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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게미 조림인가 징게미탕인가 모르겠다. 조금은 물 양을 줄였어야 했다. 호박에서 물이 빠져 나오니 거의 없는 듯 물을 부어야 한다. 민물새우 중 큰 것이다.
징게미 조림인가 징게미탕인가 모르겠다. 조금은 물 양을 줄였어야 했다. 호박에서 물이 빠져 나오니 거의 없는 듯 물을 부어야 한다. 민물새우 중 큰 것이다. ⓒ 김규환
휴가 첫날이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고향으로 출발했다. 아내와 해강이 솔강이, 아이들의 고모까지 우리 작은 차에 타니 차가 꽉 찼다. 차가 무겁다고 한다. 광주 인근에 도착해 전화를 했더니 냇가로 바로 오란다. 냇가 다리 밑에 평상 두 개를 갖다 놓고 물놀이를 했다. 물에 발을 담그고 수박 한통을 잘라 먹었다.

오랜만에 내려온 큰형 딸 미리와 누나 아들 광민, 셋째형 아이들 한글이 세종이 그리고 해강이와 솔강이까지 아이 여섯에 동생과 아내, 형 내외, 선후배 각 한명씩 열두 명이 위에 텐트를 쳐 놓고 밤엔 여자들과 아이들만 집으로 돌아가고 남자들은 밖에서 자기로 했다.

수박을 먹고 나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마냥 신나 있다. 어른들은 무얼 먹을까 각자 고민한다. 올해도 흑염소를 잡아야 한다는 파와 그냥 물고기나 잡아 어죽으로 끝내자는 파, 삼계탕과 삼겹살로 때우자는 주장이 나온다.

다리 아래 평상에서 온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수박을 잘라 먹고 있다.
다리 아래 평상에서 온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수박을 잘라 먹고 있다. ⓒ 김규환
하지만 결국 모든 걸 먹기로 했다. 모든 것이란 오이, 호박, 가지 나물에 된장국을 기본으로 한다. 물고기는 잡기도 힘들거니와 잡아도 아직 맛이 나지 않을 때니 다슬기를 잡아 끓여 먹자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고 3박 4일 동안 닭, 돼지, 홍어와 삶은 감자, 감자전을 모두 동원한들 흑염소 한 마리 없이는 어차피 그 많은 수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흑염소 한 마리를 잡기로 결정한 건 아니다. 부침개를 먹고 닭을 삶아도 허전함은 여전했다. 매끼 새로운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또한 수고를 해야 하는 점과 동네에 지나가는 어른들 술 한 잔 대접하려면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는 흑염소 탕이 제격이라는 데 동의하고 몇몇이 어울려 잡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주로 음식을 해야 하는 남자들 처지에선 그게 싸게 먹히는 것일 수도 있고 수월하게 이번 휴가를 마칠 수 있으니 세 집안이 각각 십만 원씩을 내고 나머지는 술값과 부식비로 하기로 했다. 모두들 흔쾌히 응했다.

징게미 한 양푼을 보면 허기가 가십니다.
징게미 한 양푼을 보면 허기가 가십니다. ⓒ 김규환
맨 먼저 마당에 풀어 둔 닭과 오골계 한 마리가 동네 아주머니 집에서 보내올 무렵 두 형님들이 나타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닭 요리나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우리 마을 용문이형이 비닐 봉지 하나를 툭 내민다.

살살 풀어 보니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찡거마리(찡거미라고도 하는데 징게미다. 민물새우. 새비 토하보다 10배쯤 큰 것으로 제법 씹히는 맛이 있다)다. 한 그릇이 넘어 보였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형님 어디서 잡았어요?”
“저수지에 천지야.”
“어떻게 잡았는데요?”
“수기(水器)를 넣어 놓고 하룻밤만 지나면 몇 그릇은 나오지.”
“얼마나 먹고 싶었다고…. 하여튼 고맙습니다.”

바다 새우와 다를 바 없는 민물새우 징게미, 찡거미, 찡거마리.
바다 새우와 다를 바 없는 민물새우 징게미, 찡거미, 찡거마리. ⓒ 김규환
일부러 나는 징게미 요리를 하는 데 빠져 있기로 했다. 아무리 내 고향이고 내 동네라 하지만 현지 사람들이 요리하는 방식과 현재 서울 사는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먼저 둥근 조선 호박 속을 파내서 푹푹 자르고 풋고추를 손으로 부셔 넣고 양재기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징게미를 물에 한두 번 씻어 모래만 빼고 툭 부었다. 그 위에 고춧가루와 조선 간장을 끼얹는다. 국물은 붓는 듯 마는 듯 맛만 보인다.

