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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비도 오지 않는데 날씨가 말끔하지 않고 눅진눅진합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늘을 캐야겠다고 작심하고 이른 아침 아내와 텃밭에 나갔습니다. 게으른 얼치기 농사꾼의 밭은 김을 제때 매지 않아 밭고랑 사이로 풀이 수북이 자랐습니다. 제초제를 뿌리면 김매기도 할 것이 없이 수월하게 풀을 잡을 수 있지만 사람이 먹는 것을 그리 할 수도 없고….

기껏 호미로 김을 맸는데 비가 한 번 흩뿌리고 지나가면 언제 김을 맸냐 싶게 며칠 만에 풀들이 마구마구 고개를 쳐들고 나와 온 밭을 점령하고 맙니다. 얼치기 농사꾼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땅과 친해질 것인가? 풀과 친해질 것인가?"

작년 늦가을 김장 배추를 거둔 자리에 마늘을 심었습니다. 굵은 마늘씨를 구해 두 접 반을 심었습니다. 우리집 밭농사는 다른 집에 비해 한 박자가 늦습니다. 언제나 때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마늘을 심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집에선 마늘을 이미 다 심었는데 늦장을 부리다 느지막이 심었습니다.

농촌에서 산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농사일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 모든 게 굼뜬 편입니다. 아내와 나는 마늘씨를 반으로 나눠 각자 다른 고랑에 심었습니다. 아내는 마늘씨를 하나 심어도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깊숙이 심느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나는 농사일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설렁설렁하는 편이라 아내보단 시간이 덜 걸리는 편입니다.

ⓒ 박철
작년 늦가을 심은 마늘을 오늘 드디어 거두게 되었습니다. 먼저 멀칭(mulching)한 비닐을 벗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흙이 따라 올라와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마늘씨를 심고 다른 사람들은 벌레가 먹지 말라고 살충제를 여러 번 줍니다. 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매운 마늘을 벌레가 갉아 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번 마늘 농사에는 살충제도 안 주고 복합 비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 봄에는 비가 유난히 많이 와서 마늘대가 다 물크러지고 그나마 성한 것은 벌레가 들어 마늘대만 보아도 마늘 농사는 완전 실패였습니다. 두어 달 전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아이구, 마늘대가 비실비실한 걸 보니 약을 안 준 모양이시다. 그래 갖고 마늘 먹겠시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래서 올 마늘 농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삽으로 치켜 떠서 마늘대를 손으로 집어 올리는데 마늘이 띄엄띄엄 있어서 그렇지 제법 굵고 단단했습니다. 육쪽 마늘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심은 밭고랑은 벌레가 많이 들지 않아 아내가 심은 밭고랑보다 훨씬 소출이 많이 나왔습니다.

내가 호기 있게 아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거 봐! 당신이 심은 밭고랑보다 내가 심은 밭고랑에서 알도 굵고 많이 나오잖아! 마늘도 주인을 다 알아 보는 모양이지?"
"당신이 심은 밭고랑이 수분도 많고 토질이 좋아서 그런 거지 무슨…."

ⓒ 박철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마늘 캐면서 아내가 말합니다.

"그래도 참 고맙네요. 밭도 고맙고, 마늘도 고맙고, 우리 같이 게으른 농사꾼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도 게으른 주인을 타박하지 않고 이렇게 수확하게 되었으니 참 고맙네요."
"와, 대단하시네. 그래도 농촌에서 20년 살더니 철학자가 다 되었네."

밭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방에 계시던 보행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워커를 집고 마당에 나와서 대견한 듯이 아들 내외가 마늘을 캐는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 박 목사! 올해 마늘 농사가 잘 된 것 같은가?"
"약을 안 주어서 그런지 벌레가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마늘대가 싱싱해 마늘 캐기가 쉬워요. 아마 서너 접은 될 것 같은데요. 마늘 대를 보아선 씨도 못 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씨는 건진 것 같아요."

마늘을 다 캐서 한데 모았습니다. 우리 내외가 땀 흘려 거둔 것입니다. 흙이 묻은 마늘이 환하게 웃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마늘을 어머니집 마당으로 나르자 아내는 토마토 밭고랑 앞에서 토마토에게 말을 건넵니다.

"토마토야! 우리가 너를 잘 돌보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병들지 말고 튼튼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토마토야!"

ⓒ 박철
아내가 몇 해 전부터 정농회에서 새롭게 소개한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생명역동 농법)을 귀동냥으로 듣고 실천해 본 것입니다.

마늘을 말리기 위해 어머니집 마당에 마늘을 가지런히 줄을 맞춰 내려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오늘 점심에 돼지고기 구워 먹자!"

돼지고기 구워 먹자는 말씀은 우리 어머니가 제일 기분이 좋을 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많이 거두진 못했어도 우리 내외가 땀 흘려 거둔 것이니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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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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