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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 흐린 촉석루의 풍경
비가 내려 흐린 촉석루의 풍경 ⓒ 정명화
진주성에서 본 석류꽃
진주성에서 본 석류꽃 ⓒ 정명화
국어 교사의 이력이 있던 그녀는 문화재 해설사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우리는 어느 건축가가 설계한 정원이 멋지게 꾸며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는 저녁 무렵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건축한 지 30년은 되었다고 하였으나 개조를 해서 내부는 빌라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넓은 정원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정원에는 상추나 고추, 깻잎 등의 채소류부터 당귀꽃, 나팔꽃, 달맞이꽃, 원추리, 백합, 사랑초, 꽈리나무, 치자꽃, 도라지꽃, 로즈마리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무와 꽃이 있었다. 그리고 담장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참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언뜻 보면 숙근 안개초와 비슷한 당귀꽃
언뜻 보면 숙근 안개초와 비슷한 당귀꽃 ⓒ 정명화
원추리
원추리 ⓒ 정명화
능소화
능소화 ⓒ 정명화
생김새 만큼이나 향기로운 치자꽃
생김새 만큼이나 향기로운 치자꽃 ⓒ 정명화
도라지꽃
도라지꽃 ⓒ 정명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두 번째 날에는 지리산 쌍계사로 향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동백나무가 많아 반가웠고, 영미시에 자주 등장하는 울창한 삼나무를 보게 되자 자연에 대한 경외감 마저 느끼게 되었다.

비 내리는 소리에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는 소리가 고루 섞여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법당 안으로부터 향을 피우는 냄새가 스며나와 무더운 기운을 가시게 해주었으며, 희뿌연 물안개가 빚어내는 정취 또한 모든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쌍계사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쌍계사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 정명화
천천히 쌍계사를 둘러보고 근처의 연곡사라는 사찰을 마지막으로 우리 여행의 목적지는 다 둘러 보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백포도주를 마시며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에게는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성실한 남편과 착하고 바르게 자라준 아이들도 있어 외형적으로는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남편에게 "커튼 색이 어떤 게 좋을까?" 하고 물으면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는 일이야"하고 대답하고, 남편은 어떤 커튼을 달아 놓든 그것의 색감이 좋은지 관심도 없다고 한다. 아무리 예쁜 커튼을 달아 놓아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남편이라고 했다. 그저 정원에 난 잡초나 뽑고 노자나 읽는 남편이 무척 서운한 것 같았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매주 시댁을 방문한다는 일이었다. '장남이니 모시고 살아야 당연한데 이렇게 따로 살아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시부모님의 사고 기저에는 그런 의식이 깔려 있어 보름에 한 번 방문했다가는 그 노여움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장남과 그의 아내로 살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매주 휴일마다 어딘가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부부를 참 힘들게 했을 것 같다.

그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평범한 주부로 살기에 그녀는 너무나 리버럴한 것 같았다. 김윤아나 김동률의 노래를 즐겨 듣는 그녀에게서 나는 50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실감할 수 없었다. 어떤 사실에 대해 공감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좋아하는 게 비슷하고 그렇다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니까.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인연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멋진 친구를 만나게 된 점에서 올해 여름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녀가 그린 유화를 보는 일도 유쾌했고, 그녀가 만든 퀼트 작품들도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시집도 한 권 선물받는데 부담스러울 만큼의 호의로 나는 몸둘 바를 모를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내가 옷을 잘 입는 것은 가난한 자에 대한 폭력이다"라는 그녀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그녀를 보니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가 생각나기도 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는 거라고 하는데, 그녀가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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