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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교회에 갈 때는 한 손에 아내 손을, 다른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갑니다. 길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외치며 전도하는 건 제 스스로 거부감을 느끼는 터라 부부가 다정하게 손 잡고 교회 가는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제 나름대로의 소극적인 전도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게 창피하게 여겨져 성경을 가방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망언과 김선일씨의 죽음을 두고 "그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한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의 망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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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장 23-24절)는 성경말씀과는 정 반대로 서울시를 예물로 취급해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을 만드는 이명박 시장이 교회 장로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명박 시장이 공직자로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해방을 이야기 하는 기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 식구만 챙기는 이기적이고 사악한 집단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 이 땅의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입니다.

석원태 목사의 망언 역시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이명박 시장의 망언 못지 않은 상처를 입혔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께서도, 부활의 확신을 갖고 계셨던 예수께서도 죽음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같은 기도를 세번이나 하셨으며 어찌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장 44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나약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게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며 죽음을 피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독교 부활신앙의 대상이 되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인 모두에게 예수와 같은 기도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그런 결단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온 국민이 애도하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두고 "그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신학교 가운 입고 졸업한 사실이 부끄럽다"라는 말을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목사라는 사실과 그 말이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교 중에 나온 말이라는 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높고 낮음이 없다는 기독교지만 교회 내에서 목사와 장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신자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데다가 그들의 발언이 교회와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석원태 목사와 이명박 장로의 망언은 기독교인들을 모욕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명백한 잘못입니다. 기독교인들을 온 국민의 비웃음거리로 만든 이번 사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분노하고 규탄해야 합니다. 불교계의 항의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고 사과해야 하는 것도 기독교인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이명박 시장의 망언을 두고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임을 지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을 뿐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MBC 도올특강에 대해 기독교를 폄훼했다며 항의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마디 입장 표명도 없습니다. MBC 더러 "보편타당한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공적인 입장에 서서 국민을 선도하고 계몽하되 불편부당해야 하며 특히 종교적 신념에 대하여는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한 충고를 왜 이명박 시장에게는 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이명박 시장의 망언보다 더 큰 실망과 충격을 주었던 석원태 목사의 망언에 대해 교계 내에서 분노하는 목소리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것입니다. 성경을 들고 교회 가는 것이 부끄러워 가방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전도는커녕 저 스스로 이 땅 곳곳에 세워진 교회에 대한 신뢰를 접어야 할 판입니다. 하나님께 서울을 갖다 바치겠다는 이명박 장로나 김선일씨 죽음을 욕보인 석원태 목사도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런 망언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이 더 부끄럽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이름으로 저지른 이번 망언으로 인해 상처 받은 분들께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대신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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