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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사멸은 존재의 소멸이다”

“환경은 보존하려 하면서 왜 언어는 보존하려 하지 않는가? 생물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매일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는 5천에서 6천 7백 개 정도의 언어가 있고, 이들 중 90%가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 언어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은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과 환경에 관련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반면 인종이나 민족이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깊이 의식하지 않는다. 판다나 얼룩올빼미가 처한 곤경에 관련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어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생태계에 뿌리내리고 사는 인간의 전유물인 언어가 사멸한다는 것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삶과 언어 속에 담긴 수천 년 간의 지식과 경험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들이 살았던 환경도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에는 이미 사라졌거나 현재도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수많은 소수 언어와 이것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의 가슴 아프면서도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한편 인류학자인 저자는 단지 사라지는 것에의 안타까움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생태계의 한 부분인 언어의 사멸을 통해 지역 생태계의 다양성이 파괴가 되는 과정을 다양한 자료로써 그려 보인다. 언어・문화・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집단이 행해온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수백 명 밖에 사용하지 않는 언어라 할지라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존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짚어주고 있다.”


상술한 세 개의 인용문은 책표지 뒷면에 실려 있다. 저자의 저작 목적을 밝히며, 독서 포인트도 제시하고 있어서 서슴없이 따왔다.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를 독자에게 넌지시 알려준 것이다.

요즘 우리 한국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부쩍 늘어났다. 첫째 이유로는 88올림픽 개최를 통해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데 있으며, 둘째로는 2002 한・일이 공동개최한 축구 올림픽이라는 월드컵 개최를 통해서도 세계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이들 두 가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동구권 유학생 숫자가 예상외로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구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여러 나라가 폐쇄정책에서 개방정책으로 나아간 까닭일 것이다.

필자는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한 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듣고 필자인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내용은 <카자흐스탄>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국민이 자기 모국어를 거의 쓰지 않아 실제로는 모국어를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여전히 러시아어를 쓴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인데 한 쪽에서는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실상 모국어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아직도 러시아의 속국인 셈이다. 그간 자기의 모국어를 쓰지 않아 퇴화한 것일까. 아니면 민족성이 부족해서일까.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언어에는 사상이 담겨 있다. 언어의 사멸은 바로 종족의 사멸로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파괴에까지 이어진다는 심각한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책이 바로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이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독서물인 것이다.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이 함께 지었고 김정화가 번역했다. 검정계통의 표지색・보통의 크기・391쪽의 분량・30여개의 사진과 도표 등이 책 외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표지를 넘기고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모두 여덟 장으로 짜여있다.

각 장은 저마다 여러 개의 하위항목을 두고 있으며, 장외의 장이라 할 수 있는 부록도 셋이나 구분해서 두고 있다. “도움 받은 책과 더 읽을거리”・“참고문헌”・“찾아보기” 등이다.

도움 받은 책과 더 읽을거리는 저자가 독자에게 베푸는 강력한 써비스 공간이다. 그것도 장마다 따로 설정해서 주석과 자료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독자 스스로가 지식이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다. 독자를 유쾌・통쾌・상쾌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참고문헌도 자랑할 만하다. 250여권의 원서를 목록화해서 무려 17쪽을 차지한다. 찾아보기도 두어 11쪽을 할애하고 있다. 정성스런 손길이 절로 느껴진다. 외래어표기가 많아 독서속도가 좀 떨어진다는 사실과 번역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성 몇 군데를 제외하면 별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세 번째 “잃어버린 언어, 잃어버린 세계”를 핵심 장으로 삼고 싶다. 이유는 표제의미와 가장 근접해서이다. 자신의 모국어를 잃고 자신이 살던 공간을 잃는 과정을 곧 '사라져가는 목소리들’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이에서는 언어가 소멸하면서 점차 해당 언어를 사용하던 지역도 소멸(다른 용도로 대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어가 적대적인 환경에 노출이 되었을 때 해체가 되어・나라가 붕괴가 되고 급기야는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이다.

