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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2004 미국 대선은 양극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내 블루(blue)와 레드(red)의 대립은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치는 물론 지역, 인종, 경제, 문화,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묘하게도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다. 세계화의 엔진이자 진원지인 미국이야말로 세계화의 영향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는 2004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사회의 양극화된 이면을 현장취재한다. 블루와 레드는 미국대선 개표때 주별로 민주당이 이긴 지역은 블루, 공화당이 이긴 지역은 레드로 표현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 기자 주

▲ 미주리주 Edgar Springs와 Steel Ville

"젊은이들이여, 서부로 가라."

1850년대 <뉴욕 트리뷴>의 발행인인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1851년 인디애나 주에 있는 신문 <테레 오트 익스프레스(Terre Haute Express)>의 존 B. L. 솔(John B. L. Soule)이 사설에 먼저 썼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릴리의 말에 영감을 자극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서부로, 서부로 가 뿌리를 내렸다.

열정 있는 1%와 먹고 살 곳 찾아나선 99%의 사람들

동서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당시 서부는 미시시피 강의 서쪽이었다. 지금의 중부가 포함된다.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세인트 루이스(St. Louis)가 서쪽으로 가는 관문(gateway to the west)으로 불렸다. 세인트 루이스는 한 도시지만 도시의 동쪽은 일리노이, 서쪽은 미주리 주에 속한다. 당시에는 미주리부터 캘리포니아 주에 이르는 지금 미국의 3분의 2가 서부로 분류됐다.

지금도 오하이오 주나 일리노이 주는 중서부(Midwest)에 포함된다. 분명 미국의 지도를 보면 중간에서 훨씬 오른쪽으로 치우쳤는데 중동부라고 하지 않고 중서부라고 부른다. 중서부에는 이밖에 인디애나, 미시간, 위스콘신,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캔자스, 네브라스카 주가 들어간다.

미국은 '여기서 하다 잘 안 되면 저기 가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민자가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의 출발이 그랬다. 광활한 땅덩어리가 하나의 나라로 형성됐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쭉 그랬다. 과거와의 질긴 인연을 끊고 독립된 개인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으니 실패가 두렵지 않다.

미국을 대표하는 프론티어 정신이라는 것도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달려가려는 열정이 있는 1%의 사람과 여기서는 살기 어려우니까 멀리 다른 데로 가보자는 99%의 사람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릴리가 서부로 가라고 외친지 150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지금도 서쪽으로 가고 있다. 그것은 인구의 중심이동을 보면 안다.

1년에 8km씩 서부로 이동한 미국 인구의 중심

▲ 미국 인구 중심의 이동 경로(1790-2000)
ⓒ 미 인구통계국
지리상의 중심에 대한 논란과는 달리 인구의 중심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미국 인구통계국은 10년에 한번씩 인구 센서스 결과를 바탕으로 '인구의 중심'을 발표한다.

인구의 중심이라는 개념은 가장 최근 조사인 2000년 센서스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인 2억8142만1906명의 몸무게가 똑같다고 가정한 뒤 인구의 분포를 조사해 어느 쪽으로도 무게가 기울지 않는 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2000년 센서스에 따르면 위도 37.696987 경도 91.809567이 인구의 중심이다. 이 지점의 동서남북 어디로도 똑같은 수의 인구가 산다는 뜻이다. 만약 이 지점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미국을 들어올릴 수만 있다면 미국은 손가락 위에서 가만 있어야 한다. 쓰러지거나 휘청대면 중심이 아니다.

이 지점은 미주리주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 에드가 스프링스(Edgar Springs)의 동네 어귀에 있다. 미 본토 48개 주 지리상의 중심 캔자스주 레바논과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 한국에서 보면 캔자스나 미주리나 다 거기가 거기지만 실제 거리 차이를 따져보면 800km나 된다. 레바논에서 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7시간을 가야 에드가 스프링스가 나온다. 다르게 말하면 미국이 아직도 동서로 나눠볼 때 동쪽에 사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조사된 인구의 중심은 1790년 매릴랜드주 체스터타운(Chestertown)이었다. 체스터타운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보다도 더 동쪽에 있다. 그 이후 210년 동안 쉬지 않고 남서쪽으로 이동한 끝에 에드가 스프링스에 이르렀는데, 이동 거리는 모두 1691km다. 자동차로 달리면 16시간 남짓 걸릴 거리다. 그 거리를 210년 걸려서 왔으니 1년에 8km 가는 차를 타고 온 것과 마찬가지다. 그처럼 느린 차를 타고 있다고 상상하면 끔찍하지만 그 많은 인구를 태우고 갈 수 있는 차란 없다.

