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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요즘 도시마다 들어선 아파트의 놀이터에는, 그 곳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일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여유롭게 놀 시간조차 없이 '바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학기 중에는 물론 방학 기간에도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지친 아이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초등학생까지 학원이나 과외에 내몰린 상황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자유롭게 뛰어 놀면서 창의력을 왕성하게 발휘해야 할 초등학생들마저, 꽉 짜여진 '과외'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억누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시대가 달라진 탓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소화해야 할 분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변화의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산업화 시대에 성장했던 기성 세대들과는 그 인식의 틀이 분명 다르다.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정보의 습득은 이제 초등학교의 과제의 하나가 될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처럼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기성세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모든 분야를 다 잘 할 것을 요구하며 '만능'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각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도와 주는 것이 기성 세대의 역할은 아닐까?

최근 새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은 초등학교에 다시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언론들을 위시하여, 보수적인 인사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하여 이를 옹호하며 '반교육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경쟁 제일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교육계를 경쟁이 판치는 과거로 되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과연 경쟁만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이들 주장의 배경에는 정작 암기 능력만이 학습 능력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교 현장에서 경쟁 체제의 강화는 곧바로 각종 필기 고사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지금껏 이제 막 교육 현장에 뿌리 내리고 있는 체험 중심의 교육 과정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살아 있는 교육이란 각종 체험 활동을 위주로 한 것이며, 경쟁을 전제로 한 암기식 교육은 곧 공교육의 후퇴를 초래할 뿐이다. 어린 초등학생들마저 시험 점수로 줄 세우는 것은 이제 낡은 방식의 교육일 뿐이다.

교육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다. 적절한 지식의 습득과 함께,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교육이란 어느 시대이든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그 능력과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많이 외워서 정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학력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것은 자라면서 늘 누구에겐가 '관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는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서라도 과외를 시켜야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학원의 종류와 과외 과목에 이르기까지,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는 학교 공부보다 과외나 학원에 더 신경을 쓰는 부모를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대체로 부모들의 욕심에 의한 강권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는 것이 그리 즐거울 리가 없다.

물론 대학 진학이 일생을 좌우할 정도가 되어 버린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공부 부담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고 여기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간혹 언론에서 공부에 대한 부담으로 자살을 택한 학생들의 사례를 접하게 되면, 그것이 마치 내 탓이기나 한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인식과 올바른 삶의 방향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초등학교의 교육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이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인성을 형성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역시 주위 사람의 평가는 성적에 좌우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지금 아이들처럼 바쁘지는 않았다.

대체로 3∼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뛰어 놀던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호철 선생이 쓴 <살아있는 교실>이라는 책은 나에게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쓴 '학급운영 지침서'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생각이 바로 서도록 하는 것과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잃어 가는 감각을 살리고, 참된 삶을 가꾸어 주고, 아름답고도 올곧은 마음을 기르도록 도와 주는 공부'를 지향하며 실천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저자에게 배웠던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마치 나 자신이 초등학교 교실로 되돌아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양한 체험 활동의 실례를 제시하며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는 내용을 통해서, 열린 교실을 지향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저자의 따뜻한 가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체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교사의 마음가짐'을 설명한 '제1장 살아있는 교실 계획'부터 마지막의 '제11장 한 해 마무리'까지 1년 동안의 학급 운영의 진행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수업의 진행 방식 등 세세한 부분까지 교사로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친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이끌어 가도록 하는 학급 활동은 물론, 글쓰기 교육·미술 교육·음악과 연극 교육 등 무엇보다 그 다채로운 내용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실

이런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하여 이 책이 교육에 뜻을 두고 교사의 길에 막 접어든 초보 교사에게 매우 유익한 지침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울러 모든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호흡하는 교사로서의 생활을 통해서, 저자의 교육 철학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도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쉬는 시간 동안 하루에 한 명씩 꼭 손톱을 깎아 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생계에 바쁜 부모들 때문에 집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내용은 중·고등학교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교육 방식이라 여겨졌다. '제10장 문집과 산문'에서는 학급 문집이나 마을 신문을 만들면서, 자신이 스스로 할 일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흥미로운 모습이 눈에 잡힐 듯했다. 이밖에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을 이용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은 평소 가정에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참다운 교사란 학생들을 믿고 그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저자가 이러한 교사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단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은 교육의 현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책'을 통한 지식만이 공부라는 전통적인 인식은 이제 변화된 시대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 스스로가 다양한 소질을 발굴하도록 '꿈'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의 참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교사란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호철 선생을 통해서, 나는 진정한 교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기초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나에게도 초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아직도 시험 점수로 아이들의 능력을 재단하는 일부 기성 세대의 인식을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입시를 향한 '공부 기계'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교육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모든 학부모 각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도 이 책을 읽어 보도록 꼭 권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교실

이호철 지음, 보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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