실제 내용도 상당부분이 상통한다. 세 번째의 하위항목 몇 개를 실례로 들어본다. 언어의 ‘급진적인 사멸’요인에는 재앙과 대량학살이 있다.

재앙으로 언어가 사멸하는 때는 토착어 사용자(원주민)가 몰살하는 경우이다. 언어가 거의 손상이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멸한다. 자연재해에 의거한 환경변화로 언어가 급격히 사멸한 예로는, 인도네시아 군도의 숨바와 섬에서 1815년에 발생한 화산폭발을 들 수 있다. 결국 탐보란어 사용자가 모두 죽고 말았다. 언어의 흔적으로는 토머스 래플스 경이 수집한 짧은 단어장 뿐 이었다고 한다.

대량학살로 사멸한 예로는 야히족과 야히족 언어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백인 이주민에게 살육당하고 쫓겨났던 야히족이 있었다. 야히 인디언의 마지막 생존자로 여겨지는 이시가 야히족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였다. 사진도 제시해 독자에게 이해를 돕고 있다.

‘점진적인 사멸’은 죽어가는 언어가 여러 세대에 걸쳐 점차 쇠퇴해 감으로 말미암는 경우다. 이때 예전의 모든 언어기능과 목적을 위해 쓰이지 못하는 기간을 거치게 된다. 저자의 일행 중 한 사람이 파푸아뉴기니의 시골마을에서 전통적인 설화를 모르는 젊은 사람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던 경우다. 이제 전통적인 설화를 들려줄 만한 상황이 옛날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아서 아이는 그것을 듣지 못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지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가 옛날처럼 밤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요즈음 아이가 듣는 이야기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주요소・ 개념・문체상의 면면 등은 번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유실이 되고 말았다.

‘우월한 언어는 없다’에서는 영어를 오스트로네시아 언어와 대조하는 것을 실례로 들고 있다. 체르키어(출처가 의심스러운 감이 있음)에 추상적인 어휘가 없다는 사실을 체르키어 사용자의 인식능력 결함과 동일시했던 이가 예르베르센이다. 예르베르센과 이외의 사람도, 더 선진적이라고 여기는 언어에서 앞의 사실과 유사한 경우를 찾아보지 않았다.

영어에는 손과 팔을 함께 지칭하거나 다리와 발을 함께 지칭하는, 사지부위를 일컫는 추상용어가 없다. 반면 많은 오스트로네시아 언어에는 그와 같은 용어가 있다. ‘다리/발’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와와에’와 ‘손/팔’을 의미하는 ‘리마’등이 있다.

‘사라진 언어, 사라진 지식’은 언어가 사라지면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지식도 함께 사라짐을 말한다. 언어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학이라는 학문영역에만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과학적 지식과 진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팔라우 토바섬에는 몇 가지 전통적인 낚싯바늘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있다. 메치・파훔・라마티호 등이 있다. 하와이 주요어장에는 성장주기별 이름이 따로 존재하는 어류도 있다. 숭어・바다가랭이・작은다랑어・쥐돔 등이다. 만일 언어가 사라지면 이들 말에 따르는 지식도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언어는 복잡한 생태학의 일부에 해당하는 셈이다. 결국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언어를 지원해야 한다. 세계의 토착 언어에는 대개 기록이 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과학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언어에 관련한 숱한 지식이 담겨 있다. 상술한 내용은 빙산의 일각(氷山之一角)에 해당할 뿐이다. 특히 <사라져 가는 목소라들>은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천연자원으로서의 언어・언어보존전략・언어를 위험에 빠뜨리는 변화 등을 포함한다. 한마디로 지식의 보고이다. 각자의 지식주머니에 듬뿍 담아 가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문득 과거 암울했던 우리 근대사에서의 치부가 떠오른다. 거론하고 싶지 않은 묵은 이야기를 말이다. 일제는 우리에게 세계 언어사에서 놓고 봐도 뒤지지 않을, 우수한 우리의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가혹한 행위였는지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언어말살은 우리민족의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음을. 물론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 더 명확히 인식시켜 줄 것이리라 믿는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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