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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리는 폭염입니다. 더위를 피해 뒷산 계곡 원두막에 숨어 웃통 벗어 던지고 시큼한 자두를 한 입 베어 뭅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충청권에 내렸던 폭설로 20여 시간 동안 경부고속도로에 고립되었던 그 폭설의 추억을 회상합니다. 더위를 먹었는지 그 폭설마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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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이었던가요? 친지가 경남 양산에 물류 창고를 준공한다기에 서울에 사는 몇몇 분들과 고속도로로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밤에 내린 눈이 길거리에 소담스럽게 쌓여 있었습니다. 하얗게 변한 나뭇가지들이 가로등불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승용차를 운전해 양산까지 가야했기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섰는데 밤 사이 내렸던 눈이 얼마 안 돼 교통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내려 가는 사이 간간이 눈발이 날리다가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천안을 지나면서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다가 청원 못 미쳐서는 급기야 정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풀리겠거니 하면서 기다리기를 서너 시간, 12시가 넘어서면서부터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듯 그칠 줄 모르고 들이붓는 눈발은 서 있는 차들을 모두 묻어버릴 듯 험악했습니다. 고속도로 옆의 소나무들이 가지에 쌓이는 눈을 이기지 못해 으지끈 뚝딱하면서 부러졌습니다. 바로 앞에서 그 굵은 나무가 부러지는 모습을 보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점심도 굶고 비좁은 차 속에서 몇 시간을 더 버티다 보니 어느새 눈발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그제사 한두 사람씩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펴며 운동을 합니다.

폭설이 잠시 잠잠해진 경부고속도로
폭설이 잠시 잠잠해진 경부고속도로 ⓒ 안동희
차 주위에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을 보니 오늘 내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첫번째는 당장의 생리적 현상 해결이 걱정이 됐습니다. 남자들이야 길거리에 두 손으로 양쪽 가리고 볼일을 본다지만 여자들이 문제였습니다.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차 앞문과 뒷문을 열어 칸막이를 만들고 그 사이의 눈을 다져 임시 변기를 만들어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해결을 하고 나니 몹시 허기가 지더군요.

취재 중인 방송국 헬기
취재 중인 방송국 헬기 ⓒ 안동희
두번째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섯 명의 먹거리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특공조를 만들어 주위의 가게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고속도로를 내려와 한참을 걸어 민가를 찾아 물어 보니 그 방향을 잘못 잡아 들어왔다고 하는 게 아닙니까. 발길을 돌리려는데 눈이 다시 거칠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 쌓였던 눈이 녹아 눈으로 들어와 쓰라린 눈을 훔치면서 다시 또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지나가는 차를 세워 사정 얘기를 하고 올라 타니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졸립기까지 했습니다.

차들이 지나다니면서 고랑이 파인 눈길이라 여간 위태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차의 체인이 빠진 것을 다시 끼는 것을 도와 한참을 달려 청주까지 갔습니다. 우리를 태워 주신 분들은 청주에서 가전제품 회사의 A/S센터 직원들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오래 걸리다 보니 지점에 전화를 해서 먹거리를 사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중간에 만나 빵이며 음료수를 전달받고 돈을 드리려 하니 한사코 거절하고 빨리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충청도 민심이구나 하면서 고마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늦게나마 그 분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자동차 연료를 사오는 운전기사
자동차 연료를 사오는 운전기사 ⓒ 안동희
다시 1시간 정도를 걸어 돌아와 근처 사람들과 함께 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서서히 어둠이 밀려 왔습니다. 이렇게 다시 차 안에서 꼬박 밤을 새워야 하나 아니면 차를 버리고 다시 걸어 내려가 시내로 나가 잠을 자야 하나 고민하면서 어느덧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트럭 기사분들이 길 옆에 눈을 치우고 눈 속에서 파낸 나무를 잘라 불을 피웠습니다. 그 위에 쓰레기통 같은 깡통에 물을 담아 라면을 끓였습니다. 라면을 끓이면서 적지만 같이 나눠 먹자며 근처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소주도 몇 병 사와서 따끈한 라면 국물에 종이컵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훈훈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깡통과 라면을 사온 트럭기사
깡통과 라면을 사온 트럭기사 ⓒ 안동희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지만, 별일을 다 겪는 그 와중에도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삼 사람들의 오고가는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밤 11시가 되어갈 무렵 드디어 길이 열리면서 앞차들이 한두 대씩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차가 자기 힘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면 사람들이 몰려 들어 함께 밀어서 탈출시켰습니다. 회덕 분기점쯤에 중앙 분리대를 철거하고 회차를 시켜 서울로 돌아오면서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는 저 많은 차들이 빨리 빠져 나갈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길이 열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트럭기사
길이 열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트럭기사 ⓒ 안동희
눈 속에 고립된 20여 시간 그 춥고 배고팠던 경험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의 폭염 속에서 다시 추운 겨울과 함박눈이 그리워지니 역시나 인간은 간사한 동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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