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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어린 시절 청개구리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봄에 맞은 농번기 때 일어났던 일이지요. 예전엔 농촌 학교에서 한창 농사일로 바쁜 봄이나 가을에 며칠 동안 휴교를 해서 아이들이 일손을 도울 수 있도록 휴교한 적이 있었지요. 그걸 농번기라고 합니다.

농번기를 맞아 학교에 가지 않는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누에에 먹일 뽕을 따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자루를 들고 나는 다래끼를 들고 뽕밭에 가서 자루와 다래끼에 가득 채울 때까지 따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지요.

오디라도 익었으면 따먹으며 쉬엄쉬엄 따도 좋으련만 그 무렵 오디는 대부분이 연녹색이고 이따금 빨간 색으로 변한 게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검정색 물이 입술에 듬뿍 배어날 정도로 익으려면 아직도 멀기만 한 때였지요.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아 뽕을 따다 보면 뽕잎에 앉아 있던 청개구리를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비라도 내린 뒤면 더욱 많았지요. 녀석들은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아 내릴 즈음 풀쩍 뛰어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일쑤였지요. 운 좋게 다른 나무 가지로 옮겨가는 녀석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청개구리를 본다고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 주무시는 안방을 차지하고 닥치는 대로 뽕잎을 먹어대던 누에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귀여운 장난감이 되었던 것처럼 심심할 때 잡은 청개구리도 아이들에겐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따라 뽕을 딸 때에 눈에 띄는 청개구리야 장난감이 될 수는 없었지요.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다래끼에 하염없이 뽕을 따 넣어야 하는 아이에겐 청개구리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일이 있던 날도 엄마를 따라 뽕을 따러 갔습니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라 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어머니의 재촉에 마음이 급해진 나도 허둥대며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뽕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다래끼에 담긴 뽕이 수북히 채워질 무렵 자리를 옮겨 발돋움을 해서 어렵사리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아 얼굴 가까운 곳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때 눈 앞에 언뜻 청개구리가 보였습니다.

뽕잎에 앉아있던 녀석은 흔들리는 뽕잎에 앉아 다른 곳으로 뛸 생각도 못하고 있더니 갑자기 찍 오줌을 깔겼습니다. 그런데 그 청개구리의 오줌이 제 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슬비와 땀으로 젖은 눈에 청개구리 오줌이 들어갔다고 해서 특별히 눈이 아프다거나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린 생각에 기분이 무지하게 상했지요. 오줌을 깔긴 뒤 다른 뽕잎으로 뛰어간 청개구리를 기어코 잡아서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욕을 했습니다.

"나쁜 자식, 하필이면 눈에다 오줌을 깔기는 거야."

다래끼에 뽕을 가득 따서 집에 가져와 누에에게 흩뿌려주고 마루에 누워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그 소리는 꼭 소나기 내리는 소리처럼 들립니다)를 듣고 있어도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엄마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청개구리 오줌이 눈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이 놀릴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일이 있던 다음날부터 눈에 이상한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눈꺼풀 속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지내던 엄마도 나날이 부어오르는 눈에 겁이 나서 손목을 잡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선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다른 데도 아닌 눈을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질겁을 한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와 약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안약을 하나 사 가지고 집으로 와서 그 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하루에 몇 번씩 안약을 눈에 넣어 주었습니다. 수술하다 잘못되면 아예 소경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그랬다고 합니다.

충열된 눈도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부기도 빠져 겉으로 보면 안약의 효과를 본 것 같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제 눈은 심한 근시가 되었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고서는 교실 책상 맨 앞에 앉아서도 칠판의 글씨를 읽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청개구리를 참 미워했습니다. 내 눈이 나빠진 건 순전히 청개구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더구나 개구리가 뱀에게 쫓길 때 개구리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오줌을 깔기며 도망간다는 얘기를 책에서 읽은 뒤로는 청개구리에 대한 미움이 더욱 강해졌지요.

어른이 되어 어린 두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일학년 말에 비슷하게 눈이 나빠지는 걸 보고서야 내가 눈이 나빠진 게 청개구리 때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시던 얘기도 떠올랐습니다.

청개구리처럼 죄없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녀석도 흔치 않을 겁니다. 공연히 부모님 말씀 제대로 듣지 않는 불효의 상징으로 지목되는 것이 청개구리입니다. 물론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야 가슴 치며 후회하는 우리네 모습을 청개구리에 빗대어 이야기로 꾸며낸 것이기는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게 청개구리냐고 항변하면 할 말이 없지 싶네요.

이젠 청개구리에 대한 미움을 거두려고 합니다. 청개구리가 내 눈에 오줌을 깔겼던 것은 제 몸을 보호하려는 최선의 행동이었지요. 녀석에 대한 미움을 안고 살아온 나날을 훌훌 떨쳐버리고 지구 위에 함께 사는 생명체로서의 동질감을 느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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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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