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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튿날 점심 때쯤이었다. 에인의 기병들이 티그리스 강가에서 쉬고 있는데 벌판 저쪽에서 한 무리의 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안내선인이 재빨리 달려 나가서 그 무리를 살핀 후 소리쳤다.

"강 장수 같습니다!"

모두 우르르 일어났고 은 장수는 재빨리 깃발까지 꺼내 흔들어댔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곧 보폭을 줄인 후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틀림없는 강 장수였고 상당수의 기병들과 함께였다.

무슨 일로 강 장수가 저렇게 기병들까지 이끌고 오는 것인가? 에인은 궁금해서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벌판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에인은 보았다. 그 기병들 앞에서 아무도 태우지 않고 혼자 걸어오는 말, 마치 그 기병부대를 자기가 이끌고 오는 듯한 그 말은 그토록 궁금하던 천둥이었다.

"천동아!!"

에인이 달려갔다. 녀석은 자기 주인을 보고 다리를 쳐들거나 울거나 그런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인이 자기 목을 끌어안도록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얼른 몸을 옆으로 돌려 그 등에 오르라는 시늉만 보였다.

에인도 알아차리고 먼저 그 등에 뛰어올랐다. 그러자 천둥이는 오던 길로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제후는 천둥이가 에인을 태워 달아나는 것으로 알고 놀라서 허둥지둥 따라가며 소리쳤다.

"천둥아, 가면 안돼! 안돼!"

그때 강장수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들 해후에 방해하지 마시오!"

천둥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비호같았다. 녀석의 등이 오래간만인데다 하도 빨라 어질어질할 지경인데 녀석은 조금도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대신 그 등을 좀더 편편하게 펼쳐줄 뿐이었다. 에인은 두 팔로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가만히 엎드려 누웠다. 잠이 쏟아져왔다.

천둥이는 작은 미동도 줄이고 오직 달리기만 했다. 녀석은 주인의 단잠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비행요람이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에인은 눈을 떴다. 베히스툰, 그 바위산 앞이었다. 녀석은 잠자는 아기를 안은 엄마처럼 그를 태우고 조용조용 그 산 앞을 거닐고 있었다.

강 장수는 군사들에게 천막까지 치게 한 후 에인을 기다렸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노을도 아주 곱게 번져 강물까지 분홍색 비단처럼 하늘하늘 흐르고 있었다.

강 장수가 감회에 어려 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저만치서 천둥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속력껏 달리는지 옴 몸이 진홍색이 되었고 그 위에다 붉은 노을까지 푹 싸여 마치 빨갛고 큰 새가 허공을 날아오는 것 같았다. 강 장수는 빙그레 웃었다. 이른 아침마다 빨리 가자고 치근대던 녀석이 생각나 그 미소가 더 깊어지는데 다음 순간 그만 그의 입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녀석의 등에는 있어야 할 장군이 없었다.

"장, 장군이 안 계시다!"

강 장수가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책임선인이 얼른 그를 안심시켰다.

"장군은 녀석의 배에 안겨 오십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천둥이가 그들 앞에 멈추었고 그 순간 에인이도 배에서 몸을 부리며 바쁘게 물었다.

"자, 강 장수 이제 얘기 해보시오. 대체 천둥이는 어디서 만났소?"
"아니, 보다도 천둥이와는 오래토록 떨어져 계셨는데 언제 그렇게 배를 타고 오는 법까지 익히셨습니까?"
"지난 겨울 내내 그 연습을 하셨지요."

책임선인이 일러주었다. 에인은 천둥이의 긴 주둥이를 어루만지며 다시 물었다.

"이 녀석이 강 장수가 오시는걸 알고 마중을 왔습디까?"

강 장수는 비로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한 후 은장수를 불렀다.

"은장수, 참모들은 내 천막으로 모이라 이르시오. 모두 안으로 들면 그 앞엔 보초를 세우시오."

그때 두어 발짝 뒤에 서 있던 제후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물론 저도 합석하는 것이겠지요?"
"아니오, 우리끼리 긴히 할 이야기가 있소. 얘기가 끝나면 부를 테니 제후께서 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에인이 먼저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앞에 도착하자 강 장수가 그 휘장을 걷어주었고 에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 제후가 매우 불안한 듯 서성대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천둥이를 보았다. 녀석은 천막 한옆에서 막 배를 깔고 앉는 중이었다. 강 장수는'걱정마라, 이제 네 곁을 떠나실 일은 없으실 것이다'라고 한마디 던져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참모들이 모두 들어왔다. 강장수가 눈짓을 보내자 참모들은 일제히 똑바로 섰다. 강장수가 에인에게 아뢰었다.

"장군님, 절부터 받으십시오."
"군율에는 서로 절을 한다는 예가 없소. 그만들 앉으시오."

그럼에도 참모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이건 사죄의 절이옵니다. 은 장수가 방심해서 장군님을 몇 달이나 욕보인 것을 부디 용서하십시오."
"부디 용서하십시오…."

은 장수는 머리를 땅바닥에 놓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바로 앉으시오.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없었소. 다만 내가 지휘 검을 물에 빠트려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오. 자, 모두 편히 앉으시오. 그리고 어서 말해보시오. 어떤 연유로 천둥이를 앞세우고 오셨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소."

강 장수가 참모들에게도 바로 앉으라 이른 후 자신의 보고부터 아뢰었다.

"먼저 제 보고부터 올리겠습니다. 딜문 정벌 뒤 제가 이끌고 귀환했던 형제국 군사들에게는…."
"아참, 그 군사들은 모두 다 잘 돌아갔소?"
"예, 별읍장께서 각자 곡물 두 말씩 주시어 귀가시켰습니다."
"역시 별읍장이시구려."

"그리고 저에겐 귀국하지 말고 대기하되, 그동안 바람도 쏘일겸 인근 형제국이나 돌아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마음 편히, 정말로 유람삼아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그런데 구막간 국에 있을 때 별읍장께서 사람을 보내 빨리 돌아오라고 하시더군요."

강 장수가 서둘러 돌아가 보니 딜문 제후가 왔다갔다는 것이었다. 제후는 별읍장에게 '인근 부족 국에서 다시 딜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럴 때는 선수를 쳐야 한다, 그러니 군사를 보내 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라고 했다.

그러니까 제후는 두두의 천리마를 산다는 핑계로 대월씨국에 갔으나 그 궁극목적은 별읍장을 만나는데 있었고, 만약 별읍장이 승낙을 하면 다시 에인을 앞세워 이웃 국가를 칠 생각이었던 것이라고, 은장수와 책임선인은 비로소 그 내막을 알아차렸다.

"제가 별읍장님께 그래 뭐라고 대답하셨느냐고 물었지요. 별읍장께서는 '호, 장군의 지시도 없이 제후가 직접 오셨다? 알았으니 돌아가시오' 그렇게 대답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혜안이 깊으신 분이시지요. 그래 저는 '그 조그만 딜문에 뭐가 먹을 게 있다고 인근 부족들이 분란을 일으키겠습니까, 아마도 제후가 전쟁을 하고 싶은 게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요?"

에인은 강 장수가 제후의 야심을 그 멀리에서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워 그렇게 되물어보았다. 강 장수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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