어쨌든 지리상의 중심보다는 인구의 중심이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지리상의 중심은 한번 국경이 정해지면 그걸로 끝인데 인구의 중심은 3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안한 조화를 이뤄서 만들어는 개념이 아닌가.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 확대해서 본 이동경로
ⓒ 미 인구통계국
캔자스에서 미주리주로 들어와서는 오르락 내리락 지형의 변화가 심하다. 오자크(Ozark Plateau)라는 고원 지대를 만난 것이다. 미 대륙은 서부의 로키와 동부의 애팔래치언 산맥이 남북으로 두 줄기의 골격을 이루고 있어 그 사이는 그냥 평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그 안에서도 지형의 변화가 제법 있다. 그 원동력이 미주리·아칸소·오클라호마·캔자스·텍사스주 등에 걸쳐 있는 오자크다.

높지는 않지만 빗물이나 지하수가 파먹은 석회암의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탐험한 동굴도 많고 무엇보다 찬 물이 곳곳에서 솟아올라 강을 시작한다. 그것을 스프링(Spring 용천수)이라고 부르는데 두 눈으로 강의 발원지를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순도 100%의 투명하고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여기저기 산재한 스프링들을 통해 시간 당 몇 억 톤씩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커런트(Current River)와 잭스 포크(Jacks Fork River) 강은 미국에서 가장 청정한 수역으로 꼽힌다.

언젠가 오자크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산길을 10시간 동안 걸어서 미주리 주에서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준비해온 물이 떨어져 일행 중 한 사람이 탈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지만 잔인하게도 중간에 물이 전혀 없었다. 한국의 약수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밟은 정상에 해발고도 표시가 돼 있었는데 1772.68 피트였다.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미터로 환산하면 531 미터. 10시간을 걸어서 관악산(632 미터)보다도 100미터 낮은 곳에 도착한 셈이다.

더군다나 출발지점의 고도가 500 피트였으니 올라온 절대 고도는 고작 1272 피트 400여 미터 밖에 안된다. 산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이라고 해야 마땅할 높이. 그 때의 허탈감이란. 그런데 등산하는 동안 지리산의 능선을 종주하는 것 같은 장대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곳이 고원지대이기 때문이다. 조그만 고도의 차이로도 산세가 지평선 끝까지 굽이쳐가는 것을 발 밑으로 볼 수 있다.

버려진 집들... 쇠락해가는 미국 인구의 중심

▲ 성조기와 POW-MIA 깃발이 휘날리는 미 인구의 중심
ⓒ 홍은택
에드가 스프링스는 오자크 고원 지대의 북쪽에 있다. 150년이 넘은 오래된 마을이다. 이 근처에 풍부한 스프링이 아니라 에드가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스프링은 차가운 물이 펑펑 솟는 용천수보다 더 유혹적인 물을 생산했다.

64년 평생을 이 동네에서 보낸 진 블레이크씨는 "남북 전쟁 전 이곳에 정착한 에드가가 술을 잘 빚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고 해서 동네 이름이 지어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술도가도 없고 하나밖에 없는 술집도 마을이 정한 법에 따라 교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점점 더 기독교화하고 있는 미국의 한 단면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가면 한 동네를 이룰 수 있는 필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쇠락해가는 다른 미국 중서부 농촌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집들이 버려져 있다. 여러 기능들을 유지할 수 없다. 시청도 평소에는 닫혀있다.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라고 불리는 중심가에는 우체국과 슈퍼마켓, 슈퍼마켓 주인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 교회, 그리고 미용실이 있다. 카페는 남자들, 미용실은 여자들이 일종의 마실 가는 곳이다. 1층 이상의 건물은 없다. 그게 전부다.

▲ 인구의 중심 표석
ⓒ 홍은택
190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 치고는 이만큼 유지되는 것도 대견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184명이 백인이니까 인종 분포는 인구의 중심답지 않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흑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인구의 중심이라는 표지를 찾을 수 없어 우체국 직원에게 물었더니 온 길로 돌아가서 동네에 들어오기 전에 우회전하지 말고 좌회전하면 좌회전하자마자에 있다고 했다. 여기 왜 왔느냐고 박대하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 할 심드렁한 어투였다.

