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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발갛게 익어가고 있는 자두
ⓒ 이종찬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부락 앞에는 마당뫼가 논 한가운데 조각배처럼 떠 있고, 마당뫼 뒤쪽에는 야트막한 앞산이 하나 있었다. 그 앞산의 산마루가 가음정부락과 우리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그러니까 앞산 뒷쪽 비탈에는 가음정부락에 사는 사람들이 다랑이밭을 일구고 있었고, 앞산 앞쪽 비탈에는 우리 마을사람들이 감자나 옥수수 등을 심었다.

그 앞산 비탈 한가운데에는 풍개(자두)나무와 복숭아, 포도나무가 나란히 줄지어 선 과수원이 하나 있었다. 그 과수원은 우리 마을에서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았고, 마을 주변 대부분 논과 산의 주인이던 오가네 소유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마을은 내 부모님이 이사를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오가네가 씨족을 이루며 살고 있던 그런 동네였다.

그 당시 오가 성이 아닌 우리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오가네 소유의 땅에서 갈라먹기(소작) 농사를 지었다. 내 부모님께서도 아버지 이름으로 된 논 몇 마지기를 빼놓고는, 논농사의 7할 이상을 갈라먹기 농사로 지어야 했다. 슬하에 4남1녀를 둔 부모님께서는 그렇게라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오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킬 수가 없었다.

▲ 우리는 '자두'를 '풍개'라고 불렀다
ⓒ 이종찬

▲ 어린 날,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풍개서리를 자주 했다
ⓒ 이종찬
"아무 끼나(거나) 퍼뜩 따라카이. 노르스럼한 거 골라 딸라카다가들키모 끝장난다카이."
"니는 씰데없는 소리 좀 고마하고 사람들이 오는강 망이나 잘 봐라."
"안주(아직)까지 아무도 보이지는 않지마는 가슴이 도다리 새끼맨치로(새끼처럼) 팔딱팔딱 뛰는 기 불안해 죽것다, 고마."
"니만 가슴이 팔딱팔딱 뛰는 줄 아나? 내도 마찬가지다."
"그라이 고마 따고 퍼뜩 나오라카이."
"쪼매마 참거라. 알 굵은 요거 몇 개만 더 따고."


그랬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앞산 한가운데 에헴 하며 버티고 있는 오가네 과수원에서 파아란 풍개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벌써 붉으죽죽한 빛깔을 띠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붉으죽죽한 빛깔을 띠는 풍개는 벌레 먹은 것이거나 땅에 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가 되면 나와 동무들은 그 과수원에 몰래 기어들어가 풍개 서리를 하기 시작했다. 동무 하나가 논배미에 앉아 소풀을 베는 척하며 망을 보았고, 동무 몇몇은 앞산 비탈진 언덕에서 산딸기를 따먹는 척하다가 눈치를 보아가며 과수원 쪽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어 들어갔다.

하지만 어른 키 높이로 자란 풍개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대부분 풍개는 푸릇푸릇했고, 노릇노릇한 것은 몇 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과수원에서 풍개가 제법 노릇노릇한 빛깔을 띠기가 무섭게 오가네 아주머니가 소쿠리 가득 따다가 상남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었다.

▲ 푸릇푸릇한 풍개는 이름만 떠올려도 입 안에 침이 흥건하게 고인다
ⓒ 이종찬

▲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부락 앞산에는 풍개밭이 있었다
ⓒ 이종찬
"으~ 시다."
"그라이 내가 뭐라 카더노? 너무 작은 거는 따지 말라 안 카더나?"
"그래도 나는 이런 시어터진 풍개라도 많이만 있었으면 좋것다."
"혹시 풍개 서리 못하구로 농약을 쳤을지도 모른께네 바지에 싹싹 닦아서 묵어라. 백지(괜히) 풍개 몇 개 잘못 먹고 죽는다고 난리 피우지 말고."
"니는 장사 첨 하나? 요새는 오산 아지메가 풍개를 따서 장에 내다 팔기 때문에 농약을 치고 싶어도 못 친다카이."


