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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무안 회산백련지를 언젠가 아이들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넓디 넓은 10만 평 부지에 활짝 피어있는 백련이며 수련, 홍련들의 화려하고 단아한 모습을 꼭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회산백련지 만큼은 못하지만 아기자기 예쁘게 피어있는 연꽃 방죽을 드디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연꽃방죽이 있었다. 세상에, 지금까지 10여 년을 사는 동안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니….
화순을 지나 능주면 방향 구도로를 따라 10여 분간 달리면 '백암리'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100여m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방죽이 나온다. 방죽이 있는지는 개굴개굴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로도 알 수 있다.
농로로 들어서니 농부들이 애써 가꾼 옥수수가 긴 수염을 늘어뜨리며 우리를 맞는다. 파란 풋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벌써 빨간 옷으로 갈아입은 성질 급한 녀석들도 보인다. 잘 자란 고구마 순과 참깨, 들깨도 보이고 진초록으로 곧게 자란 벼도 풍년을 예감케 한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초록빛 넓은 잎 사이로 진홍빛 꽃을 활짝 피운 홍련이 방긋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맞아준다. 방죽 한가운데는 오리 한 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꽥꽥’ 소리만 들린다. 아이는 처음 보는 많은 연꽃을 보고 마냥 신이 나서 즐거운 환성을 지른다.
"엄마, 이게 연꽃이야?"
"응, 심청이가 나온 그 연꽃이야!"
"그런데 심청이는 어디 있어?"
"응? 지금은 낮이라 봉오리 속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나온대."
잘 설명해 준답시고 심청이를 찾은 내가 잘못이지. 동화책 속의 심청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는 아들에게 얼렁뚱땅 둘러대는 대답을 해 주고 방죽 한 켠에 걸터앉았다. 넓은 방죽에 활짝 핀 연꽃의 자태가 보면 볼수록 우아하다.
"엄마, 물고기가 많이 있어, 물에 둥둥 떠 있어, 죽었나봐."
‘잉, 뭔소리?’ 확실히 아이들은 관찰력이 뛰어나다. 우리는 그저 활짝 핀 연꽃만을 보고 있는데, 아이는 연못 위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죽어 있는 물고기를 찾아냈다. 둘러보니 많은 물고기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아마도 옆에 있는 논에서 농약을 뿌리면서 연못 안으로 흘러 들어간 듯 했다. 6살 녀석에게 “벼가 잘 자라라고 농부아저씨가 약을 뿌렸는데, 물고기가 그 약을 먹고 아파서 죽었대”라고 설명해 주었다. 녀석은 이해 한 듯, 만 듯한 묘한 표정을 짓는다.
멀리가지 않고도 활짝 핀 연꽃과 갖가지 농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백암 방죽. 이곳 나들이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안겨줬다. 더위에 지친 요즘 백암 방죽 연꽃의 우아하고 단아함 속으로의 탈출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