“야, 요즘 민물 생선은 조금 짭조름해야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까 간장 좀 넉넉히 부어라.”
“알았어.”

붉은 고춧가루를 넣어야 하는데 고춧가루가 질이 떨어지면 텁텁해진다. 그래도 징게미는 맛있다.
붉은 고춧가루를 넣어야 하는데 고춧가루가 질이 떨어지면 텁텁해진다. 그래도 징게미는 맛있다. ⓒ 김규환
양념을 하는 동안 더듬이를 살짝살짝 움직이며 살아 있던 몇 마리가 파다닥 뛰어 밖으로 나간다. 마저 집어 넣고 뚜껑을 덮었다. 처음엔 거무튀튀했던 징게미였다. 바다 새우가 조금은 반투명하며 누런 색인데 반해 검은색에 가깝다.

끓는 것을 보아 마늘과 양파도 곁들였다. “자갈자갈” “지글지글” “보글보글” 기분 좋게 졸여진다. 잠시 뒤 불은 내가 보기로 했다. 불을 조금 약하게 했다. 짤박하게 잘 졸여졌다.

그 거멓던 민물 새우 징게미는 온데간데 없다. 선명하게 붉어진 예쁘게 굽은 새우가 짜르르 깔려 있다. 중국산을 몇 번 사서 먹어 보았지만 흐리멍덩 변화가 없던 색감과는 달랐다. 눈으로 먼저 먹기 좋게 붉은 새우가 내 앞에 놓여 있다.

호박은 설컹설컹하지만 본디 맛은 사라져서 달콤함과 매콤함으로 변신했다. 어렸을 때 가재보다 즐겨 먹었던 징게미를 한 숟갈 푹 떠서 후후 불며 입에 넣고 씹으니 껍데기마저 아삭아삭 씹힌다.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차는 순간 “자, 한 잔 마셔!”라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주세요.”
“콸! 콸! 콸!”
“워매. 반 병이나 되구만….”
“나눠 먹으면 되지 그냐.”

애호박보다 약간 익어 가는 호박이 탕이나 조림에는 좋다. 한 술 떠서 먹으면 술이 절로 생각난다.
애호박보다 약간 익어 가는 호박이 탕이나 조림에는 좋다. 한 술 떠서 먹으면 술이 절로 생각난다. ⓒ 김규환
아직 입안엔 안주감으로 하기 위해 넘기지 않고 자근자근 부서진 징게미가 있다. 더듬이와 발도 아사삭 씹혀서 조금도 뱉어낼 필요가 없었다. 잔챙이 새비 토하(土蝦)보다 훨씬 질겅질겅 씹힌다.

“어~. 시원하다. 찬밥 없어요?”

매콤하고 시원하며 고소한 징게미 한 양재기를 앞에 두고 본격적인 휴가를 맞이했다. 옆에선 감자전을 부친다. 어느새 향우회 회원이 다섯 명으로 불어났다. 술잔이 오가고 세상살이를 잠깐 풀어 다시 묶고 폐교가 된 초등학교 처리 건으로 서로 의견이 오갔다.

정말이지 20여년 만에 먹어본 고향의 맛, 징게미는 예전 그 맛을 잃지 않았다. 천렵할 때나 보막이, 산 다랭이 논에 일을 갈 때, 나무하러 갈 때도 빠지지 않았던 징게미를 맛 본 이번 휴가의 서막은 그렇게 맛나게 시작되었다. 징그럽게 그리운 그 맛에 빠져 보니 잠시 뒤 난도질을 하여 맛나게 끓인 백숙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우린 휴가를 마지막까지 무탈하게 지내기 위해 주변에 기념 돌탑을 쌓아 나갔다. 그날따라 소주 맛이 깔끔했고 술에 취하지 않았다.

돌탑 쌓기 시작. 과연 돌탑은 완성될 것인가? 싸움은 없이 끝날 것인가?
돌탑 쌓기 시작. 과연 돌탑은 완성될 것인가? 싸움은 없이 끝날 것인가?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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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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