알맹이가 작고 푸릇푸릇한 풍개는 한 입 베어 먹으면 양턱에서 전기가 찌리리 오면서 이내 입안에 침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어터진 풍개를 양턱을 만지면서 오래 씹다보면 제법 달착지근한 맛도 났다. 또한 처음 풍개를 이빨로 베어먹을 때에는 양턱이 찌릿했지만 자꾸 먹다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게다가 풍개는 풍개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바라보면 풍개에 묻어있는 하얀 가루 때문에 그저 푸릇푸릇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막상 알이 굵은 풍개를 따서 바지에 몇 번 문지르면 풍개 껍질에서 제법 노르스름한 빛깔이 나면서 마치 기름을 칠한 장농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사실 그런 풍개는 하루 정도 지나면 노릇노릇한 빛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먹어도 신맛이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더 기다리면 풍개가 발갛게 익어가기 시작하면서 풍개 특유의 달콤하고도 향긋한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와 동무들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지금 비음산 아래 과수원에서는 풍개가 익어가고 있다
ⓒ 이종찬

▲ 어릴 적, 탱자나무집 그 가시나와 나는 풍개 때문에 헤어질 뻔했다. 물론 지금은 그 가시나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 이종찬
며칠 동안 남겨둘 풍개도 없었지만 마땅히 보관할 곳도 없었다. 집으로 가져갔다가는 당장 풍개 서리를 했다는 것이 들통이 날 것이 뻔했고, 풀숲에 숨겨두면 이내 온갖 벌레들이 풍개에 달겨들어 여기저기 갉아먹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풍개 서리를 하고 나면 마당뫼 솔숲에 앉아 풍개를 먹고 난 뒤 풍개씨를 땅에 꼭꼭 묻었다. 풍개서리를 했다는 흔적을 아예 없애기 위해서였다.

"아나?"
"이기 뭐꼬? 풍개 아이가."
"쉬이. 아무도 몰래 니 혼자 묵어라. 들키모 클(큰일) 난다. 알것제?"
"아나?"
"와 그라노?"
"내는 훔친 풍개는 안 묵을란다."


그랬다. 그 날 탱자나무집 그 가시나는 내 정성도 모르고 내가 건네주는 노오란 풍개를 다시 내게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입을 삐쭉 내밀면서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폴짝폴짝 뛰어가버렸다. 간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도 부모님 몰래 내 호주머니에서 하룻밤 재운 그 노릇노릇한 풍개를 말이다.

나는 그 날 화가 몹시 났다. 아무리 훔친 풍개라 하더라도 내 속내도 모르고 길게 땋은 갈래머리 달랑거리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탱자나무집으로 쏘옥 들어가 버리는 그 가시나가 정말 미웠다. 나는 '문디 가시나! 에라이' 하면서 그 노릇노릇한 풍개를 탱나무 울타리 사이로 힘차게 집어던졌다.

▲ 아나! 아무도 몰래 니 혼자 묵어라
ⓒ 이종찬

▲ 노릇노릇한 풍개를 한 손 가득 쥐는 날은 절로 배가 불렀다
ⓒ 이종찬
그때부터 나는 유월이 거의 끝나가도록 풍개 한번 먹지 못했다. 하지만 마을 동무들은 소풀을 베다가 입이 심심해지면 으레 풍개서리를 했다. 그리고 풍개서리를 할 때 망조차 봐 주지 않은 내게도 푸릇푸릇한 풍개를 몇 개 건네줬다. 나는 그때마다 '풍개를 먹은께네 배가 아푸더라' 하면서 그 가시나처럼 풍개를 동무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가시나를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 가시나도 등하교길에 가끔 나와 마주치기도 했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탱자나무집 가시나와 나와의 은밀한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나 또한 간혹 어머니께서 정구지전(부추전)을 부칠 때마다 그 가시나 생각이 났지만 한번도 그 가시나에게 갖다 주지 않았다.

"…"
"…"
"아나?"
"그기 뭔데?"
"울 옴마가 시장에 갔다가 사 온 풍개다."
"나, 인자 풍개 안 묵는다."
"이거는 풍개가 아이라 내 미안한 맴(마음)이다."
"문디 가시나!"
"문디 머스마!"


▲ 지금 그 가시나도 그때 그 풍개를 떠올리며 씨익 웃고 있을까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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