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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미국 뉴저지 허드슨 강변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발생했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권총 결투가 있었던 것.

결투장에 선 두 사나이는 2백년 전 복장을 입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리본으로 묶은 모습으로 등장해 상대에게 권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한 쪽이 먼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발사된 권총은 연기를 뿜었으나 실제 탄환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고 결투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투'는 강가에 빽빽하게 모여든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박수세례를 받았다. 이들이 연출한 결투는 2백년 동안 묵혀진 두 집안 조상들 간의 원수됨을 풀고자 마련한 일종의 '살풀이'였다.

도대체 이들 두 가문의 조상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2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의 조상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2대 부통령이던 애런 버.

애런 버는 부통령이 되기 전 1804년 초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그런데 현직 재무장관 해밀턴이 신문에 버를 가리켜 "믿을 수 없는 사람" 이라고 비난했고 버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버는 자신을 비난한 해밀턴에게 해명을 요구했고 해밀턴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버는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같은 해 7월 11일 버와 해밀턴은 결투장에서 대면했다. 결국 해밀턴은 이 결투에서 버가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고 뉴욕으로 후송되었으나 사흘 뒤 사망했다.

이후 애런 버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곧 뉴욕과 뉴저지에서 살인죄로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은 유야무야 열리지 않았고 무사히 부통령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2백년이 지났다. 2백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두 가문의 후손들은 허드슨 강변 해밀턴 공원에서 조상들을 기리는 추모 동판 제막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에 앞서 용서와 화해를 다짐하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60여 명의 해밀턴 후손들과 40여 명의 버 후손들을 포함 약 1천여 명의 구경꾼들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이 날 결투 재연의 주인공들은 해밀턴의 5대 손인 더글러스 해밀턴과 버의 사촌의 후손인 안토니오 버.

이들은 2백년 전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뉴욕 쪽에서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양쪽 강둑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54구경 칼리버 권총을 들고 결투에 나섰고, 당시처럼 버가 쏜 총에 더글러스 해밀턴이 엉덩이에 총을 맞고 한 쪽 무릎을 꿇었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재연했다.

더글러스 해밀턴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조는 죽기 전에 이미 버를 용서했다"며 "내가 그 뜻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자동차 딜러십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안토니오 버를 가리켜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게 될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재무장관이자 미 헌법 서명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던 해밀턴이 후에 부통령을 지낸 버와 왜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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