중심 표석은 공동묘지 옆에 있었다. 성조기와 POW-MIA 기가 비 묻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POW와 MIA기는 포로로 잡힌 군인과 임무 중 실종된 군인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깃발에는 "We are not forgetting"(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조국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건 전사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주는구나 하면서도 인구의 중심을 상징하기에는 조금은 전투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표석의 좌우에는 두 개의 돌벤치가 놓여있고 앞에는 시든 꽃들을 놔둘 바에는 안놔두는 게 좋을 법한 화분들이 놓여 있다. 표석은 땅에 콘크리트 기둥을 박고 기둥 안에 원형의 놋쇠를 박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직경 20cm 길이의 놋쇠 판에는 'CENTER OF POPULATION CENSUS 2000'이라고 새겨져 있다.

▲ 에드가 스프링스에 있는 인구의 중심 기념탑
ⓒ 홍은택
2001년 이 표석을 박을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올림픽 게임을 유치한 것처럼 성대한 의식이 거행됐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분위기가 어둡다. 블레이크씨는 이 표석이 온 뒤로 달라진 게 있느냐는 질문에 "여름에 몇몇 관광객들이 오는 것 외에는 마을에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은 그냥 센서스에 있는 사람들이 표석 하나 심어놓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표석을 심은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것의 경제적 효과나 가치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무신경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역사가 일천한 미국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일쑨데 여기 주민들은 왠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똥구멍에서 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인구의 중심이었던 미주리 주 스틸빌(Steelville)까지는 차로 한 시간 걸렸다. 에드가 스프링스에서 정확히 80km 북동쪽에 있다. 거꾸로 말해서 인구의 중심이 10년 만에 80km를 내려왔으니 시속이 아니라 연속 8km라는 말이 맞다.

스틸빌이라는 이름의 기원도 추측한 것과 달랐다. 과거 철강이 많이 나던 광산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철강(Steel)과 마을이라는 뜻의 빌(ville)이 결합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제임스 스틸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틸빌이라는 사람은 이 일대 40에이커의 땅을 정부로부터 사서 1835년 카운티 법원에 50달러를 받고 팔았다.

덕분에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50달러는 정말 껌값이었다. 2003년으로 환산하면 879달러(1백만원 상당)밖에 안 된다. 이것은 단순 물가 인상률만 계산한 것이다. 이 50달러를 복리로 169년간 은행에 집어넣었을 때의 계산은 달라진다. 만약 매년 이자율을 5%라고 하면 50달러는 19만529달러(2억4천만원 상당)가 된다. 그래도 헐값이다.

이 곳에 1400여 명이 거주하니 비교적 큰 마을이다. 인구 중심 표석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탐문한 끝에 시 공원 입구에 있는 표석을 찾아냈다. 형식과 주변 환경이 2000년 인구 중심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성조기 하나가 휘날리고, 돌 벤치가 아니라 나무 벤치가 표석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으며 표석에는 '1990 CENSUS CENTER OF POPULATION'이라고 적혀 있다. 공원에는 석양을 받으며 소프트볼 경기를 하는 여학생들과 육상 연습을 하는 학생들로 가득해서 모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스틸빌에 있는 1990년 인구의 중심 기념탑
ⓒ 홍은택
시청의 서기인 애밀리어 파인-룰로씨는 "우리는 미국의 중심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그런데 몇 년 전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고 섭섭했다"고 말했다. 시청 서기(city clerk)가 선출직이어서 그런지 파인-룰로씨의 말은 청산유수다.

"하지만 중심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내줄 수밖에."

중심을 계속 간직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을 다른 주민들도 공감하고 있을까.

주차장에서 픽업 트럭에 오르기 직전의 한 청년에게 "미국의 중심에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멈추지 않고 차에 오르면서 "우리는 그것을 미국의 똥구멍(asshole of America)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의 치열을 보니 윗니 하나가 빠져 있다. 필시 치과 보험에 가입하지 못할 만큼 못 사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냉소적으로 답할 리가 없다.

돌아오는 차에서 그의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불쾌하다기보다는 뭔가 정곡을 찌른 것과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인구의 중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인구 센서스를 해서 중심 표석을 박는 순간 이미 인구는 늘어나 있기 때문에 중심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상태다. 사실 처음부터 정확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구의 중심은 유동적인 개념이다. 중심은 생기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 전체와 경제의 움직임을 알기 위한 인위적인 지표일 뿐이다. 그런 움직임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가 미드웨스트의 농촌과 탄광지대다. 굳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중심을 따질 여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들에게 중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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