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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제작한 제4회 세계난민의날 포스터 '집으로 부를 수 있는 곳'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제작한 제4회 세계난민의날 포스터 '집으로 부를 수 있는 곳' ⓒ 사진제공 UNHCR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2003년 통계에 의하면 세계 난민 또는 실향민은 2000만 명이다. 세계인구 300명 중 한 명이 자신이 일구어 놓은 생활터전을 빼앗긴 채 피난처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난민을 국제적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난민들은 박해와 폭력을 피해 자국의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또 다른 심각한 인권침해와 적대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위기에 처한 국제난민보호제도

국제난민지원단체인 미국난민위원회(USCR)는 최근 전세계 난민현황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난민캠프·격리거주지역 등에 방치되거나 피난처를 찾아 가까스로 도착한 비호국에서마저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의 현실을 '창고 속에 쌓인 물건더미'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각국 정부가 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는 '대형창고업'(Warehousing)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당 국가나 지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것은 제 1, 2차 세계대전의 결과다.

즉, 정치적 갈등이나 전쟁의 양상이 주로 국가 대 국가였던 당시 상황에서 난민의 정의나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은 상대 정적 국가의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의 지위를 고려할 때 유리한 해석을 통해 이익을 부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른바 냉전이 종식되고 종교간·종족간 무력충돌 등 갈등과 분쟁의 양상이 국지화되면서 난민보호를 위한 활동들은 그 정치적 근거를 잃게 되었고, 인권옹호와 박애주의로 포장되었던 난민보호 시스템은 차츰 무너지기 시작했다.

각 국가들은 난민의 정의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국제협약을 통한 난민보호의 의무에서 어떻게 해서든 발을 빼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경제적 이주민, 잠재적 범죄자 등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해 내며 난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출입국관리의 대상, 배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대한민국, 난민 인정 확대의 허와 실

난민에 대한 국제 보호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과 1967년 의정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새로운 난민 양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난민협약이 정의하고 있는 난민 개념, 즉 △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상주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에 엄격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전쟁 또는 소요사태로 인하여 자국을 탈출한 사람들에게 임시체류 허용 등 보충적 형태의 보호(Complementary protection)를 제공함으로써 난민의 개념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이 있다.

그러나 각국에 대해 이를 의무화할 수 있는 국제 제도가 없기 때문에 오직 난민 수용국의 인도주의에 호소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자국의 영역 내에 체류하고있지만 난민과 거의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s)의 경우, 적용되는 국제법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국가주권의 문제로 인하여 국내실향민에 대한 국제 보호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대량 인권침해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각 국이 인정하는 협약 난민 또는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정하는 위임 난민 등의 숫자는 차츰 줄어 들고 있지만 국내 실향민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6월 UNHCR은 기존 난민협약과 의정서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약 플러스'(Convention Plus)라는 포럼을 발의하여 특정 난민 상황에 대한 포괄적 형태의 다자조약을 개발하고 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으나 각 국이 이러한 노력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력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은 지난 1992년에 난민협약 및 의정서에 가입하여 1994년부터 난민인정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 정부에 난민인정신청을 한 외국인은 250여 명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이 대부분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제작한 제4회 세계난민의날 포스터 '비호국에서의 현지 동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제작한 제4회 세계난민의날 포스터 '비호국에서의 현지 동화' ⓒ 진
2001년 처음으로 아프리카인에 대해 난민 지위를 인정하기 전까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온 한국 정부는 2002년 한 명, 2003년에 열두 명을 협약난민으로 인정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난민 인정률이 높아졌고 협약난민의 체류자격이나 난민인정절차의 문제를 일부 개선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쌓여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난민 인정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와 기관의 비전문성과 인권의식 부재라 할 수 있다.

제4회 세계난민의 날을 맞이하며

면담조사 및 통역 인력의 절대 부족, 난민신청접수 기피, 난민인정심사의 장기화, 난민인정협의회의 구성과 운영상의 문제점, 난민과 난민 신청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재 등의 문제가 있다. 난민 신청인 및 난민을 국제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출입국관리의 대상으로 파악해선 안 된다.

국제적 보호대상으로서의 난민은 체류, 노동, 주거, 의료, 교육, 복지 등 인간의 존엄성과 안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관련되는 모든 기본적 권리의 주체이며 한국 정부는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지원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매년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난민의 날이다. 본래 6월 20일은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1975년부터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여 오던 날로, 국제적 난민보호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난민기구의 설립 50주년이 되던 지난 2001년을 기하여 '아프리카 난민의 날'을 '세계 난민의 날'로 확장하여 기념하기로 한 것이다.

2004년 제4회 세계난민의 날 표어는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Place to Call Home), 즉 난민보호의 영구적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비호국에서의 현지 동화 △제3국에서의 재정착 △ 자발적 의사에 따른 안전한 본국 귀환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그 의지를 환기하기 위함이다.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를 받느니 생명의 위협이 있더라도 차라리 자국으로 돌아가서 죽는 것이 낫다며 절규하는 난민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과거이며 또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박해와 폭력의 두려움을 피해 안전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아 떠나온 그들이 이 땅을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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