것을 모성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다.

'사랑의 위탁모' 란 프로그램은 이런 이데올로기 형성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아이를 안고 기르며 환하게 미소 짓은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과는 다른 단지 이미지로서 시청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해'란 생각을 주입시킨다.

현실에는 엄마보다 더욱 큰 애정을 보이는 아빠도 많이 있다. 그 중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장대훈씨(62)의 아기사랑은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내에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내가 위탁모로 활동하면서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아기의 모습을 손수 비디오로 찍어서 매번 간직하고 있으며, 그가 살고 있는 양천구의 홍보비디오도 편집하여 아기가 떠나는 날 선물로 준다고 한다. 또한 아이를 데리고 홀트를 방문할 때면 그날 영업까지 포기하는 부정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제외한 채 여성 연예인만을 출현시키는 '사랑의 위탁모'프로그램은 이 사회의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는 훌륭한 편부모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줄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입양의 인식변화를 위하여

'사랑이 위탁모'는 같은 시간대의 연예인들이 의미도 없는 게임을 하면서 하급 웃음을 제공하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 비한다면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작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한사회복지회의 강영림 부장에 따르면 "가시적인 성과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위탁과 입양 상담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으며, 1일 상담건수가 일상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많아졌고, 새 가정으로 입양된 아이도 작년과 비교했을 때 5배 이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재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시청자들에게 '먹히는' 화면 만들기로 급급하기보다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선도자로서 제 역할을 하는 '사랑의 위탁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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