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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하오에 찾아온 귀한 손님, 두 요정
무더운 여름날 하오에 찾아온 귀한 손님, 두 요정 ⓒ 박도
갑자기 나타난 요정

전국이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일주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 산골 마을에도 숨이 가쁠 정도로 무더운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도시야 말하여 무엇 하리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말들을 보면 '불볕' '찜통' '가마솥' '한증막' 따위로 표현해서 더욱 이 더위를 짜증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옛 속담에 "오뉴월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고 한 바, 이런 무더위 때는 누가 찾아오는 것도 싫고 내가 남의 집 찾아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

매미가 제철인 양 한껏 목청을 가다듬는 하오, 집 어귀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산골마을에 웬 아이들의 소리일까? 하던 일을 멈추고 밖에 나가자 전 주인 이영식 김현일씨 부부가 두 따님을 데리고 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 이경문(9), 작은 아이가 이기민(7)으로 얼른 보기에는 쌍둥이 자매처럼 보였다.

마침 방학 중인데다가 창고에 둔 짐에서 뭘 찾을 것도 있고, 아이들도 자기들이 살던 집을 보고 싶어해서 데려 왔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네들이 살았던 정든 집 곳곳을 훑어보면서 자기들이 살던 때와는 달라진 곳에 갸웃거리다가 이내 마당의 꽃밭으로 갔다. 곧 지난날 놀았던 습성대로 마당 한쪽의 클로버 꽃을 따서 꽃시계를 만들어 팔에다 찼다.

이경문(왼쪽), 이기민 자매
이경문(왼쪽), 이기민 자매 ⓒ 박도
갑자기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옆집 노씨 아주머니도 아이들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이들을 반겨 맞았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람 사는 동네 같다고 좋아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니 '오뉴월의 손님'이라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온 요정처럼 예쁘고 귀여웠다.

일찍 결혼해서 자녀를 빨리 키워 일찌감치 며느리 사위를 본 친구들이 이즈음 손녀 손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얘기가 빈 말이 아닐 듯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부모에게 빨리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는 일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닐 게다.

어린 시절은 시골에서 자라야

사실 내가 사는 동네뿐 아니라, 산골 마을에는 아이들을 보기가 드물다. 집집마다 노인들만 한둘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내 집에 놀러온 이도 노인이요, 논밭에 일하는 이도 노인들뿐이다.

지난해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마을의 맹사성 고택에 갔을 때, 집을 지키는 종손은 당신이 예순 아홉인데도 동네에서 제일 젊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세 가구도 모두 여섯이 사는데 50대 이후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드물다 보니 어린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노씨 아주머니는 "마당 빨랫줄에 갓난애 기저귀 널린 걸 본 적이 한참 되었다"고 그 새 달라진 세태를 푸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옛 어른들이 "아이들이 있어야 웃을 일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 마을에 아이들이 없으니 웃을 일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내 집 마당의 잡초도 아이들이 뛰놀면 이렇게 무성히 자라지 못할 텐데, 올 들어 세 번이나 뽑아줘도 며칠만 지나면 풀밭이라 이즈음에는 내가 손들고 잡초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시골 인구, 특히 젊은이와 아이들이 격감하다보니 마을에는 활기가 없고 초등학교들이 문 닫는 곳이 해마다 속출하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시골 초등학교도 전교생이 20, 30년 전보다 3,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온갖 특별 교실이 다 생겨났다. 그래도 학생들이 해마다 줄어서 곧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이른 학교도 많다고 한다.

언니가 만드는 꽃 시계를 보면서 배우는 기민 양
언니가 만드는 꽃 시계를 보면서 배우는 기민 양 ⓒ 박도
생각이 깊은 교육학자의 말을 빌리면, 유년 소년 시절에는 아이들을 시골에서 자라게 하는 게 정서적으로나 인격 형성 면에서 훨씬 좋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말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이즈음은 너도나도 도시로, 학원으로 내몬다.

내 아이가 콩나물 시루와 같은 공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만 바라고 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처지는 아이들은 도시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이런 교육 환경 때문에 점차로 인성이 고약함을 지나쳐 이제는 살벌해져 가고 있다.

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뒷산에서 울리는 멧새 소리, 매미 소리, 들판에서 울리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자란다면 그 인성이 그처럼 살벌해질 수 있을까?

잘하는 정치란 뭘까? 도시에 사는 사람도, 바닷가에 사는 사람도, 산골 마을에 사는 사람도 손해 본다는 생각 없이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두어 시간 내 집에서 머물다가 두 자매가 아버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마을을 떠났다. 두 요정과 지내다가 보니 무더위도 깜빡 잊었다. 산골 마을은 다시 적막강산이었다.

다행히 뒷산 숲의 매미가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아직도 짝을 못 찾았는지, 목청을 돋워 적막함을 달래주고 있다. 나는 잠시 요정에 홀린, 아름다운 선녀의 사라진 여운을 간직하면서 이 글밭을 갈고 있다.

아버지가 채워준 클로버 꽃팔목 시계
아버지가 채워준 클로버 꽃팔목 시계 ⓒ 박도

옛 집을 찾은 이영식 김현일 가족
옛 집을 찾은 이영식 김현일 가족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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